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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명국 ‘달마절로도강도’

기자명 김영욱

순수한 마음서 발현된 자연 형상

▲ 김명국 作 ‘달마절로도강도’, 17세기 중엽, 종이에 먹, 97.6×48.2cm, 국립중앙박물관.

翫水看山虛送日(완수간산허송일)
吟風詠月謾勞神(음풍영월만로신)
豁然悟得西來意(활연오득서래의)
方是名爲出世人(방시명위출세인)

‘물 즐기고 산 보며 나날을 헛되이 보내고 바람 읊고 달 노래하며 정신을 지치게 하네. 서쪽에서 온 뜻을 시원히 깨달으면 그제야 세상 벗어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 일선(一禪, 1533~1608), ‘시 짓는 승려에게 주다(贈詩僧)’

화면에 그려진 호쾌한 필치
대담하고 호방한 선화 정수
분별 집착하는 중생에 일침

호방한 필치가 일품이다. 단번에 휘갈긴 필선의 동세가 바람에 나부끼듯 리드미컬하다. 붓을 눌러 방향에 따라 꺾고 비틀기도 하고 일필로 시원스레 내려긋기도 하고, 혹 어느 부분에서는 부드러운 율동감을 주었다. 발 디딘 갈대에 툭하니 그은 갈댓잎의 구성이 그림에 멋을 더했다. 달마의 부릅뜬 눈과 담담한 얼굴로 시선을 옮기면 그의 전신(傳神)이 다가온다.

달마는 서천의 제28조이자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이다. 그는 6세기경 불법의 진리를 전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왔을 때, 양무제(梁武帝, 464~549)와 만나게 되었다. 양무제는 스스로 불가에 귀의하고 수많은 불사를 이끌어 ‘황제보살’이라 불렸다. 달마는 양무제가 자신이 쌓은 공덕에 대한 물음에 “공덕이 없다(無功德)”라고 대답했다. 다음으로 무엇이 불가의 가장 성스러운 진리인가에 대한 양무제의 질문에는 ‘확연무성(廓然無聖)’ 즉 “텅 비어서 성스러운 것이 없다”라고 답했다.

이에 양무제가 “그렇다면 내 앞의 당신은 누구인가?”라고 되묻자, 달마가 “모르겠다(不識)”라고 말했다. 달마는 그가 불가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자 아직은 때가 아님을 알았다. 하여 갈댓잎을 타고 양자강을 건너 낙양의 숭산으로 들어가 면벽에만 몰두했다.

김명국(金明國, 1600경~1663 이후)의 ‘달마절로도강도(達磨折蘆渡江圖)’는 달마가 양무제를 떠나 갈댓잎을 타고 강을 건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감필체(減筆體)로 그린 김명국의 선종화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화면에 순식간에 그려진 거침없고 호쾌한 필치는 그의 대담하고 호방한 선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조선 후기의 문인 남태응(南泰膺, 1687~1740)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마음 가는 대로 하여 법도(法道)를 초월했으니 그 어느 것 하나도 천기(天機)가 아닌 것이 없었다’고 했고, 덧붙여 ‘그의 돈오(頓悟)와 신해(神解)가 천기에 있으므로 법도에 구속받지 않는다’는 기록은 그의 회화 세계를 잘 설명해준다. 김명국의 그림은 순수한 마음에서 발현된 의취(意趣)와 자연 본연의 형상이 어우러진 것이다. 이는 의식적으로 배워 이룩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과연 달마가 서쪽에서 건너온 까닭은 무엇이던가. 조주(趙州)는 ‘뜰 앞의 잣나무’라 하고, 취미(翠微)와 용아(龍牙)는 대답 없이 목판으로 내려쳤고, 마조(馬祖)는 ‘상다리’라고 했다. 모든 존재는 자성이 없다. 그저 비어있을 뿐이다. 존재의 성질과 형상의 ‘허’와 ‘실’에 대한 의문은 모두 깨닫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실상과 허상의 의식적인 분별이 곧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덕이 없고 진리가 공허하고 나란 실체를 모른다는 달마의 대답은 불가의 진리와 깨달음을 의식적으로 분별하기 위해 집착하는 중생들을 향한 일침이다.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25호 / 2018년 1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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