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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지혜의 나무에 관한 다난자야의 꿈

다난자야 꿈속 기이한 나무는 현자 비두라

▲ 바르후트 탑의 기둥에 새겨진 비두라 자타카의 일부. 비두라가 푼나카의 말꼬리를 붙잡고 하늘을 날아가고 있다.

인도의 고전 서사시 마하바라타는 불교 문학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마하바라타의 인물설정과 지리적 배경도 자타카와 같은 문학에 그대로 반영되는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면 비두라(Vidhura) 자타카와 같은 경우가 그렇다. 비두라는 마하바라타에서 판다바 형제와 카우라바 형제들의 삼촌으로 등장하며 왕실의 지혜로운 현자로 그려진다. 기타 주변부의 인물설정도 마하바라타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주사위 게임에서 진 다난자야
천신·인간의 왕들이 신뢰하는
비두라를 푼나카에 빼앗긴 후
잘려 사라졌다 돌아온 나무 꿈

잘린 나무는 전생 부처님 상징
자신에게 지혜가 돌아오는 꿈
지혜의 생명수는 우주 중심축
꿈속 나무가 곧 생명이자 지혜
지혜의 현현인 비두라를 의미

이 인물설정이 자타카로 그대로 들어온다. 비두라 자타카에서 비두라는 다난자야(Dhananjaya, 이것은 마하바라타의 주인공 아르주나의 별명이다) 왕이 통치하는 왕국의 수도 인다파타(Indapatta, 인드라프라스타)의 재상으로 등장한다. 이 왕국의 매우 지혜로운 현자로 등장하는 비두라가 바로 부처님의 전생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자타카에서는 인다파타에서 벌어지는 주사위 게임도 중요한 배경이 되는데 이 또한 마하바라타에서 빌려온 것이다.

이야기의 전개는 대략 다음과 같다. 천신들과 인간들의 왕들이 모여 어느 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덕성(德性)을 서로 자랑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 가운데 누구의 덕이 더 뛰어난지를 확인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현명한 자로 꼽히는 비두라를 찾아간다. 비두라는 그들의 비유를 마치 바퀴에 비유한다. 바퀴는 여러 개의 유용한 바큇살이 서로 의지해 굴러가는 것처럼 어느 것 하나가 빠진다면 바퀴는 제 기능을 못하는 것과 같다고 이들의 덕성을 비유적으로 설명한다. 천신들은 비두라의 설법에 감복하여 그에게 자신들이 가져온 엄청난 보화를 선물하고 자리를 떠난다.

그런데, 나가(Nāga)의 왕 바루나가 자신의 궁으로 돌아가자 그의 부인 비말라(Vimalā)는 남편이 비두라에게 나가의 보석을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비말라는 비두라의 지혜에 대해 듣게 되고 질투를 느낀다. 비말라는 그의 지혜에 대한 갈증이 깊어지고 마침내 비두라를 보지 않으면 죽게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여기서 비두라의 지혜가 마치 우주의 고귀한 어떤 보석이나 생명처럼 취급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심지어 남편이 흔쾌히 비두라를 데려오지 않을 것으로 짐작해 비말라는 그의 심장을 먹어야 자신의 병이 나아질 것이라 말한다. 바루나와 비말라는 자신의 딸을 내세워 비두라를 데리고 오는 자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딸과 결혼시키겠노라고 선포하기에 이른다. 야차 푼나카(Puṇṇaka)가 여기에 응답해 비두라를 죽여서 심장이라도 가져오기로 마음먹는다.

푼나카는 다난자야 왕에게 접근해 그의 수하에 있는 지혜로운 자 비두라를 얻기 위해 주사위 게임을 제안한다. 다난자야 왕은 죽은 어머니의 도움으로 주사위 게임에서 패하는 법이 없었으나, 푼나카가 미리 이를 알고 다난자야 왕의 비법을 미리 차단한다. 게임에서 패배한 다난자야 왕은 재상 다난자야를 푼나카에게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푼나카는 하늘을 나는 신비로운 말을 가지고 있었다. 푼나카는 비두라에게 말 꼬리를 붙잡게 하고 하늘을 날아올랐다. 나가 왕에게 돌아가는 도중에 푼나카는 검은 산의 정상에서 비두라를 죽여 그의 심장을 얻을 생각이었다. 자신을 죽이려는 푼나카에게 비두라는 설법을 통해 그를 회심시킨다. 자신을 죽이는 대신 오히려 나가의 왕에게 데려다 줄 것을 푼나카에게 부탁한다. ‘자신의 심장은 곧 그들에게 지혜’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나가의 왕과 여왕을 만난 비두라는 역시 그들에게 설법을 하고 교화시킨다. 여왕 또한 비두라의 심장이 곧 그의 지혜였음을 공언한다. 그리고 마침내 비두라는 자신의 왕국이 있는 인다파타로 돌아온다.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천신과 야차, 나가 그리고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지혜로운 자’에 대한 쟁탈전이다. 그리고 이 지혜가 곧 중생들의 삶에 있어서 심장이며 고갱이라는 것을 선언한다. 이 자타카가 전하는 이러한 핵심적 전언은 비두라가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날 밤 그려지는 다난자야의 꿈을 통해 상징적으로 묘사된다.

필자가 비두라의 자타카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 자타카가 아시아의 불교문화 속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소 긴 이 자타카 속에는 잠시 꿈의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는데, 이것이 불교에서 채택한 ‘꿈의 상징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꿈 이야기는 전체의 분량 속에서 매우 짧고 얼핏 지나가는 내용처럼 보이지만 꽤나 의미 있다고 생각된다.

꿈속에서 현자 비두라는 한 그루의 나무로 그려지는데, 이는 곧 지혜의 나무다. 다시 말해, 전생의 부처님(비두라)을 지혜의 나무로 상징화한 것이다. 이 꿈은 인다파타의 왕 다난자야가 현재 비두라를 빼앗기고 그를 그리던 어느 날의 일이며, 비두라가 다시 왕국으로 되돌아오기 전날의 꿈이었다. 자신에게 ‘지혜’가 돌아오는 꿈을 꾼 것이다.

다난자야는 그 날 밤 꿈속에서 기이한 나무를 목격한다. 왕궁의 문 앞에는 거대한 나무가 한그루 서 있었는데 둘레가 어마어마했을 뿐 아니라 무수한 가지가 높이 뻗어 올라간 나무였다. 왕은 그 나무 앞에 서있었는데, 그 나무의 넓은 둘레는 ‘지혜’와 같았고, 나뭇가지들은 암소에서 얻어진 신성한 ‘음식’과 같이 생각되었다. 이 나무는 말과 코끼리들이 둘러싸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온 마음을 다해 그 나무를 경배하고 있었다. 그 때 붉은 옷과 붉은 귀걸이를 걸친 흑인이 나무로 다가와 밑동을 자르기 시작했다.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자비를 구했으나 그는 요지부동이었고 마침내 그 나무의 밑동이 잘려나가고 말았다. 그는 잘려진 나무를 끌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그 흑인은 잘려진 나무를 끌고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와 그 나무를 심어놓고는 또다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잠에서 일어난 다난자야는 그 나무가 비두라이며 곧 자신에게 되돌아 올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이 나무의 묘사는 인도문화과 조각 속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칼파브릭샤(Kalpavṛkṣa) 즉, 생명수를 보여준다. 생명수는 성스러운 ‘음식’이 가득한 나무, 또는 초월적인 ‘지혜’로서의 나무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숱한 인도고전 속에서 천신과 나가들, 그리고 인간들은 이것을 차지하기 위해서 전투하고 주사위 놀이를 한다. 이 지혜의 생명수는 우주의 중심축으로서, 삶과 죽음을 하나로 연결하는 불멸의 중심축이기 때문이다. 다난자야의 꿈속에 그려진 나무가 곧 이 생명의 나무다. 이 나무는 곧 지혜의 현현인 비두라를 의미하며, 다시 그의 입을 통해서 설명하듯, ‘그의 생명(심장)은 그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심재관 상지대 교양대학 교수 phaidrus@empas.com
 

[1436호 / 2018년 4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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