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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관파절(透關破節)

고은 시인의 성추행 의혹

최영미 시인이 시 ‘괴물’을 통해 문단 내 성폭력을 폭로한 이후 문학계 원로 고은 시인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시 속에 등장하는 성폭력 가해자가 고은 시인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는 “격려 차원에서 손을 잡고 한 것 같다.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성추행이 오랜 세월 상습적이고 수위도 높았다는 주장들이 계속되면서 해명이 무색해지고 있다.

매년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한국 대표 원로 시인에 대한 성추행 논란은 적잖이 당혹스럽다. 고은 시인은 교수와 승려, 시인,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섰던 다양한 삶의 이력으로, 삶의 모습만큼이나 시의 진폭이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독재의 폭압 등 굴곡진 현대사를 온몸으로 관통해 온 우리 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그런 시인이기에 국민들은 그가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가 되기를 갈망해왔다. 그러나 이번 성추행 폭로로 정의롭게 여겨졌던 그의 삶이 신기루처럼 흩어질 위기에 처해있다.

물론 그에 대한 비판이 과도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원했던 원치 않던 그는 이 시대 문화 권력이다. 가진 힘만큼이나 책임 또한 무겁다. 그래서 시인은 결단해야 한다. 시인이 그토록 역겨워했던 위정자들의 뻔뻔함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 적당히 사과하고 위기를 모면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는 사리 같은 시들이 아깝고, 치열했던 삶이 무참하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통렬하게 반성하고, 사회법에 따르거나 아니면 스스로에게 그에 상응하는 벌을 내려야 한다. 그래서 반성 없는 이 시대 성폭력 범죄자들에게 가해자가 취해야 할 바른 도리를 오히려 온 몸으로 보여줘야 한다.

선가에 투관파절(透關破節)이라는 말이 있다. “마디마디 난관을 부수고 관문을 투과 한다”는 의미다. 성폭력은 문사들의 무애행이나 광기 등으로 포장될 수 있는 일탈이 아니다. 누군가를 평생 몸서리치며 살아가게 만드는 무서운 범죄다. 변명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스스로의 잘못을 곧은 눈으로 대하는 고은 시인다운 투관파절의 모습을 기대한다.

김형규 법보신문 대표 kimh@beopbo.com
 

[1428호 / 2018년 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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