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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모쿠안 레이엔의 ‘사수도(四睡圖)’

기자명 김영욱

꿈은 본질 깨닫도록 돕는 선적 암시

▲ 모쿠안 레이엔 作 ‘사수도(四睡圖)’, 종이에 먹, 73.7×32.5㎝, 14세기 전반, 일본 前田育德會(출처: ‘日本美術絵画全集1: 可翁/明兆’, 1977년).

老豊干抱虎睡(노풍간포호수)
拾得寒山打作一處(한산습득타작일처)
做場大夢當風流(주량대몽당풍류)
依依老樹寒巖底(의의노수한암저)

필요한 선만 취해 그린 신체
기하학적으로 묘사한 호랑이
중 원대 선종화 대표적 특징

‘호랑이 감싸 잠든 늙은 풍간, 한산과 습득도 한데 모여 잠들었네. 도량(道場) 짓는 큰 꿈 꾸며 풍류에 노니는구나, 한들한들 늙은 나무 있는 한암(寒巖) 아래에서.’ 상부소밀(祥符紹密·생몰년 미상)의 ‘사수도에 찬하다(四睡圖贊)’

기도 슈신(義堂周信, ?~1388)이 지은 ‘구게니츠코슈(空華日工集)’에 따르면, 모쿠안 레이엔(黙庵靈淵, ?~1345경)은 가력(嘉曆, 1326~1328) 연간에 중국으로 건너가 13세기 항주 지역의 선화(禪畵)를 이끌었던 목계(牧谿)가 다시 왔다는 평가를 받았던 화가로 기록되어 있다. 그의 대표작인 ‘사수도’는 간략한 배경, 필요한 선만 취해 그린 신체와 의복에 보이는 유창한 갈필, 기하학적인 원형으로 묘사한 호랑이의 모습은 중국 원대 선종화의 영향을 보여준다.

우리는 꿈을 꾼다. 꿈은 꿈꾼 이의 현실과 이상을 보여준다. 가끔 지인들의 꿈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그 자신이 주인공인 흥미로운 단편소설과 같다. 지인이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무슨 상상을 하는지 호기심이 생겨난다. 꿈은 상당히 매력적인 이야기의 소재인 것이다.

불가의 이야기에 표현된 꿈은 불교의 이념과 포교를 대중에게 전파하기 위한 체험이나 수행과정으로 묘사된다. ‘몽(夢)’은 유독 선림(禪林)에서 선호된 글자 중 하나로, 철학적이며 심오한 개념을 지닌다. 그런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옛 선사(禪師)들의 이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또한 불가의 이야기에서도 주요 소재로 종종 이용되었다. 예컨대 ‘삼국유사’ 권3의 ‘낙산이대성관음정취조신조(洛山二大聖觀音正趣調信條)’에 실린 조신(調信)의 이야기라던가, 중국 송·원대 선사들의 어록에서 집중적으로 출현한 ‘사수(四睡)’의 화제가 그러하다.

사수란 천태산(天台山) 국청사(國淸寺)의 승려인 풍간(豊干)과 습득(拾得), 그리고 풍간의 호랑이를 비롯해 천태산 한암(寒巖)에 거주한 한산(寒山) 네 존재가 서로 포옹하듯 하나가 되어 잠을 자는 화제를 말한다. 고요하고 정적한 천지에서 잠자고 꿈꾸며 삼라만상이 공(空)으로 돌아가 참된 자아를 통찰하는 것을 상징하는 선림의 우화다. 꿈을 통해 실재와 비실재의 경계를 ‘선(禪)’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꿈은 진아(眞我)의 본질을 깨닫도록 돕는 선의 암시로 볼 수 있다.

가끔은 잠에 취한 풍간, 한산, 습득, 그리고 호랑이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 듣고 싶기도 하다. 분명 한번쯤 읽고 싶은 소설일 것이다. 그렇지만 애써 들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풍간은 풍간의 꿈을, 한산은 한산의 꿈을, 습득은 습득의 꿈을, 그리고 호랑이는 호랑이의 꿈을 꾼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꿈을 꾼다. 자신이 꾸는 꿈에서 참된 본인의 이야기를 찾으면 될 뿐이다. 지금 그대는 무슨 꿈을 꾸고 있는가.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27호 / 2018년 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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