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꿈의 여러 버전들 우파굽타에서 조신으로
7. 꿈의 여러 버전들 우파굽타에서 조신으로
  • 심재관 교수
  • 승인 2018.04.03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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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 사건은 회심과 깨달음·정진계기로 작용

▲ 여인의 모습에 미혹된 승려의 모습. 함피, 비탈라 사원.

조신의 꿈을 기억하시리라. 언제였던가, 꽤 오래전 배창호 감독이 ‘삼국유사’에 그려진 조신(調信)의 꿈을 각색해 영화 한 편을 만들었다. 제목은 ‘꿈’이었다. 이광수의 소설 ‘꿈’도 조신의 꿈을 빌려온 것이었다. 당시 나는 그 영화에 완전히 몰입되어 마지막 장면까지 투덜대지 않고 지켜본 기억이 난다.

‘삼국유사’가 전한 조신의 꿈
짝사랑에서 출발한 일장춘몽
깨어난 후엔 세속 욕망 초탈
인생 압축한 꿈, 삶 절감케 해

꿈 기능은 인도불교서도 활용
대표적인 호법왕 우파굽다도
환속하려는 제자 계도에 적용
일생이 한낱 꿈임을 각성케 해


조신의 꿈은 조신이라는 스님이 세달사의 장원을 맡으면서 벌어지는 일장춘몽을 그린 이야기다. 조신은 세달사 장원을 관리하면서 태수의 딸을 보고 짝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태수의 딸에게 정혼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조신은 슬픔에 빠져 관세음보살에게 절을 하며 소원을 들어주지 않음을 한탄한다. 그런데, 그렇게 잠이 든 조신에게 갑자기 그 여인이 찾아와 조신을 사모하고 있어 부부의 연을 맺자고 제안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그 날로 야반도주하여 함께 40여년을 살면서 아이들을 낳고 기른다. 그러나 가난한 삶을 피할 수 없어 아이는 굶어죽거나 걸식 중에 개에 물리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자신들은 늙어 병들어 가고 있었다. 결국 둘은 각자 아이들을 챙겨 헤어진다. 사랑이란 결국 그런 것이었구나, 노신을 이끌며 길을 떠나던 조신은 그렇게 중얼거렸을 것이다. 그러다 조신은 꿈에서 깨어난다. 모든 일생이 한낱 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는 이미 노승의 모습이 되어 있었고 세속의 욕망에 대해서 초탈하게 되었다. 꿈속에서 자신의 아이를 묻은 곳을 파보니 석불이 나왔고 이를 절에 모시고 정토사를 짓게 되었다.

배창호 감독의 영화 ‘꿈’에는 이 ‘삼국유사’의 이야기가 더 극적으로 가공되었다. 조신은 태수의 딸을 데리고 도망치지만, 정혼자의 추격과 자신이 짊어진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조신은 승려에서 화전민으로, 다시 아편쟁이로 추락한다. 그가 사랑의 이름으로 탈취한 여인은 가난 때문에 창녀로 변모한다. 그리고 문둥병에 걸린다. 둘은 아편쟁이와 문둥병 환자가 된 다음에야 서로를 떠나기로 결정한다. 아내는 마지막 남은 딸을 데리고 떠난다. 수십 년 후 걸인이 된 조신은 아내는 벌써 죽었고 딸은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는 전언을 듣는다. 그의 초라한 행색 앞에 복수를 위해 평생을 따라온 아내의 정혼자가 나타난다. 목숨을 구한 조신은 다시 불당으로 들어와 참회하며 쓰러진다. 그러다 문득 잠에서 깨어 일어나 보니, 그 모든 삶의 여정이 한낱 꿈이었다.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의 일연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잘 들여다보면, 조신의 꿈 이야기는 일연의 창작이라기보다 이미 강릉지역에 유행하던 관음설화의 한 단락을 각색했다는 인상이 든다. 만일 그렇다면 이 관음설화의 한 단편은 어디에서 흘러들어온 것일까.

사실 이 이야기의 구조는 그렇게 낯선 것이 아니다. 오히려 꽤나 익숙한 것이다. ‘일어나보니 모두 꿈이었더라’는 어느 지역 서사에서나 발견된다. 더구나 불교적 인물들의 전기문학 속에서 회심과 깨달음, 정진의 계기를 던져주는 사건들은 대체로 이러한 꿈을 통해 그려진다. 꿈을 통해서 삶을 매우 압축적으로 절감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다.

꿈의 이러한 기능은 인도불교의 전통 속에서도 매우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대표적으로 우파굽타(Upagupta)는 그의 전설적 삶 속에서 꿈을 여러 번 활용한다. 우파굽타는 인도의 대표적인 호법왕 아쇼카의 정신적 스승으로 전해진다. 일설에 따르면 우파굽타는 아난의 손제자였기 때문에 아쇼카가 극진히 우파굽타를 모셨으며 그의 권고에 따라 불적답사를 했던 것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우파굽타는 초능력도 있는 존재로 그려졌으며 그가 제자들을 계도하는데 꿈을 여러 차례 활용했던 고사들이 전해진다.

우파굽타에게는 마투라 출신의 젊은 제자가 한 명 있었다. 그는 이른 나이에 결혼했지만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출가에 뜻을 두어 비구가 되고자했다. 그의 부모들은 그가 외아들이었기 때문에 자손이 끊어질 것을 우려해 극구 반대했으며 그의 아내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출가를 허락해줄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며 단식에 들어갔다. 며칠이 지나 부모들은 자식이 죽거나 병들 것을 염려해 출가를 허락한다. 다만, 꼭 다시 돌아와서 자신들을 만나야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는 출가 후 계를 받은 후에 우파굽타에게 부모와 했던 약속을 들려준다. 우파굽타의 허락 하에 그는 부모를 만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부모·전처와 상봉한다. 그 때 부인은 출가한 아들을 붙잡고 그가 다시 환속해 집으로 돌아와 자신과 함께 살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노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닌가. 갓 출가한 그는 당황하여 다시 우파굽타에게 돌아가 상황을 설명한다. 그리고 자신이 환속해 돌아가야겠노라고 고백한다. 그에게는 아직 부인에 대한 애욕이 남아있었다. 우파굽타는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기 전 하룻밤 절에서 머무르게 했다.

그는 절에서 하루 더 머물면서 이상한 꿈을 꾸게 된다. 이 꿈은 우파굽타가 그의 잠 속에 ‘집어넣은’ 것이었다. 꿈속에서 그는 집에 돌아가지만 정작 부인은 이미 죽어있고 부모들이 화장터로 부인의 시신을 들고 가고 있었다. 화장터 불 속에 올려진 부인의 몸은 흉측하게 뼈를 드러내놓고 타고 있었으며 악취까지 진동하고 있었다. 끔찍한 모습에 놀란 출가승은 잠에서 깨어난다. 꿈이 현실과 같이 너무 생생했기에 두려움이 앞서기 시작했다. 그는 우파굽타에게 자신의 꿈을 들려준다. 그제야 우파굽타는 출가승이 고향집에 돌아가 볼 것을 권한다. 거기서 그는 꿈같은 현실을 마주한다. 부모가 죽은 부인의 시체를 화장터로 옮겨 태우고 있었다. 그 때 그는 두 번의 꿈을, 두 번의 현실을 체험하게 된다. 현실은 꿈의 다른 이름이었다. 깊은 깨달음을 얻고 곧장 절로 돌아가 수행에 정진해 아라한의 경지를 얻는다.

그는 한국의 조신과 다른 존재가 아닐 것이다. 조신이 있었다던 세달사지는 원주와 가까이 있는 영월에 그 터가 있는 것으로 얼마 전 밝혀졌다. 나는 갑자기 세달사지 근처 어딘가에 있을 미지의 장원에 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터에 서면, 나는 장원의 마당을 쓸고 있는 승려가 되어 태수의 딸을 만나 미혹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짧디 짧은 인생을 또 한 번 살고 죽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직 청춘일 때 이 영화는 왜 나를 쫓아왔었을까. 영화 속의 나는 한 때 사랑에 취해 인생을 탕진했으나 재빨리 백발의 노인으로 변했고, 곧 병들어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삶은 전날 밤 밝혀둔 등불에 불과한 것이었고, 곧 아침 햇볕에 사라질 모과에 맺힌 이슬과 같은 것이었다. 일생을 한낱 꿈으로 각성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모든 불교서사, 또는 인도서사물이 전제로 삼는 어마어마한 우주적 시간에 대한 공식적 문법 때문이다.

심재관 상지대 교양대학 교수 phaidrus@empas.com
 


[1434호 / 2018년 4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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