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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영주 흑석사 아미타불상 복장물 도난

기자명 이숙희

불자로 가장해 기도하는 척 잠입 후 불상 절도

▲ 국보 제282호 흑석사 목조아미타불좌상, 조선(1458), 높이 72cm, ‘금동불’ KOREAN ART(예경, 2000).

경상북도 영풍군 이산면 석포리 흑석사 극락전에 안치된 국보 제282호 목조아미타불상은 1999년 3월20일에 도난당하는 수난을 겪었다.(사진 1) 범인들은 3개월 동안 사찰 주위를 탐색한 후 뒷산에 잠복하고 있다가 범행을 시도했으나 처음엔 실패했다. 그러자 불교신자로 가장하여 법당에서 기도를 하는 척하다가 주지스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자물쇠를 뜯고 들어가 불상을 절취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주지스님의 신속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도주로를 차단하고 범인들과 격투 끝에 검거했다. 이렇듯 흑석사 목조아미타불좌상은 도난 직전에 범인들을 붙잡아 되찾은 것으로 도난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불상 도난 인지 주지스님 신고
경찰 도주로 차단 격투 끝 검거

1992년 개금불사 때 불상 속서
불상1구·전적14점 등 유물 발견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국보 지정
‘복장기’에 발원자·조성 시기와
존명 등 밝힌 조선초 주요 불상

사찰의 불교문화재는 대부분 산중에 있거나 인적이 드문 곳에 있기 때문에 거의 무방비상태에서 도난을 당한다. 도난 행위도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대개 사찰이 비어 있는 틈을 타서 불상을 훔치거나 몽둥이로 사람을 위협해서 빼앗아 가는 것이 가장 흔한 수법이다. 불교신자로 가장해 법당 안에서 숨어있거나 기도하는 척 불공을 드리다가 불상을 훔쳐가기도 한다. 심지어 큰 불상인 경우에는 머리 위로 그물을 던져 올라가 이마의 백호를 빼가거나 작은 불상을 절취해 가는 수법도 사용한다. 또 대담하게 사찰 내의 도난방지 장치의 선을 절단기로 자르거나 법당의 벽을 뚫고 들어가 금고 안에 있는 불상을 훔쳐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특히 불상 복장물의 경우는 도난 여부를 확인하는 것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불경스럽다는 이유로 불상의 몸에 손을 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이용하여 문화재 절도범들이 법당에서 예불이 진행되는 동안 불상의 등이나 밑바닥 부분을 열고 경전, 고문서 등을 닥치는 대로 훔쳐가기도 했다. 5m가 넘는 큰 불상의 경우, 2∼3일 동안 먹을 식량을 가지고 들어가 불상 안에서 기거하면서 사다리를 이용하여 복장물을 모조리 훔치는 기상천외한 수법도 있다.

흑석사 목조아미타불좌상은 조선 초기 왕실에서 발원하여 조성한 것으로 새로운 불상양식을 보여주는 이례적인 예에 속한다. 원래 정암산 법천사에 있었다고 하나 광복 이후 이곳에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좌우의 협시보살은 없어지고 본존불인 아미타불상만 남아 있다. 법천사는 지광국사현묘탑비가 있었던 강원도 원주군 부론면 법천리 절터로 볼 수 있지만 그곳은 오봉산이라 불리고 있어 산 이름이 다르다. 법천사는 현재 정확히 어디에 소재하는 절인지 알 수 없다.

▲ 목조아미타불좌상에서 발견한 전적·직물 등 복장물, ‘한국의 국보’(문화재청, 2007).

흑석사 아미타삼존불상은 1992년 개금불사를 할 때, 몸속에서 불상 1구를 비롯하여 전적 7종 14점, 직물 38점, 기타 5점 등 많은 유물이 나왔다.(사진 2) 그중 ‘감지은니묘법연화경’ 제4권(국보 제 282호)과 ‘백지금니변상도’는 흑석사의 신도 회장이었던 전모씨 등 3명이 주지스님의 부탁으로 몰래 보관하고 있다가 문화재 밀매업자에게 싼 값에 팔아넘겼다. 불상의 복장물은 도난당할 것을 염려하여 때때로 위탁하는 경우도 있는데 흑석사의 복장물 중 상당수가 1996년 5월부터 7월까지 1년 이상 근처 이산파출소 무기고에 보관되었던 적이 있다.(사진 3) 이는 그만큼 사찰 자체에서 문화재의 관리나 도난에 대한 대비책이 부족했던 실정을 말해준다.

복장물은 불상을 조성하거나 보수할 때 몸 안에 봉안하는 불사리(佛舍利), 수정 구슬, 거울, 유리병, 곡식, 향목, 다라니(陀羅尼) 등의 물건을 말한다. 이는 불상이 단순한 조각이 아니라 종교적인 상징물로서 신성함과 생명력을 불어넣은 생명체임을 의미한다. ‘조상량도경’에 의하면, 불상의 복장 안에는 사리와 사리통, 5곡, 5색실, 불경, 의복, 다라니 등을 넣는다고 한다. 특히 오방과 오색 등은 밀교의 금강계 5불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5방위와 색깔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렇듯, 종교적인 의미를 지니는 상징물인 복장물을 훔쳐가는 행위는 불상 자체를 죽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예부터 불상의 머리나 얼굴, 손 등을 훼손하는 것은 부처님의 신체에 상처를 내는 것이라 여겨 막중한 죄목에 해당된다. 7세기 중엽 중국 당나라 때 편찬된 ‘법원주림’에 보면, 지옥 가운데 가장 혹독한 곳인 아비규환 지옥에 떨어지는 자는 이승에 살았을 때 가장 큰 다섯 가지 죄인 오역죄를 지은 사람이다. 첫 번째로 아버지를 죽인 죄인, 두 번째로 어머니를 죽인 죄인, 세 번째로 스님을 죽인 죄인, 네 번째로 부처님의 신체에 상처 낸 죄인, 다섯 번째로 교단의 화합을 깨뜨리는 죄인을 말한다. 그중 부처님 신체를 상처 내는 죄목은 부처님을 공양하고 받들기 위한 조형물인 불상을 파괴한 것과 같은 의미이다. 이렇듯, 불상을 훼손만 해도 가혹한 처벌이 따르는데 불상을 훔치거나 복장물을 파내는 행위야말로 더한 형벌을 받을 것이라는 데에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차이가 없을 것이다.

▲ 1997년 12월9일자 조선일보 기사.

중국에서는 8세기 당나라 때 불상 안에 복장을 넣기 시작하였으나 실제의 예는 송대 이후의 불상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통일신라시대 불상에 복장을 넣기 시작하여 고려시대 불상에서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다. 이는 고려시대에 목조불상이 많이 제작되면서 금동불이나 석조불상에 비해 불상 속에 복장을 안치하기가 용이했던 점도 하나의 요인이다. 장흥 보림사의 경우는 목조사천왕상의 팔과 다리부분에서 전적 200여 책이 나왔으며 합천 해인사 비로자나불상 안에서는 고려시대 의복 10여점이 발견돼 주목을 받았던 적이 있다.

흑석사 아미타불상은 복장에서 나온 ‘아미타삼존복장기’를 보면, 1458년(세조 4) 조선 태종의 둘째아들인 효령대군이 태종의 후궁 의빈 권씨, 명빈 김씨와 함께 왕실의 평안을 위하여 관음, 지장보살을 협시로 하는 흑석사 아미타삼존불상을 조성한 것이라는 내용이 있다. 특히 명빈 김씨는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에서 발견된 32구의 금동불상 중 금동석가삼존불상을 비롯하여 일부 불상을 발원하여 조성했을 정도로 불심이 깊었던 왕실의 후궁이다. 조선 초기에는 억불숭유의 정책으로 불교가 크게 위축되었으나 오랫동안 이어져 왔던 전통 때문에 왕실의 왕비와 후궁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불상이 조성되었다.

흑석사 목조아미타불상은 눈꼬리가 살짝 올라간 얼굴표현이나 어깨가 좁고 상체가 유난히 길게 표현된 신체, 수평으로 입은 내의, 띠매듭 등에서 고려 후기 불상의 특징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조선 초기의 불상으로서는 낯선 모습인데 불상의 얼굴이나 신체표현에서 부처라기보다는 개성이 강한 현세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반면, 머리 위에 끝이 뾰족한 육계(肉髻)를 중심으로 장식된 2개의 계주(髻珠)는 중국 원대 티베트 불교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러한 이중의 계주 장식은 고려 말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조선시대 불상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오른쪽 어깨 위에서 단을 이루며 접힌 옷자락과 왼쪽 어깨 위에 넓게 주름 잡힌 옷 주름 표현도 중국 명대 불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조선시대 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이다. 흑석사 목조아미타불상은 복장기에 의해 조선 초기 왕실에서 발원한 아미타삼존불상으로 발원자와 조성시기, 불상의 존명까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숙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shlee1423@naver.com


[1427호 / 2018년 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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