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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윤후명의 ‘꽃’

기자명 김형중

아름다운 꽃에서 기쁨과 슬픔 보고
인간의 나고죽는 모습을 그려낸 시

기쁨 속의 슬픔
슬픔 속의 기쁨
노래하지 않으면서 노래한다
미소 짓지 않으면서 미소 짓는다
그러나 꽃이란 무릇
삶과 죽음
꽃 피고 새 울어도
삶과 죽음

꽃 아름다움에 도취되지 않고
혜안으로 무상·무아 경지 터득
나무가 꽃잎 떨궈야 열매 맺듯
인생도 집착 떨쳐야 완성된 삶

봄이 오고 있다. 만물이 기운생동하고 있다. 새 생명이 탄생하는 잔치가 산에도 들에서도 펼쳐지며 온 천지가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봄바람에 꽃들은 기쁨의 미소를 지으며 한들한들 춤 춘다. 세상이 부처의 화엄정토를 이룬다. 우리 인생도 아름다운 꽃처럼 이대로만 계속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나 해도 정오가 되면 기울기 시작하고, 인생도 무상하여 젊음이 있으면 늙음이 밀어 닥치니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던가. 삶 속에 죽음이 있듯이 기쁨 속에는 항상 슬픔이 내포되어 있다. 아름다운 꽃잎 속에도 생멸이 있어 활짝 핀 꽃은 시들기 시작하고 있다.

시인은 아름다운 꽃 속에서 기쁨과 함께 슬픔을 보았다. 꽃이 피어나고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인간 생멸의 모습을 바라본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꽃이란 무릇/ 삶과 죽음/ 꽃 피고 새 울어도/ 삶과 죽음”이라고 읊고 있다.

인간이 사는 현상세계는 밤과 낮, 삶과 죽음 그리고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등 상대적인 세계가 공존한다. 그리고 만물이 시간적으로는 변화하기에 무상(無常)하여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없고, 공간적으로는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고유한 성질인 실체가 없는 무아(無我)의 세계인 허상(虛像)들이다. 이것이 부처님이 설하신 제법무아와 제행무상의 진리이다.

윤후명(1946~현재) 시인이 예쁜 꽃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움에만 도취하지 않고, 슬픔과 죽음을 본 것은 무상과 무아의 진리를 터득한 혜안(慧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무가 꽃잎을 떨어내야 열매를 맺듯이 우리의 인생도 달콤한 쾌락속의 집착에서 벗어나야 성숙해지고 완성된 삶으로 나아간다.

인생은 생과 사가 공존하고, 기쁨과 슬픔이 늘 함께 한다. 이 도리를 깨달으면 번뇌가 보리가 되고, 생사가 열반이다. 번뇌가 없으면 깨달음도 없고, 생사 고통이 없으면 행복의 열반도 없다. 병이 없으면 약이 없고,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없다.

윤후명은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빙하(氷河)의 새’가 당선되어 시단에 나왔다. ‘빙하의 새’에서 빙하의 얼음 속에서 불씨의 이삭을 물고 오는 빙하의 새를 노래하고 있다. 그것은 화택(火宅)의 불바다에서 청량(淸凉)의 생명수를 구하는 것이다. 고통 속에서 열반(涅槃)을 구하는 투철한 삶의 몸부림이다.

“빙하의 끝에서 나의 한 마리 작은 새는 불씨의 이삭을 물고 온다.…불과 얼음을 나란히/ 끊임없이 되풀이하듯이/ 늘 귀로에 만져보는 사랑과 번민의/ 여윈 촉루…지금 한꺼번에 물고 날아온다/ 모든 생명의 불씨를, 당신과 나의 새 원천을/ 부리 가득히 물고 날아온다“

얼음나라에 불이 없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생명의 불씨를 빙하의 새 부리에 가득히 물고 날아온다고 읊고 있다. 자연은 밤·낮이 있고 인간은 고통·기쁨, 생·멸이 되풀이 되면서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빙하의 얼음 속에 불씨가 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시를 쓰기 위하여 철학과를 선택한 투철한 시인이다. 30살이 되어 부처의 나라, 명상의 나라인 인도로 구도 순례를 떠났다. 그래서 그의 시에 나타난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보는 생명관은 인도의 명상과 불교의 무아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35호 / 2018년 4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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