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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법정 스님과 함석헌

기자명 이병두

박정희 독재 맞서 싸우며 우정 쌓다

▲ 1976년 가을, 법정 스님이 계신 송광사 불일암을 찾아 온 함석헌.

“섣달그믐 흩어졌던 이웃들이 모여 오손도손 나누는 정다운 제야 나는 검은색 코로나에 실려 낯선 사벽의 초대를 받는다. … 정월 초이틀 얼어붙은 추위 속에 또 누가 나를 부르는가 비상 고등 군법회의 검찰부 염라청의 사자처럼 소환장을 내미는 가죽잠바 둘 나는 또 검은 코로나의 신세를 진다.…저 포학무도한 전제군주 시절에도 상소하는 제도가 있었다. 억울한 백성들이 두들길 북이 있었다. 그런데 자유민주의 나라 대한민국 1974년 1월 백성들은 재갈을 물린 채 손발을 묶인 채 두들길 북도 상소할 권리도 없이 쉬쉬 눈치만 살피면서 벙어리가 되었네 귀머거리 되었네 장님이 되었네.”

긴급조치 어두웠던 유신정권에
함석헌과 ‘씨알의 소리’로 맞서
편집위원 함께하며 독재 비판해
불일암서 함께 잘 정도로 친해

박정희가 탄생시킨 괴물 ‘유신정권’과 긴급조치가 무겁게 짓누르던 세상을 그려낸 법정 스님의 시 ‘1974년 1월-어떤 몰지각자(沒知覺者)의 노래’ 중 일부이다.(‘씨알의 소리’ 1975년 1‧2월호) 스님은 1960년대부터 ‘사상계’와 ‘씨알의 소리’(이하 ‘씨알’)를 고리로 함석헌‧장준하 등 한국의 내로라하는 실천적인 지성인들과 깊은 우정을 나누었고 편집위원을 맡았던 ‘씨알’에는 각별한 애정이 있었다. 독재정권이 폐간했던 ‘씨알’이 1988년 말 다시 나오게 되었을 때 “언론은 그 사회의 공기(公器) 이고 또한 공기(空氣)와 같다. 언론이 공기이기 때문에 양식이 전제되어야 하고 책임이 따른다. 언론은 또한 그 사회의 공기와 같기 때문에 그것이 흐리면 숨이 답답하고 결핍되면 그 사회 전체가 질식에 직면하게 된다”며 큰 기대를 드러내었다.(‘씨알의 소리 복간에 부쳐 - 언론과 정치’, ‘씨알’ 1988년 12월호)

장준하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고 1년 뒤 ‘씨알’에 쓴 ‘장준하 선생에 보내는 편지’에서는 간절한 마음을 이렇게 드러낸다. “선생님이 어처구니없이, 정말 어처구니없이 우리 곁을 떠난 지 한 돌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살고 죽는 것이 다 그런 것이긴 하지만 장 선생님의 죽음처럼 그렇게 허망(虛妄)한 경우는 또 없을 것 같습니다. … 8월의 태양 아래 선생님의 육신이 대지에 묻히던 날, 저는 관 위에 흙을 끼얹으면서 속으로 빌었습니다. 건강한 몸 받아 어서 오시라고요. 금생에 못 다한 한 많은 일들을 두고 어찌 고이 잠들 수 있겠습니까. 가신 선생님이나 남은 우리들이 고이 잠들기에는, 우리 곁에 잠 못 이루는 이웃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함석헌이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스님은 봉은사 다래헌에 머물던 1970년대의 옛일을 회고하며 “‘민주수호국민협의회’와 ‘씨알의 소리’ 일로 거의 주일마다 자리를 같이하게 되었었다. … ‘그날의 모임에 누구누구가 참석했다’고 담당형사가 전화로 상부에 보고 중인 장면을 목격한 나는 홧김에 그 전화기를 빼앗아 그의 면전에서 돌에 박살을 내버렸었다. ”라면서 고인과의 각별한 인연을 잊지 못한다.

이 사진은 1976년 가을 함석헌이 ‘장자’를 함께 공부하는 젊은이들과 ‘천리 길을 멀다 하지 않고’ 불일암으로 스님을 찾아왔을 때 찍은 것이다. 이 때 한 방에서 잠을 자며 이야기를 이어갈 정도로 두 분은 서로 편하게 여겼다. 이처럼 좋은 인연과 돈독한 우정은 나이를 초월해서 태어나고 이어지는 것이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34호 / 2018년 4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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