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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고 고통스런 마음부터 꺼내보라”

  • 교계
  • 입력 2018.03.01 18:09
  • 수정 2018.03.05 13:42
  • 댓글 2

인제 백담사 동안거 해제…조실 무산오현 스님 법어

▲ 설악산 백담사에서 동안거를 난 스님들이 수심교를 나서고 있다.
“혜가 스님이 달마대사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스님, 마음이 너무 힘듭니다. 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세요.’ 달마대사가 묻습니다. ‘그래! 그러지. 괴로운 그 마음을 내놓아 보거라. 그럼 내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마!’ 혜가 스님은 자신의 괴로운 마음을 찾아보았으나 그 마음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달마대사 안심법문 인용
기본선원·무문관·향성선원
총 80명의 수좌스님 정진
걸망 지고 운수행각 나서

이번에도 간결했다. 설악산 백담사 무금선원(無今禪院, 기본선원과 무문관) 조실 무산 오현 스님이 짧은 법어를 남기고 법좌에서 떠났다. 평소 한 두 마디만 하고 종정 해제 법어를 낭독하게 했던 오현 스님이었다. 그래도 안심법문을 하고 주장자를 쳤으니 동안거 정진 대중은 활구법문을 들은 셈이다. 과거 “팔만대장경 속에는 부처가 없다”며 “절간에 부처님이 있느냐? 절은 스님들 숙소에 불과하다. 시장 노점상, 노숙자, 주막 주모 등 중생들의 삶이 바로 팔만대장경이고 부처며 선지식”이라고 일갈했던 모습과 달리 부드러운 법어 속에 뼈를 심었다. ‘괴롭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던 혜가 스님처럼 도량 안에서든 밖에서든 헛공부 하지 말라는 당부였다. 짧지만 울림을 남겼다.

정월대보름을 하루 앞둔 3월1일 설악산 백담사가 동안거를 해제했다. 무금선원은 고암 스님의 선원 건립 원력이 전법제자 성준 스님을 거쳐 무산 스님으로 이어져 1998년 백담사에 자리했다. 이듬해인 1999년 오현 스님은 신흥사에 향성선원도 문을 열었다.

▲ 백담사 무문관. 공양 30분을 빼면 철저한 고독과 침묵 속에 자신을 던져 일대사를 해결할 열쇠를 찾는다.
무금선원은 무문관과 기본선원으로 이뤄졌다. 자물쇠로 밖에서 문 걸어 잠그는 무문관은 폐관정진하는 곳이다. 공양 30분을 빼면 철저한 고독과 침묵 속에 자신을 던져 일대사를 해결할 열쇠를 찾는다. 오현 스님은 물론 유나 영진 스님 그리고 조계종 전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무문관에서 이번 동안거를 났다.

백담사에 기본선원이 들어선 때는 2002년이다. 습의, 강의, 청규, 선종사 등 기본 교육과 큰스님 법문 청취, ‘금강경’ 독송, 108대 참회는 물론 하루 7~8시간 화두참구가 이어진다. 성도재일(음력 12월8일)을 앞두고서는 7박8일 동안 기본선원 모든 대중은 수마를 물리치고 용맹정진한다. 하루 세끼 공양하는 3시간과 죽이나 미음을 먹는 간식시간 30분을 제외하고 20시간 이상 정진한다. 향성선원은 새벽 3시부터 저녁 9시까지 화두를 든다. 하루 4번 8시간 동안 한 소식 듣고자 가부좌를 튼다.

정유년 동안거 기간 동안 조계종 기본선원 56명, 무문관 12명(이상 무금선원), 신흥사 향성선원 12명 등 80명의 수좌스님들이 설악산에서 정진했다. 전국선원수좌회가 정진대중 현황을 정리한 ‘정유년 동안거 선사방함록’에 따르면 이번 동안거에는 전국 94개 선원(총림 8곳, 비구선원 57곳, 비구니선원 29곳)에서 총 2032명(총림 286명, 비구 1108명, 비구니 638명)의 대중이 정진한 것으로 집계됐다.

▲ 백담사에서 동안거를 보낸 학인스님이 계곡의 무수한 돌탑들을 몇 차례 응시한 뒤 수심교를 건넜다.
짧았던 해제법회 뒤 설악산에 방부를 들였던 스님들은 간단한 공양을 마치고 걸망을 짊어졌다. 생필품과 옷가지 몇 개, 대중공양 받은 몇몇 공양물이 전부였지만 걸망은 그득해 보였다.

신흥사에서 왔다는 한 학인스님의 걸망이 그랬다. 해제했다지만 아직도 화두를 붙드는 양 파르라니 깍은 머리에 서슬 퍼런기운이 서렸다. 오현 스님의 안심법문이 맴돈다고 했다. 백담사를 나서는 ‘마음 닦는 다리’ 수심교(修心橋)를 내딛는 걸음이 진중했다. 간혹 계곡에 무수한 돌탑을 지그시 바라보다 다시 속세로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오랜 가뭄 끝, 해제 전날 밤 내내 쏟아지던 눈이 고목 가지에 앉았다. 비로소 뻣뻣하던 가지가 고개를 숙인다.

인제=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1430호 / 2018년 3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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