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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아소카 대왕의 전법륜

기자명 김정빈

인도 전역에 법 전하고 부처님 표지석 세우다

▲ 그림=근호

부처님의 실제 모습을 유추해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자료는 남방불교 권에 전승되어 오는 팔리 문헌이다. 하지만 팔리 문헌과 북방불교 권에 전승되어 오는 대승불교 문헌에는 과학이 내린 결론을 기반삼아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현대인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신비스러운 내용이 많다.

부처님 신화 속 인물 아닌
실존했다는걸 석주에 새겨
돌기둥에 법의 칙령 남겨
전법지 곳곳에 우물 공양
토인비 “가장 위대한 왕”

불교 경전은 마야 부인은 싯다르타 태자를 옆구리로 출산했다고, 싯다르타 태자는 탄생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었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과학적으로는 불가능하며, 역사상 그와 비슷하거나 그에 준하는 일이 일어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믿기 어려운 신비스런 내용을 전승해오기는 다른 종교 또한 마찬가지이다. 기독교의 신약성경은 예수가 죽은 후 사흘째 되는 날 부활하여 제자들과 40일을 함께 지냈으며, 이후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한다. 하지만 이를 과학 진실과 똑같은 의미의 진실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이 미심쩍음을 해소하기 위해 기독교는 자신들만의 신학 이론을 제시하지만 그 이론을 비웃으며 예수는 실재 인물이 아니라 여러 문화권의 신화를 조합하여 창조된 가공의 인물이라는 주장이 생겨났다.

부처님이 신화적인 인물이라는 주장도 같은 기조 위에서 제기되었다. 1856년에 불교학자 윌슨은 ‘붓다와 불교’에서 “사캬무니 붓다가 실재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은 가능한 이야기이다”라고 주장했다. 1975년에 프랑스의 세나르는 ‘붓다의 전설에 대한 에세이’에서 “붓다는 결코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다. 붓다는 태양신이었던 비유적인 인물이었다”라고 주장했다.

1896년 12월에 부처님이 실존했었는지에 관한 논의에 종지부를 찍는 일은 일어났다. 독일의 고고학자 휘슬러가 인도 룸비니 근처에서 오래된 돌기둥을 발견했는데, 거기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많은 신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피야다시 왕은 즉위 20년이 지나 친히 이곳을 찾았다. 여기서 붓다 사캬무니께서 태어나셨기 때문이다. …룸비니 마을은 토지 세금을 면제하고, 오직 생산물의 8분의 1만을 징수한다.”

비문에 등장하는 피야다시 왕은 마우리아 왕조의 제3대 통지차인 아소카(Asoka, BC304~BC233)의 다른 이름이다. 역사상 실존했던 아소카 왕이 세운 돌기둥이 부처님이 실제로 세상에 오셨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준 것이다.

아소카는 인도 역사상 가장 넓은 지역을 지배한 군주이기 때문에 ‘대왕’이라 불린다. 더하여 그는 인도 역사상 가장 현명하고 자비로운 군주 중 한 사람, 즉 ‘성왕’이었다. 아소카의 성품과 업적에 대하여 역사학자 웰즈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의 한 사람, 어쩌면 유일하게 큰 별로서 찬연히 빛나는 사람”이라고, 토인비는 “인류 역사상 수많았던 군주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업적을 남긴 거룩한 왕”이라고 칭송했다.

아소카가 처음부터 거룩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이복형과 그를 추종하는 많은 사람을 죽이고 왕이 되었으며, 왕위에 오른 뒤에는 이웃 나라를 침공하여 영토를 넓히는 일에 몰두했다. 재위 8년이 되던 해에 그는 칼링가 국을 공격하여 승리했는데, 그 과정에서 피아간에 수십만 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폐허가 된 칼링가 수도를 직접 둘러본 아소카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무력에 의한 통치’를 중단하고 ‘법에 의한 통치’를 하기로 결심했다. 법(法, Dhamma)은 아소카에게 있어서 국적·민족·종교가 같고 다름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이 지켜야 하는 영원한 원리를 의미했으며, 그는 그 법의 근거를 부처님의 가르침(법)에 두었다.

이후 아소카는 전국을 순방하며 백성들에게 법을 가르쳤는데, 그가 각 지역의 바위나 돌기둥에 새긴 법의 칙령들 중 판독이 가능한 것은 36점에 이른다. 그가 법을 가르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믿는 법을 자신이 지배하는 영토 안에 구체적으로 구현했다.

이 자비로운 통치자는 전국 곳곳에 우물을 파고, 여행자들을 위한 쉼터를 마련했다. 누구나 따서 먹을 수 있는 과일나무를 심고 약초를 재배했으며, 무료 병원을 세워 백성들을 치료하는 한편 수많은 고아원과 양로원을 설립했다. 또한 그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동물 보호 및 학대 금지법을 제정하였고, 수의사를 양성하여 동물병원을 세웠다.

그는 부처님의 유적지를 여러 차례 순례하며 탑을 보수하는 등 신심을 보였다. 목갈라풋타 장로가 주관하는 제3차 불경 결집을 후원하였으며, 자신의 통치 이념을 알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해 그리스·이집트·스리랑카 등 16개국에 사절단을 파견했다. 그리하여 인도 국내와 함께 이웃나라에까지 불법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불교 신자이기는 했지만 그는 타종교에 관용적이었다. 그는 왕이 된 사람은 마땅히 “현세·내세에 있어서 일체 생명의 이익과 안락을 도모”하며, “이보다 더 숭고한 사업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숭고한 사업에 진력했고, 마침내 숭고 그 자체가 되었다.

기독교 사상은 사물을 둘로 나눠 그중 하나를 취하는 이론, 즉 양변론(兩邊論)이다. “쓰지도 달지도 않은 자는 뱉으리라”라고 예수는 말하지만 부처님은 중도론(中道論)을 설하신다. “게으름도고행도 바람직하지 않다. 중도만이 바른 길이다”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예수는 이것과 저것을 제시한 다음 택일을 요구하고, 부처님은 이것과 저것의 장단점을 비교한 다음 장점만을 취한다. 부처님에게는 이것과 저것 다음의 세 번째 길이 있으며, 중도로서의 그 길이 바른 길인 것이다.

예수의 길은 단순하고, 단순하기에 대중이 이해하기 쉬우며, 이해한 다음 곧바로 행동할 수 있다. 그에 비해 부처님의 길은 이해하기 어렵고, 그래서 행동이 더디다. 설사 행동을 한다고 해도 그 행동은 중도 지혜에 의해 통제되기 때문에 온화하기는 하지만 명료해보이지 않을 수 있다.

기독교가 많은 순교자를 낸 것과 많은 이교도들을 죽인 것, 많은 악인과 함께 남을 위해 헌신한 사람을 많이 배출한 것은 이 때문이고, 불교가 기독교에 비해 적은 수의 순교자를 내고 이교도를 죽이지 않은 것, 적은 수의 악인과 함께 남을 위해 헌신한 사람을 적게 배출한 것의 원인은 양변론과 중도론에 있다.

그래서 아소카의 업적은 더욱 빛난다. 그는 불교인도 남을 위한 열성적인 헌신이 가능하다는 것을, 중도론에 입각한 ‘법의 정복’이 양변론에 입각한 ‘힘의 정복’보다 어떻게 훌륭한지를 잘 보여주었다. 법은 수레바퀴로 상징되어 법륜(法輪)이라 불린다. 부처님으로부터 배운 출세간의 법의 수레바퀴를 세간에 이끌어와 굴린, 아소카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었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30호 / 2018년 3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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