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 오, 꿈보다 해몽이여!

부처님은 해몽 받아들일 사람 의지 맞춰 해석

▲ 왕의 꿈을 해석하는 바라문 사제(비자야나가르의 라마찬드라 사원에서).

불전 속의 많은 꿈들은 실제의 꿈속에서 건져 올린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창작된 것들이 많다. 인도의 헤아릴 수 없는 신화와 마찬가지로 경전 속 꿈 이야기도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인공신화와 가공된 꿈들은 따라서 실제로 꿈을 해석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불경에서 꿈은 대부분의 경우 예언적 기능을 보이지만, 이것도 의도된 메시지를 위해 만들어진 예언에 불과하다. 그런데 경전의 의도된 메시지는 그 꿈의 해석 방식에 따라 드러난다.

바라문들은 자기 이익만 생각
왕의 열여섯 가지 험한 꿈들을
액면대로 불길한 징조라 해석

부처님은 모든 꿈 해석하면서
예언적 기능을 도외시 않지만
현실의 자기 경영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일깨우는데 중점

우리는 곳곳에서 석가모니가 뛰어난 꿈의 해석자라는 것을 읽을 수 있다. 꿈의 해석을 어떻게 자기 자신에게로 가져와야하는가를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를 던져준다. 다시 말해서, 석가모니는 꿈을 전적으로 앞으로 반드시 도래할 결정된 운명의 그림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설사 가까운 미래에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더라도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해 다른 해석으로 그 꿈을 풀이하고 상대방을 위안한다. 이 점은 우리가 모르는 석가모니의 또 다른 위대한 인간적 매력이다.

지난 회에 썼던 싯다르타와 야소다라의 꿈은 이랬다. 싯다르타가 출가하기 전날 밤 야소다라(고파)는 악몽을 꾼다. 옷이 벗겨져 나체가 된 채로 손과 발이 잘리고, 세계의 중심 메루산은 거세게 요동치는 꿈이었다. 본래 고대 인도의 전통적인 관점에서 이 꿈은 부인 야소다라가 남편 싯다르타로부터 버려지는 꿈이다. 과부가 되는 운명의 꿈이었다. 싯다르타는 이를 알고 있었으나 전통적인 방식대로 그 꿈을 해석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과 야소다라 모두에게 편안했을 것이다. 아마도 싯다르타는 야소다라의 운명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꿈에 대한 석가모니의 이러한 태도는 경전 속의 다른 꿈 해석에서도 잘 나타난다. 석가모니는 전통적으로 힌두인들이 해석해왔던 방식대로 꿈을 해석하지 않는다. 꿈의 예언적 기능을 완전히 도외시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의 자기 경영 속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일깨우는 일에 중심을 두고 꿈을 해석하고 있다. 여기 자타카의 한 예가 있다.

어느 날, 왕실의 대신과 사제들이 왕에게 아침 문안을 드리기 위해 그의 침소를 찾았을 때, 왕은 오히려 몸을 떨면서 역정을 내는 것이었다. ‘잠을 잘 자다니, 어제는 숱한 꿈에 시달리느라 잠에 들다 깨기를 반복했다오. 얼마나 꿈을 많이 꾸었던지 무려 그 꿈이 열여섯 가지나 되오, 열여섯 가지….’ ‘어떤 꿈이었나요, 제가 해몽해 보겠습니다.’ 사제는 왕의 꿈을 차례로 들으며 꿈을 적어나가다가 그만 손을 덜덜 떨고 말았다. ‘사제여, 왜 그리 손을 떠는 것이요?’ ‘너무 끔직한 흉몽입니다. 너무 끔직해요. 전하의 목숨 뿐 아니라 국가와 왕실이 위태로습니다.’ 그의 말에 왕도 더불어 불안에 휩싸였다. 왕의 꿈은 실제로 이상하고 불안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사제가 말했다. ‘전국의 사제들을 다 불러서 큰 제사를 지내야하겠습니다. 길이 교차하는 곳마다 제사를 지내야지요.’ 사제는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그렇게 해서 왕실과 나라는 갑자기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왕의 사제와 그의 명령을 따르는 사제들은 자신들이 필요한 것을 모두 왕실에 요청하기 시작했다. 희생제의에 사용할 온갖 제사용 가축들과 도구들과 재물을 나르기 위해 사방에서 모여든 사제들이 왕실을 끝없이 오갔다. 재산을 옮겨 나르는 사제들로 왕실이 북적거리자 이를 의심하던 왕비 말리카는 왕에게 까닭을 물었다. ‘바라문 사제들이 나를 지키기 위해서 제사를 지낼 요량으로 저렇게 분주한 것이라오.’ ‘그렇다면, 세상의 가장 지체 높은 사제에게 가셔야지요.’ ‘그게 누구지요?’ ‘제타바나에 계시는 부처님이지요.’ 이렇게 왕은 석가모니에게 나아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게 된다.

‘첫 번째 꿈 이야기를 해보시지요. 제가 그 꿈의 진실을 말하겠습니다.’ 석가모니는 왕에게 말했다. ‘저의 첫 번째 꿈은 검은 소들의 싸움에 관한 것입니다. 네 마리의 검은 황소들이 사방에서 왕궁으로 몰려와 싸움을 하려고 했고 그 싸움을 보려고 군중들이 몰려들었지요. 그런데 정작 이 소들이 싸우는 척만 하고, 씩씩거리기만 하는 겁니다. 도대체 이 꿈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요, 부처님?’ ‘왕이시여, 가까운 미래에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만일 왕이 탐욕스럽고 백성들이 법에 의해 살지 않는 시기가 오면, 비올 듯해도 결코 비가 내리지 않는 그런 말법의 시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먼 미래의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럼, 두 번째 꿈 이야기를 해보시지요.’

‘저의 두 번째 꿈에는, 땅에서 갓 돋아난 아주 작은 나무와 풀들이 벌써 무겁게 꽃과 과일이 달려 가지들이 쪼개질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것은 무슨 꿈인지요?’ ‘왕이시여, 가까운 미래에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만일 인간들의 욕정이 너무 과도해져 심지어 어린 소녀들조차 아주 어린 나이에 소년들과 동거하여 아이를 낳는 그런 말세가 된다면 그런 일이 생기겠으나, 왕이시여 그런 일은 먼 미래의 일이 될 것입니다.’

‘저의 세 번째 꿈은 이제 갓 새끼를 낳은 암소가 자신이 낳은 새끼들의 젖을 빨고 있는 꿈이었습니다. 왜 이런 꿈을 꾼 것인지요?’ ‘왕이시여, 가까운 미래에 그런 일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나이 든 사람을 결코 존중하지 않는 시대를 예견하는 꿈이지만, 왕께서 그런 일을 간과하지 않는다면, 그런 시간은 오지 않을 겁니다.

왕은 차례로 자신이 꾼 열여섯 가지의 꿈을 하나씩 모두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열여섯 번째 꿈까지 이야기를 전한다. ‘마지막 꿈은 아주 이상한 것이었습니다. 늑대들이 양을 쫓아가 잡아  먹는 것이 아니라 양이 늑대들을 쫓아가 뜯어먹는 꿈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왕이시여, 가까운 미래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꿈은 법에 의해 통치하지 않을 때 간신들이 득세하여 왕을 해하고 권력을 찬탈하는 그런 꿈이지요. 그러나 왕께서 법에 의해 통치하는 지금, 그런 일은 까마득히 먼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바라문들이 왕의 꿈을 예정된 몰락의 꿈으로 해석했던 것은 자신들의 이득을 채우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석가모니는 왕이 꾸었던 이상한 꿈에 대해서 위안을 준다. 그리고 그 왕이 현실에서 무엇을 지켜야하는가도 암시한다.

석가모니는 바라문들이 해석하던 그 꿈의 불길한 징조를 몰랐던 것도 아니며 그들의 해석을 무시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꿈을 대면하는 방식이, 해석의 방식이 달랐던 것이다. 꿈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던 바라문들은 그 꿈의 징조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취할 방안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와 달리, 석가모니의 해석은 그것이 불길한 징조를 보이는 것일지라도 왕과 백성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그것은 먼 미래의 일이 될 수 있다고 해석했던 것이다. 

석가모니는 꿈의 예언적 기능을 인정한 듯이 보이지만, 그것을 운명과 연관 짓지 않는다. 그 꿈을 받아들일 사람의 의지를 더 중요시했던 것이다. 

심재관 동국대 연구초빙 교수 phaidrus@empas.com
 

[1426호 / 2018년 1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