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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원의 ‘동산도수도(洞山渡水圖)’

기자명 김영욱

나와 하나 된 진여를 보다

▲ 전(傳) 마원 作, ‘동산도수도(洞山渡水圖)’, 13세기, 비단에 채색, 77.6×33.0㎝, 일본 동경국립박물관(출처: ‘禪: 心をかたちに’ 2016년).

一片秋聲落井桐(일편추성낙정동)
老僧驚起問西風(노승경기문서풍)
朝來獨步臨溪上(조래독보임계상)
七十年光在鏡中(칠십연광재경중)

‘한 조각 가을 소리에 우물가 오동잎 떨어지니 늙은 중이 놀라 일어나 가을바람 묻네. 아침에 홀로 걸어 시내에 서 있으니 칠십 년 세월이 거울 속에 담겨 있구나.’ 법견(法堅, 1552~1634)의 ‘초가을에 느끼는 바가 있어(初秋有感)’.

깨달음 얻은 동산양개 모습
대각선 구도로 화면을 구성
공간의 깊이 더해 인물 집중

스님이 발걸음을 멈춘다. 시선을 떨구자 나지막한 탄성을 내뱉는다. 순간의 의문과 찰나의 깨달음. 생각의 교차점에서 미동조차 없다. 옷자락 움켜쥐고 죽장 짚은 그대로다. 이내 아스라이 드러난 산자락 주변에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오직 바람에 사각거리는 갈대 소리만 홀연히 정적을 깨울 뿐이다. 그가 냇가에서 본 것은 무엇인가? 바로 동산양개(洞山良价, 807~869), 자신의 모습이다.

동산양개는 선가의 다섯 종파 중 하나인 조동종(曹洞宗)의 개조다. 어느 날 그는 스승인 운암담성(雲巖曇晟, 782~841)과 선문답을 주고받았다. 동산이 “화상께서 입적하신 뒤에 누가 ‘화상의 초상을 그릴 수 있겠는가?’라고 하면 어찌 대답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운암이 답하기를, “그에게 ‘이것이 이것(這箇是)’이라고 대답하면 되지”라고 말했다. 이후 스승이 입적하고 강서성 의풍현(宜豊縣)의 큰 냇가에 이르렀을 때였다. 동산은 냇가를 건너다가 우연히 거울처럼 맑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선문답의 의문이 찰나의 깨달음이 된 순간이었다.

‘동산도수도’는 남송 광종(光宗)~영종(寧宗) 연간의 화원 대조(待詔, 궁정의 화원에서 가장 높은 직위)인 마원의 전칭작(확증은 없으나 해당 작가의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동산이 냇가를 건너다가 선가의 이치를 깨닫게 된 계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선기도(禪機圖)이다. 작가는 한쪽에 치우친 산을 따라 대각선 구도로 화면을 구성해 공간의 깊이를 더하고 인물에 집중하는 효과를 부여했다. 영종의 황후인 양후(楊后, 1162~1232)의 서체로 적힌 시는 냇가에서 별안간 깨달음을 얻은 동산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물에 비친 것은 자신 그대로의 모습인 ‘진여(眞如)’와 하나가 된 동산이다. 불가에서는 주체와 객체, 내부와 외부로 나누는 것을 허망한 것으로 본다. 진여는 절대적인 진리 자체로서 무분별하여 본래 하나인 성질을 지닌다. 운암이 동산에게 말한 ‘이것이 이것’은 이분법적인 사량분별에서 벗어난 진여와 내가 하나가 된 것을 의미한다. 큰 깨달음을 얻은 동산이 그 자리에서 게송을 지으니, 이것이 바로 선종오도송(禪宗悟道頌)의 효시가 된 ‘과수게(過水偈)’이다.

‘절대 남을 따라 찾지 말라, 멀고 멀어 나와는 소원해지니. 나 이제 홀로 가매, 곳곳에서 그를 만나네. 그는 이제 바로 나지만, 나는 이제 그가 아니구나. 모름지기 이렇게 깨달아야, 바야흐로 진여와 하나가 되리.’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나와 마주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29호 / 2018년 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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