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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습니다

기자명 일선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8.04.17 10:04
  • 수정 2018.04.18 17:42
  • 댓글 2

이웃 종교인과 절에서 차담
봄도 나누다보면 더욱 풍성
서로 잘 어우러지는 게 화엄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는 “인간세상 사월에는 꽃들이 지는데 산사의 봄은 복사꽃으로 피어난다. 자취 없이 떠난 봄 찾을 길 없더니 이곳에 와 있을 줄 그 누가 알았으랴”하고 노래했습니다.

한바탕 비바람을 동반한 꽃샘추위에 마을에는 꽃들이 벌써 지고 산중에는 산벚꽃과 개복숭아꽃들이 다투어 피고 있습니다. 어제는 이웃 종교인들이 산사의 봄을 찾아왔습니다. 반갑게 맞이하여 선방 툇마루에 앉아 다담을 나누는데 세 봉우리의 연꽃 같은 앞산이 마치 형형색색의 꽃과 여린 싹들로 어우러져 동자승들처럼 천진하게 수런거리고 있습니다.

마을에 일찍이 피었던 꽃들이 갑자기 불어 닥친 꽃샘추위에 무참히 떨어져서 짧은 만남이 너무 아쉬웠는데 골 깊은 옛 절의 봄은 아직 여유가 있어서 좋습니다. 이웃 종교인들은 앞산을 바라보며 이곳에서 살면 수행이 저절로 될 것 같다고 덕담을 건넵니다. 그래서 저 산에 피는 꽃들은 서로 다르지만 하나의 산을 의지해 있듯 사는 곳은 달라도 누구나 한결같이 부처님과 더불어서 차별 없는 자성의 광명을 의지해 있으니 모두가 본래 부처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중생들은 나와 너, 남과 여, 남과 북이라는 차별심 때문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수환 추기경은 호를 바보로 짓고 스스로 바보행을 하라고 했는지 모른다고 하면서 앞산 세 봉우리 앞에서 한바탕 크게 웃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어느덧 봄기운이 뼛속까지 스며들고 꽃향기는 허공 가득히 번져갑니다. 이처럼 봄도 서로 나누다 보면 더욱 풍성하다는 것을 알고 차의 향기는 한결같이 처음과 같다는 것을 체득합니다.

지난 겨울이 유별나게 추웠던 탓인지 매화 향기는 더욱 깊고 온갖 새들의 노랫 소리는 더욱 맑고 새롭습니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사월은 슬픔과 한이 깊은 잔인한 사월이었습니다. 제주 4.3사건과 4.19혁명을 비롯해 세월호 참사는 사월이 잔인한 계절이라는 시구처럼 처연한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모진 아픔과 슬픔을 지혜롭게도 인내와 화합으로 추스르고 견디어서 마침내 한라에서 백두까지 한결같은 봄을 맞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 같아 참으로 경이롭기만 합니다.

범부들은 무시이래로 익힌 업력 때문에 서로 편을 가르고 죽이고 살리면서 사는 것이 인생사입니다. 하지만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듯이 무상한 인생사에서 크게 발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끝내 버릴 수 없어 서로 용서하고 화합하면 마침내 찬란하고 온전한 봄을 이루게 됩니다. 온갖 새들이 노래하고 꽃과 나무들이 형형색색으로 어우러져서 물결치는 온전한 봄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차별심을 빈틈없이 살펴서 자성 광명으로 돌이키는 육바라밀행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한 결과가 마침내 동계올림픽에서 남과 북이 서로 만나 화합을 이루었고 마침내 비핵화라는 한반도의 완연한 봄이 북녘의 산하에 오는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땅은 남북이 없지만 사람의 생각에는 남북이 있으니 이 땅에서 넘어지면 다시 이 땅을 짚고 일어나 묻은 흙을 털고 웃으면 다시 하나의 온전한 봄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 일선 스님
벌써 거리에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기 위해 ‘지혜와 자비로 세상을 향기롭게’라는 현수막이 걸리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차별은 지혜와 자비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꽃과 나무들이 저마다 다르지만 찬란한 빛으로 하나 되듯이 화엄의 아름다운 장엄이 됩니다.

지혜와 자비가 넘치는 부처님의 세상 우리가 꿈꾸는 온전한 봄입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숨이 멈출 것 같은 경이로운 모습입니다.

일선 스님 장흥 보림사 주지 sunmongdoll@naver.com

 

 

[1436호 / 2018년 4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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