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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정치인 ‘사진병풍’인가

6월13일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의 발길이 속속 불교계를 향하고 있다. 아직 각 정당별 후보자가 확정되지 않아 본격적인 선거전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선거판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정당별 그리고 후보 간의 힘겨루기는 이미 극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전략공천을 통해 이미 후보자로 확정된 정치인이나 정당의 후보가 되기 위한 예비후보자들의 행보가 조계종 총무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5일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총무원장 설정 스님을 예방한 데 이어 11일는 안철수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 13일에는 이인제 자유한국당 충남도지사 예비후보와 김문수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가 총무원 문턱을 넘나들었다. 당분간 후보들의 발걸음이 계속 이어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총무원을 찾은 후보자들의 모습은 천편일률적이다. “인사드리러 왔다” “가르침을 주셨으면 한다” “잘 이끌어 주시기 바란다”는 이들의 발언은 언뜻 겸양의 뜻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불교계에 얼굴을 내미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어느 누구도 불교계 현안에 대한 관심이나 정책을 제시했다는 소식은 찾아볼 수 없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똑같으니 더 이상할 노릇이다.

정치인들이 선거철마다 불교계를 찾아 ‘인사’하는 모습이야 별스러울 것도 없다. 어찌 보면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가상할 따름이다. 그러나 불교계 현안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 그리고 국정 운영에 참여하겠다는 ‘후보’로서 불교계에 대한 정책이나 소신조차 준비하지 않고 선거철에만 기웃거리는 모양새는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 자신들의 얼굴을 알리고 ‘사진 한 장’이라도 더 찍혀 얼굴을 내밀기 위한 ‘사진용 병풍’으로 불교계를 이용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아니면 불교계 방문을 그냥 얼굴만 내밀면 되는 ‘의무방어’ 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문제는 이러한 ‘홍보용 예방’이 때로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는 데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후보시절 조계종을 방문해 “불교계를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당선 이후에는 자기 마음대로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쳐버렸다. 또 대통령후보시절에는 당시 총무원장이었던 지관 스님을 예방해 “불교계 현안을 해결하겠다”고 발언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지관 스님의 차량을 검문검색 하는 수모만 줬다. 더욱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는 당시 교회의 권사임에도 불구하고 사찰을 방문, ‘연화심’이라는 법명까지 받았지만 ‘남편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가 성공한 뒤에는 ‘무릎기도’하는 모습으로 국민들을 경악케 했다. 물론, 불교계의 문을 두드리는 모든 정치인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런 일이 너무 자주 반복되다 보니 정치인들이 절집의 문턱을 너무 가벼이 보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불교의 가장 근본이 되는 계율은 오계(五戒)다. 그 가운데 하나가 ‘거짓말하지 말라’다. 거짓말은 살생하고, 도둑질하고, 음행하고, 술 마시는 것 못지않게 불교계에서 엄중히 경계하는 것이다. 그런 불교계에 와서 지키지도 못할 허언을 하는 것은 불교계를 농락하는 행태나 다를 바 없다. 설혹 빈말을 하지는 않을지라도 진심을 담지 않은 마음으로 의례적인 얼굴 내밀기를 하는 것 또한 거짓이라는 점은 다를 바가 없다.

불교계에 찾아와 자신의 뜻을 전하고자 한다면 그 속에는 정치인으로서 국민들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불교계와 협력하고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중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또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진실성도 있어야 할 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거짓말을 남발하는 정치인의 말로가 어떤지 이미 우리는 충분히 보고 있지 않은가.
 
황정일 동국대 연구교수 9651975@hanmail.net
 

[1436호 / 2018년 4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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