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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석각의 ‘이조조심도(二祖調心圖)’

기자명 김영욱

마음 조절하며 화두를 들다

▲ 석각 作 ‘이조조심도(二祖調心圖)’ 2폭, 종이에 먹, 각 36.5×64.3㎝,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參禪不用多言語(참선불용다언어)
只在尋常黙自看(지재심상묵자간)
趙州無字如忘却(조주무자여망각)
雖口無言我不干(수구무언아불간)

인물서 보이는 정교함
의복에 표현된 조방함
일품화풍 특징 보여줘

‘참선에는 많은 말이 쓰이지 않고 다만 여느 때처럼 묵묵히 스스로 봄에 있다네. 조주의 ‘무’자를 잊는 것 같다면 비록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어 나는 상관하지 않겠네.’ 유정(惟政, 1544~1610)의 ‘묵 산인에게 주다(贈黙山人)’ 중 4구.

화가가 붓을 든다. 옅은 먹을 묵힌 붓끝이 지나간 자리에 선승의 모습이 드러났다. 지그시 감고 있는 눈, 짧은 실처럼 내려온 눈썹, 꽉 다문 입, 길게 늘어뜨린 귀를 조심스레 그린다. 다시 먹을 묻힌 붓끝을 툭툭 무심한 듯 찍으니 얼굴의 윤곽 따라 덥수룩한 구레나룻가 생겨났다. 그대로 이어진 화가의 손놀림에 어느새 선승의 얼굴은 오른손에 뺨을 대고 있다. 다시 붓을 들고 눕혀 두꺼운 선을 놀리니 왼쪽 어깨가 드러난다.

진한 먹이 담긴 벼루에 붓을 댄다. 생각을 갈무리한 화가의 손이 쾌속의 필치를 선보인다. 빠른 속도에 갈라진 붓털에 의해 구현된 조방한 필선은 마치 의도한 듯 선승에게 거친 옷을 입힌다. 인물에게 보이는 정교한 필치의 묵선과 의복에 표현된 조방하고 간략한 필치의 묘사는 송대 이래로 새롭게 부흥된 선종과 잘 부합된 일품화풍(逸品畵風)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 선승이 그려진지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다른 종이에 호랑이에 기댄 또 한 명의 선승이 그려졌다. 마치 서양의 액션페인팅처럼 힘차고 격렬한 즉흥적인 필치의 리듬이 선승에게서 느껴진다. 이와 반대로 그의 품에 안긴 호랑이는 선승이 명상하는 시간의 흐름에 부응하듯 고요한 잠을 청하고 있다.

인물들의 모티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이는 선종의 2조 혜가, 어떤 이는 한산․습득과 함께 지낸 국청사의 선사 풍간(豊干), 어떤 이는 산성(散聖) 또는 열조(列祖)에 속하는 여러 인물이라고 말한다.
두 선승 모두 눈을 감고 있다. 단순히 잠을 청한 것인가, 아니면 명상과 참선을 통한 불가의 수행을 하는 것인가. 그 해답은 두 번째로 그려진 선승 옆에 적힌 ‘이조조심(二祖調心)’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려진 인물들의 정체는 불명확하지만, 선화의 주제가 ‘조심’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조심, 마음을 조절하다. 마음 조절은 참선의 가장 중요한 기본 과정이다. 마음을 한곳에 두고 집중하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다. 간혹 집중하는 대상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오히려 너무 집착한 나머지 대상 속에서 헤매기도 한다. 그러기에 옛 선객들은 하나의 화두에 집중하고 마음을 다스린다. 그 화두는 오직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라는 조주무자(趙州無字)에 국한되지 않는다. 훌륭한 선객은 화두에 끌려다닐 뿐 절대 끌어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던가. 선객이 유식할수록, 지식으로 화두를 분석할수록 화두를 통한 깨달음에서는 멀어진다. 분별에 집착하는 세간의 지식은 무용할 뿐이다. 자신의 마음을 한데 모으고 그 마음을 바라보고 대면해야만 자신만의 화두에 끌릴 수 있다.

아마도 화면 속 두 선승 또한 자신을 마음을 묵묵히 바라보고 조절하며 간화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35호 / 2018년 4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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