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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베트남 전쟁

기자명 이병두

지난 3월11일, 천주교 제주교구장인 ‘한베(한국-베트남)평화재단’ 이사장 강우일 주교가 1968년에 한국군이 민간인 135명을 학살한 것으로 밝혀진 베트남 꽝남성의 ‘하미마을 학살 50주기 위령제’에 참석해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에 보내는 성명서에서 베트남 방문 기간에 “공식적이며 공개적인 사과를 간곡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 성명서에 따르면, 그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이던 2012년 베트남에서 열린 아시아주교회의 연합회 제10차 총회에 참석했을 때에도 “한국 군인들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잔혹한 행위를 통하여 베트남 민간인들, 힘없는 노인과 여성과 어린아이들까지 목숨을 빼앗은 것에 대해서” 진심어린 사죄의 뜻을 밝혔다고 한다.

한국과 베트남은 지난 1992년 국교를 회복한 이래 과거의 아픈 역사를 딛고 경제와 문화 방면에서 우호 협력 관계를 다져가고 있지만, 우리 군 병력이 참전했던 베트남 전쟁 기간 중 깊게 파인 감정의 골까지 치유하기에는 아직도 어려움이 많다. 그리고 당시 파병되었던 우리 장병들도 가슴에 새겨진 상처를 털지 못하고 있으므로, 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도 정부의 공식 사과는 절실하다.

개인과 똑같이 국가도 실수와 악행을 저지를 수 있지만, 과거의 잘못을 알게 되었을 때 사과와 참회를 할 수 있으면 그 미래에 희망을 가져도 될 것이다. 우리가 일본의 미래를 낙관하기 어려운 이유도, 자신들이 저지른 악행에 대한 배상은커녕 사실 인정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베트남 전쟁은 국제적으로는 ‘프랑스-미국’으로 이어지는 서구 제국주의 세력이 반공(反共)전선 구축을 명분으로 지배를 이어가려는 데 저항한 ‘베트남 민족의 저항’에서 비롯된 것이고, 베트남 국내에서는 가톨릭교도를 주축으로 하는 기득권 세력이 외세에 기대어 나머지 국민들을 억압하는 데에서 시작된 ‘저항 운동’의 성격이 강했다.

1955년 왕정이 무너진 뒤 미국의 지원으로 8년 동안 권좌에 머물다 1963년 쿠데타로 실각하여 처형될 때까지 남베트남 정권의 제1인자였던 응오 딘 지엠(Ngo Dinh Diem)은  지주층과 가톨릭교회 세력을 기반으로 강력한 반공주의 정치를 펼쳐서 미국의 지원을 받아냈다.

17세기 이래 대대로 가톨릭을 신앙하는 집안에 태어나 열다섯 살에 사제의 꿈을 안고 가톨릭 학교에 들어간 경력이 있었던 그는 집권 이후 전 국민의 90%에 가까운 베트남 불교도들을 차별하였다. 집권 초기에 그의 지원으로 북베트남의 가톨릭 신자 60%가 남쪽으로 이동했고, 가톨릭 교인들에 대해서는 고무 농장 등의 토지 할당과 세금 감면 정책 등을 펼쳐 확고한 지지 기반으로 만들었으며, 그의 집권 기간 동안 가톨릭교회와 신자들은 토지 개혁에서도 면제되어 남베트남에서 가장 많은 토지를 소유하였다.

반면에 군대 포격으로 사찰을 파괴·철거하고, 불교도들을 탄압·처형하였으며, 1963년 5월에는 대주교였던 형의 요구로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금지한 데에다 스님들에 대한 총격 사건까지 발생하였다. 이에 항의하는 불교도들의 시위를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결국 6월11일 틱광득(Thich Quang Duc)스님의 소신공양이 일어나 전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그러나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그의 제수 마담 누가 이 소신공양을 “땡중의 바베큐 쇼”라고 비하하면서 불교도들의 저항을 더욱 강하게 하고 이후 스님들의 소신이 이어졌던 것이다.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우리 정부의 진정한 사과를 촉구한 강우일 주교의 행보는 고맙다, 그러나 소수 가톨릭교도가 미국의 반공주의에 기대어 다수 불교도들을 억압·학살하는 ‘종교 전쟁’의 성격이 강했던 베트남전의 비극에 대해서는 “전 세계 가톨릭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로마 교황청의 사과와 참회도 함께 요청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33호 / 2018년 3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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