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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파타차라 ①

기자명 김규보

“파타차라여! 지금 무엇을 하는가”

“이보게. 저것 보이는가. 벌써 열흘을 넘긴 것 같은데. 백주대낮에 무슨 추태인가 그래.”
“그러게 말일세. 가만히 앉아라도 있다면 모를까 하루 종일 똥 마려운 개처럼 돌아다니니 어딜가도 눈에 띄는구먼. 오늘도 재수 옴붙었네. 퉤.”

시장통서 돌팔매질 당하면서
모두들 미친여자 취급했지만
붓다만은 그녀를 거두어들여

두 노인이 거리 한복판 시커먼 물체를 손가락질했다. 못 볼 것이라도 본양 불쾌한 표정이었다. 그들만이 아니다. 사위성 시장통을 오가는 모든 사람이 얼굴을 찌푸리고 쳐다보았다. 고약한 악취에 더러는 코를 막았고 더러는 고개 돌렸다. 건장한 청년 열댓 명이 우르르 몰려와 실실거리며 돌팔매질했다. 웅크렸던 검은 물체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천 조각만 간신히 걸쳐 벌거벗다시피 한 여인이었다. 봉두난발에 시커먼 때가 덕지덕지 붙은 모습은 사람보다 들짐승에 가까웠다.

“아들이 죽었다. 남편이 죽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죽었다. 몹쓸 세상! 빌어먹을 세상!”

여인은 자신을 꼬나보는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악에 받힌 쇳소리를 허공으로 내질렀다. 자신의 얼굴과 몸 곳곳을 손톱으로 그어 내렸고 피를 뒤집어쓴 채로 계속 악다구니 썼다. “미친 여자야 조용해라.” “소리 지르려거든 여기서 꺼져.” “더러운 악마, 당장 물러가.” 소곤거리던 사람들은 이제 대놓고 욕지거리를 쏟아냈다. 청년들이 여인 코앞까지 다가가 발로 얼굴과 몸, 팔과 다리를 짓밟았다. “악!” 여인이 외마디 비명을 토해내며 몸부림쳤다. 누구도 말리려 하지 않았다. 대신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되는 듯 웃으며 쳐다보았다.

발길질에 눌린 여인이 일순간 몸부림을 멈추고 파르르 떨었다. “드디어 죽은 겐가? 이보게들. 저 여자가 움직이질 않는구먼.” 노인의 말에 청년 한 명이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얼굴을 들어 올렸다. 여인의 입에서 희미한 숨결이 흘러나왔다. “운 좋은 줄 알아라.” 청년들이 거리를 빠져나가자 여인을 둘러쌌던 사람도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어떤 이가 아들에게 속삭였다. “얘야. 저 여자를 파타차라라고 부른단다. 옷 입지 않고 걷는 여자란 뜻이지. 실성했으니 절대로 가까이 가지 말거라.”

파타차라는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얼핏 살펴봐도 온몸은 상처투성이였다. 돌덩이에 파이고 발길질에 찢긴 흔적이 말라붙은 피와 너저분하게 엉켰다. 남은 힘을 쥐어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 떨어진 시장통엔 어둠만이 자욱했다. 욱신거리는 몸을 부여잡았다. 아들을 볼 수 있다면. 남편을 만날 수 있다면. 부모님을 안을 수 있다면. 하지만 죽었어. 다 죽고 말았어. 빌어먹을 세상…. 그리움과 분노가 머릿속을 태워버릴 듯 활활 타올랐다. 잠시 정신을 되찾았던 파타차라는 또다시 풀린 눈이 되어 쇳소리를 토해냈다. 그리고 정처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기원정사에 모인 대중은 자세를 차분하게 가다듬었다. 거룩한 진리가 오늘도 기쁨을 안겨줄 것이다. 고요에 잠겼던 사방이 들뜬 기운으로 충만해졌다. 붓다가 천천히 걸어와 가운데에 앉았다. 대중이 예를 갖추었다. 잠시 눈을 감았던 붓다가 설법을 하는 대신 먼 곳을 응시했다. 멀리서 천만 걸친 여인이 다리를 저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기원정사의 침묵은 단번에 깨졌다. “저 여자를 오지 못하게 하라.” 누군가 외치자 몇몇 이가 뛰어갔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여인의 몸을 잡고 거칠게 흔들며 기원정사 밖으로 밀어내려 했다.

“그 여인을 이곳으로 오게 하라.”

붓다의 말은 기원정사에 다시 한 번 침묵을 새겨 넣었다. 놀란 사람들이 손을 거두었다. 여인은 붓다 앞까지 다가갔다. “파타차라여.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인가. 너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살펴보아라.”

풀려 있던 파타차라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천으로 감싼 자신의 육신을 내려다보았다. 부끄러움을 느끼고 무릎을 꿇었다. 참혹했던 옛 기억이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 이보다 기구할 수 있을까. 파타차라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김규보 법보신문 전문위원 dawn-to-dust@hanmail.net
 

[1429호 / 2018년 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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