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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악마도 때로 악몽을 꾼다

죽음의 신도 행복 전도되는 악몽에 두려움 표출

▲ 아잔타 26번굴. 붓다에게 활 겨눌 준비를 하는 마라. 깨달음의 전후로 붓다는 마라와 여러번 대결하며, 그 전에 마라는 악몽을 꾼다.

‘랄리타비스타라(Lalitavistara)’는 흥미로운 경전이다. 당대까지 회자되던 붓다의 전기적 사건들을 집성하면서도 그 위에 풍부한 상상력으로 다듬어진 소설적 건축물들을 쌓아올렸기 때문이다. 이 전기적 경전은 마치 희곡이나 소설의 한 대목을 보여주는 것처럼 매우 흥미로운 디테일들을 곳곳에 펼쳐놓는다. 다른 경전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는 흥미로운 상상력이 붓다의 일생을 더 흥미롭게 엮어낸다. 예를 들면, 깨달음에 도달한 붓다와 그에 맞서는 악마 마라(Māra)의 경쟁적 구도가 그렇다. 이 경쟁 구도는 다른 경전에서도 많이 묘사되지만, 이 경전에서는 훨씬 미세한 소설적 설정이 돋보인다.

‘랄리타비스타라’ 속 마라가 꾼
먼지·자갈 덮여 어둠 가득한 집
자신만 두고 떠난 부하·친족들
아들은 석가모니에 귀의하고
웅장한 궁전 무너져 내리는 등
32가지 꿈 장면은 사건의 전조

꿈 이야기 들은 아들 설득에도
두려움 속 붓다 공격했다 전멸
경전 속 꿈은 교리적 의도 있어
꿈 대하는 해석 방식 잘 살펴야

이 두 존재의 대결 구도를 묘사하면서, 저자는 먼저 붓다의 속내를 묘사한다. 욕계를 지배하고 있는 마라를 굴복시키지 않는다면 붓다 자신이 완전한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그는 마라를 조복시킬 결심을 한다. 그의 의중은 미간의 빛을 통해 쏟아져 나오고 삼계를 비추게 된다. 그 순간 마라는 악몽을 꾼다. 욕계의 우두머리이자 죽음의 왕인 마라조차 그 악몽에서 깨어나 두려움에 몸을 떨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석가모니가 32상호를 갖춘 것처럼 마라는 이 꿈에서 서른두 가지의 꿈 장면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것들은 모두 어떤 징조를 보인 것들이었다.

경전은 이 마라가 꾼 악몽을 다음과 같이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먼저 마라가 꿈속에서 본 그의 집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또한 먼지와 자갈들로 덮여 있었다. 마라는 두려움에 떨면서 사방으로 이리저리 도망 다녔다. 왕관은 잃어버리고 귀걸이는 귀를 찢으며 떨어졌다. 입술과 목, 그리고 입은 바싹 타들어갔으며, 심장은 터질 듯 쿵쾅거렸다. 궁 안의 연꽃 연못은 다 증발해 말라버렸으며, 정원에 있던 식물들의 잎과 꽃, 열매들은 모두 말라 쪼그라들었다. 게다가 백조와 공작, 백로 등과 같은 새들은 모두 날개가 부러졌다. 마라 자신이 스스로 흥을 돋울 때 쓰던 악기들, 다마루, 타블라, 비나 등이 모두 산산조각 부서져 바닥에 흩어졌다.

마라의 부하들과 친족들은 모두 그를 홀로 내버려둔 채 줄행랑을 쳤으며 자신의 부인 마리니는 침대에서 굴러 떨어지고는 자신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치는 것이 아닌가. 아들놈은 가장 용맹스럽고 총기가 뛰어났지만 깨달음의 자리에 앉아있는 석가모니에게 귀의하고, 딸년들은 울면서 자신에게 무엇인가 하지 말 것을 계속 울부짖는 것이었다. 그 뿐인가, 자신의 높고 웅장한 궁전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먼지로 풀럭거렸으며 그 속에 서 있는 자신은 더러운 옷을 걸친 채 핏기 없는 얼굴로 서 있었다. 야차와 나찰 무리의 장군들은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울고 있었다. 욕계의 팔부중과 온갖 천신들은 석가모니를 우러러 그의 말을 듣고 있었으며 마라는 그들을 저지할 수조차 없었다. 전투 중이었던 마라는 자신의 칼집에서 칼을 빼기 위해 애를 썼지만 그마저도 빼들 수가 없었다. 부하들은 그를 버리고 도망갔으며 전투를 위한 연대는 무산되었다. 욕계에 살던 행운의 여신 슈리(Śrī)가 꿈속에서 울고 있었다.

이 마라의 꿈이 흥미로운 점은 죽음의 신 마라도 풍요와 번영, 행복을 꿈꾸며 그것이 전복되는 악몽조차 두려워한다는 점이다. 아니 죽음의 신이 꿈을 꾼다는 것 자체이기도 하다. 명백한 파탄과 몰락의 징후 앞에서 마라는 순진할 정도로 덜컥 겁을 집어 먹는다. 이러한 특성은 인간과 신의 구분 없이, 욕계에 사는 존재들의 일반적인 특징이란 말인가. 심지어 꿈속에서 집안을 장식하는 상서로운 물 단지가 깨지는 것을 보고도 마라는 두려워했다.

이런 악몽을 꾸고 마라는 잠에서 일어나 곧 가족과 자신의 부하들을 모두 소환한다. 경전은 상세하고도 길게 마라가 꾼 꿈자리를 묘사하며 뒤이어진 사건들을 열거한다. 그리고 마라의 관점에서 석가모니를 그려내고 있다. 6년간의 고행을 통해서 이제 곧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고자 하는 인간이 보리수 아래에 앉아있으니 그를 물리쳐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마라의 영토가 파괴될 위험이 있으니 서둘러 그를 제거해야한다고 역설한다.

이 때 마라의 아들 사르타바하(Sārthavāha)가 마라의 모습에서 이상한 점을 느낀다. 결코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었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아버지가 몸서리치는 적을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당신의 얼굴은 왜 그토록 하얗게 질려있나요, 당신의 심장이 이토록 심하게 뛰고 사지를 떨고 있는 모습은 처음입니다.’ 전쟁을 준비하던 마라는 지난밤의 꿈을 이야기해주었다. 꿈을 듣고 있었던 아들은 곧장 마라가 전쟁을 포기할 것을 종용한다. 전쟁의 승리자는 전투에 앞서 어떤 불길한 징조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오직 패배자만이 그런 불길한 꿈의 전조를 갖는 것이라고 마라의 아들은 계속 설득한다.

자신의 악몽을 무시하며 마라는 거듭 전투 의욕을 불태운다. ‘결연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전투에서 승리하는 법이지.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면 승리는 우리 것이야. 나와 나의 부하들을 석가모니가 본다면, 그도 용기를 잃고 마침내 내 발 밑에 무릎을 꿇겠지.’ 아들 사르타바하가 다시 마라를 설득한다. ‘약해빠진 군대라면, 병사가 아무리 많아도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마치 단 하나의 태양이 수많은 반딧불을 사그라뜨리는 것처럼, 단 한 명의 영웅이 그 군대를 쓰러뜨릴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마라는 끝내 아들의 충고를 거부한다. 그리고 한 번도 경험할 수 없었던 무수한 악마의 부하들을 동원하여 그 보리수 밑을 향한다. 이하의 결과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바이다. 하지만 ‘랄리타비스타라’는 이 마라의 전투원들 개개인에 대한 허세와 전투의 모습들을 어느 경전보다 더 생생히 묘사한다.

이 경전에서 보여주고 있는 마라의 악몽은 일견 다른 불경 속의 주인공들이 보여준 악몽과 유사한 풍경을 보여준다. 야소다라 등이 꾸었던 꿈도 이런 종류의 흉몽이었다. 그러나 야소다라의 악몽은 싯다르타 태자에 의해 ‘의도적으로’ 길몽으로 해석되었으며, 꿈이 곧장 현실화되지 않았다. 반면 경전 속에서 마라의 악몽은 해석되거나 해몽되지 않는다. 그리고 곧장 그의 악몽은 현실이 되어 버린다. 불경 속에서 이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경전 속 꿈의 이야기나 꿈의 해석이 아닐 것이다. 불경 속의 꿈은 정신분석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대부분 꿈의 내용들은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인공의 이야기이며, 설사 꿈에 대한 후대 주석가의 해석일지라도 교리적인 의도가 실린 해석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동일한 꿈의 내용을 대하는 불전 문학과 주석가들의 어떤 일관된 해석 방식이다. 다만 필자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지금 숨겨놓으련다.

심재관 동국대 연구초빙 교수 phaidrus@empas.com
 


[1430호 / 2018년 3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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