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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배려의 마음

기자명 최원형

봄나들이에 꼭 챙겨야 할 건 생명에 대한 존중

우리 집 식탁 위는 봄이 한창이다. 얼마 전 산행하다 들른 한 사찰에서 가지치기하느라 바닥에 흩어져있던 산수유 가지 하나를 주워왔다. 꽃눈이 살짝 벌어지며 노란 색이 언뜻언뜻 보였기 때문이다. 물 컵에 꽂아 식탁 위에 두었더니 기대했던 대로 꽃눈이 활짝 열리면서 노오란 꽃들이 쏟아져 나왔다.

봄 되자 등산객들로 붐비는 산
음식 관련 쓰레기도 함께 늘어
산 속 생명엔 작은 양도 치명적
남은 음식물 반드시 되가져와야

산수유 꽃은 한 송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여러 꽃송이들이 모여 있는 것이다. 꽃이 우산살이 퍼지듯 달렸다고 해서 산형화서 또는 우산형꽃차례라고 부른다. 꽃눈을 감싸고 있던 껍질(총포)이 네 갈래로 갈라지면 그 안에서 꽃무더기가 나온다. 그런데 한 송이로 보이기 때문에 총포는 마치 꽃받침 같다. 각각의 꽃들이 저 나름으로도 아름답게 피어있지만 또한 모여서 아름다운 한 송이로 보이는 이 꽃을 보고 있자면 ‘세계일화’란 말이 떠오른다.

봄에 흔하게 피는 꽃이지만 들여다볼수록 볼거리도 배울 거리도 꽤 된다. 가지 맨 아래에만 꽃눈이 달려있고 그 위로는 모두 뾰족한 비늘잎눈이 붙어 있었다. 비늘잎은 아무런 미동도 없는데다 길게 뻗어 올라간 가지가 거추장스러워 꽃 있는 부분만 남기고 잘라버릴까 싶기도 했다. 차일피일 미루다 어느 늦은 저녁에 식탁 위에서 언뜻 연둣빛을 봤다. 잎눈 끝이 아주 살짝 연둣빛으로 물이 드는 것도 같았다. 며칠이 지나자 잎눈이 조금씩 벌어지며 잎을 내밀기 시작했다. 바깥에 있는 산수유나무는 아직 꽃을 피우기 바쁜데 실내에 있는 산수유가지는 이미 꽃을 다 피우고 잎눈 보따리까지 펼치는 중이다. 이른 봄에 여린 새잎은 그대로 꽃이다. 더구나 별 기대 없던 곳에서 마치 풍선 불 듯 쑥쑥 연둣빛을 내미는 잎이 얼마나 곱고 어여쁜지. 아무런 미동도 없다고 생각했으나 실은 그 안에서 나름 분주했을 걸 생각하니 슬그머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잘라버렸으면 어쩔 뻔했을까.

점점 많은 사람들은 산을 찾을 테고 꽃놀이 가는 상춘객들로 고속도로는 주차장이 될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동네 앞산에 올라도 날이 풀리자 오가는 사람들이 확실히 늘었다. 단순하게 사람만 는 게 아니라 먹을 것을 싸 짊어지고 오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도로가 있는 곳에는 올라올 수 있는 데까지 차를 타고 올라온 다음 차에서 사람과 함께 정말 많은 박스들이 나온다. 가끔 산에 오는 이유가 먹기 위해서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게 펼쳐놓고 앉아 먹으며 왁자하게 떠드는 게 당사자들에게는 즐거운 일일지 모른다.

그런데 산에는 우리가 생각지 못한 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다. 이른 아침 동네 산에 오르다보면 그렇게 많은 새들이 그곳에 살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다양한 새소리가 들린다. 몇 번 스틱을 들고 다니다가 그 소리조차 새들에게 방해가 되는 것 같아 요즘은 아예 빈손으로 오른다. 가만히 걷다보면 걷는 길 저 앞으로 바닥에 내려와 노닐고 있는 딱새며 노랑턱멧새를 만나기도 한다. 그러다 갑자기 새들이 푸르륵 날아오르고 나면 어김없이 라디오 소리를 크게 켜놓은 채 걷는 이가 나타나곤 한다. 낮에 잠을 자는 야행성 동물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가뜩이나 겁이 많은 새들에게 사람들이 내는 소음은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요즘은 새들이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는 계절이다.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몰리는 사람들로 인한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한번은 과일껍질을 아무데나 버리는 일행을 발견하고 그것을 되가져가야 한다고 했다가 봉변을 당한 적이 있다. 썩으면 거름될 건데 웬 참견이냐며 되레 큰소릴 쳐서 당혹스러웠다. 과거에는 과일 껍질이 썩어 거름이 되었다. 풀숲에 던져두면 파리며 다양한 곤충들이 와서 분해하고 흙이 되었으니까.

요즘은 유기농 과일이 아닌 다음에야 농약 성분이 없을 수 없다. 살충제, 살균제뿐만 아니라 껍질에 광택을 내는 왁스까지 다양한 물질들이 과일 표면에 묻어 있다. 수입과일이 흔해지면서 먼 거리를 오는 동안 과일이 상하지 않도록 뿌린 약품 또한 과일 껍질에 남게 된다. 사람에게는 당장 큰 해가 없는 양이라 해도 몸집이 작은 곤충이나 새들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내분비계교란물질로 작용해서 불임 등을 유발 할 수도 있다. 물론 사람 몸에도 오랜 기간 축적되면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산행이 길어져 불가피하게 끼니를 해결해야한다면 남김없이 먹을 수 있는 양만 싸가지고 가면 좋겠다. 먹고 뒷정리를 말끔하게 하고 남겨진 쓰레기들은 반드시 되가져와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봄 풍경이 그대로 아름답다. 아름다움을 오래 느끼려면 그 아름다운 풍경이 온전할 수 있도록 배려가 필요하다. 배려하는 마음은 공존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34호 / 2018년 4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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