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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들 기행과 ‘미투’

선사들 일화에도 성폭력 등장
미화 대상 아닌 부끄러운 일
고은 시인도 길 잃은 노시인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던 고은 시인의 성추행 사건이 연일 언론지상에 오르내린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고은 시인이 외국 언론과 인터뷰를 했지만 비난은 잦아들지 않는다. 고 시인은 “최근 의혹들에서 내 이름이 오르는 것은 유감”이라면서도 “나 자신과 아내에게 부끄러울 일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시인이 소셜미디어에 자신이 목격했던 고은 시인의 성추행 및 희롱장면을 털어놨다. 2008년 4월, 초청강연회 뒤풀이 자리에서 고은 시인이 옆에 앉은 여성의 신체 부위를 더듬었고, 나중에는 벌떡 일어나 자신의 성기를 노출하더니 “너희들 이런 용기 있어?”라고 했다는 것이다. 고은 시인은 자신이 고정관념에 걸림 없음을 보여주려 했는지 모르지만 이 정도면 상처와 수치심만 불러일으키는 기행(奇行)일 따름이다.

불교계에서는 오랫동안 괴팍스런 언행이 ‘무애행’ ‘걸림 없음’ 등으로 미화됐다. 일부 고승들의 음주, 육식, 욕설도 사람들의 분별심을 일깨워주는 방편으로 포장됐다. 심지어 불사음 계율을 어기는 행위들까지 초탈한 삶으로 간주됐고, 그것이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선승들의 자유로움처럼 간주됐다. 문단에서도 고승들의 확인되지 않는 일화들을 앞 다퉈 소설화했다.

근대의 한 선승과 제자의 일화도 그중 하나다. 어느 날 두 스님이 탁발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제자가 걸망이 무겁다며 쉬어가자고 했다. 스승은 저 앞마을까지 가면 힘들지 않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고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 스승은 느닷없이 아낙에게 입맞춤을 했고 아낙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이를 지켜본 마을 사람들이 몽둥이를 들고 죽일 듯이 쫓아왔다. 스승과 제자는 정신없이 도망갔다. 사람들이 쫓아오지 않을 무렵 제자가 스승에게 “속인도 하지 않는 짓을 왜 스님이 하셨느냐”고 물었다. 이때 스승은 “방금 도망쳐 올 적에도 걸망이 무겁더냐”고 되물었고, 제자는 이 세상 모든 것이 마음 장난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 일화에는 깨달음 지상주의만 있을 뿐 그 여성이 감수해야할 상처와 모멸감, 마을 사람들의 분노, 불교와 출가자에 대한 이미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와 비슷한 선사들의 무애행 일화가 한둘이 아니다. 심지어 입에 욕을 달고 살았다는 한 선사와 관련해서는 대통령 및 고관대작 부인과 일반여성에게 입에 담기도 민망한 육두문자를 썼던 일이 대단한 무애행처럼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미투운동’의 가해자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 이재형 국장
고은 시인은 1950년대 초부터 10년간 승려로 지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신라말 구산선문을 방불케 하는 한국 선불교의 전성기였다. 일제강점기와 군사정권으로 이어지는 억압과 분노의 시대에 선은 해방구이자 위안처였을 수 있다. 독재에 맞서 시를 무기로 싸웠던 전사 고은 시인도 선의 호방함에 한껏 매료됐고 이를 찬양했다. 그러나 타인의 상처와 희생 위에서 자유를 구가하는 것은 결코 선적이지도 불교적이지도 않다.

시인은 시대를 읽는 눈이다. “부끄럽지 않다”는 항변이 되레 갈 길을 잃어버린 노시인의 안타까운 절규로 읽힌다.
 
이재형 mitra@beopbo.com
 


[1431호 / 2018년 3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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