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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지혜로운 삶이란?

기자명 최원형

위험담보로 취한 ‘편리’가 환경파괴 쓰레기 주범

요사이 우리 집 베란다에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빨래 대신 각종 비닐봉투들이 건조대에 걸려있다. 얼마 전 비닐쓰레기 대란 이후 우리 아파트는 비닐봉지에 묻은 이물질을 깨끗이 씻고 말려서 배출하기로 결정했다. 비닐봉지에 붙어 있는 종이 스티커 등도 말끔히 떼어낸 뒤 분리배출 해야 한다. 종량제봉투에 담아 버리면 버리는 입장에서야 간단하지만 종량제봉투가 물건이 가야 할 끝은 아니다.

송유관 파열·유조선 침몰 등
원유 유출사고 잇달아 발생
해양생물 살 수 없는 지옥돼
무수한 관계의 연결 인식해야

종량제봉투에 담긴 쓰레기를 매립할 경우 몇 백 년이 지나도 결코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고 소각하게 되면 미세먼지 등 여러 유해오염물질을 증가시키지 않겠냐는 주민들 의견이 반영된 결과다. 주민들은 좀 번거롭고 귀찮더라도 보다 나은 환경을 위해 조금씩 불편을 감수하자고 했단다.

나는 이날 반상회에 참석을 못했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오간 걸 듣고는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 이런 변화는 우리 생존을 위한 당연한 선택이다. 한때 이물질이 묻은 비닐봉지를 열심히 씻어 내놓은 적이 있었지만 온갖 오염물질로 범벅인 채 배출하는 이웃들에 좌절하곤 했다. 어차피 한데 뒤섞이니 몇 개가 깨끗하다고 해서 재활용될 리 없다는 회의적인 생각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비닐봉지에 붙은 종이 스티커를 떼고 씻어 말리는 일이 신바람난다. 너도 하고 나도 하게 됐으니 뭔가 가시적인 성과도 나올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이다. 종이 스티커가 도저히 떼어지지 않을 경우 그 부분만 가위로 잘라 종량제봉투에 담고 비닐봉지는 분리 배출한다. 나는 이물질 묻은 비닐봉지를 모아뒀다가 그날 설거지할 그릇들과 함께 씻는다. 그릇 몇 개를 더 씻는다는 정도의 번거로움만 감수하면 되는 일이다.

비닐봉지를 말려서 배출하기로 결정이 되고 난 이후 베란다에 비닐봉지를 널어놓는 일이 하나 더 늘긴 했다. 그러나 한꺼번에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어서 할 만하다. 베란다에 비닐봉지를 말리는 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비닐봉지를 사용하는지 눈으로 확인이 되니 물건을 살 때 비닐포장에 담긴 물건은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꼭 필요한 물건은 사되 그 비닐봉지를 몇 번이고 재활용해서 쓰는 방법도 병행하고 있다.

지난 달 31일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 인근 바다가 검은 기름으로 뒤덮였다. 동 칼리만탄 주 발릭파판 해저에 있던 송유관이 터지면서 새어나온 원유로 서울면적의 4분의 1이 넘는 130㎢의 바다가 오염됐기 때문이다. 사망자가 최소 5명 발생했으며 유독가스에 노출된 사람도 1300명이 넘었다. 발릭파판 시 전체에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수백 군데의 항구가 오염되었고 항구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호흡곤란과 구토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발릭파판 앞바다에 폐사된 채 떠밀려온 돌고래 사체가 발견되었다. 어디 돌고래뿐일까? 기름띠로 뒤덮인 바다는 해양생물들에게 말 그대로 재앙이다. 앞서 올 1월에는 동중국해에서 이란 유조선인 산치호가 침몰하면서 흘러나온 기름으로 바다가 오염되었다. 당시 보도로는 유출된 기름이 해류와 바람의 영향으로 범위가 확산될 수도 있다고 해서 한때 긴장했었다.

사고 일대 해역은 기름얼룩과 유막 등이 해수면을 뒤덮으며 수질이 4급 정도로 악화되었다. 모래가 검은 기름으로 얼룩진 해안가에 마스크를 낀 사람들을 보니 태안 원유유출사고가 떠올랐다. 2007년 12월7일은 우리나라에 가장 큰 원유유출 사고로 기억된 날이다. 유조선인 허베이스피릿호와 삼성중공업 해상 크레인이 충돌하면서 유조선 안에 있던 엄청난 기름이 흘러나왔다. 흘러나온 기름은 태안 일대 양식장과 어장을 완전히 오염시켰다. 일대 바닷속 생물 개체수가 절반 이상 폐사하는 대재앙이었다.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태안 앞바다는 살아나는 중에 있지만 이런 사고를 통해 값진 교훈을 얻어야 한다. 바다 위를 떠다니며 기름을 수송하는 유조선을 포함한 어떤 배든 늘 해양유출이라는 잠재적 위험 가능성을 싣고 다니는 셈이다.

그런데 이렇듯 위험천만함을 감수하며 기름을 실어 와 그걸로 만드는 것 가운데에는 요새 골칫덩이가 돼 버린 비닐봉지가 있고 해양 쓰레기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플라스틱이 있다. 위험을 내재한 채 운송해온 기름으로 자동차를 움직이며 미세먼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위험을 담보로 잠깐의 편리를 취하며 또 다른 유해물질을 만들어내는 꼴이다.

합리적이지도 지혜롭지도 않은 이런 삶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왜일까? 나와 연결된 무수한 관계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때문은 아닐까?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이치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때문은 아닐까? 내 존재가 무수한 존재들 덕분이라는 걸 자꾸 잊는 때문은 또한 아닐까?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36호 / 2018년 4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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