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12m·폭6m…18년 발원 회향
세월호·촛불집회 등 현대사 담아
평화통일과 자비로 충만한 세상에 대한 염원을 담은 초대형 괘불이 남양주 천마산에 나투었다. 길이 12m, 폭 6m. 여백까지 포함하면 13m에 달하는 ‘월인천강 양산회상 변상도’다. 천마산 보광사 주지 가산 스님의 원력이 괘불 안에 고스란히 담겨졌다. 스님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뜻과 가르침을 한 장의 그림으로 압축했다”며 “영산회상도를 통해 보는 이 누구나 환희심이 일어나고 부처님 가르침을 쉽게 이해해 실천하는 삶을 살겠다는 서원을 세우길 바란다”고 말했다.
스님은 우연한 기회에 고려불화를 접하고 그 매력에 매료됐다. 이어 2000년 네팔 성지순례서 탱화를 그리는 스님을 만난 후 불화 제작의 원을 세우게 됐다. 그리고 18년 만에 부처님이 영산에서 ‘법화경’을 설하는 모습을 표현한 ‘영산회상도’를 대중 앞에 선보이게 된 것이다.
보광사 ‘양산회상도’는 고려불화기법으로 그려졌지만 내용은 현대적이고 파격적이기까지 하다. 그림 속 사천왕은 부처님과 십대제자, 경전 등을 외호할 뿐 아니라 인류를 위협하는 대량 살상무기를 제압하고 있다. 사천왕 손아귀에 스텔스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발바닥 아래에는 155mm 자주포가 힘을 잃고 놓여있다. 괘불 하단부에는 2001년 발생한 미국 9·11테러, 5·18민주화운동, 촛불집회, 4·16 세월호 참사, 인공지능(AI), 핵실험 등을 형상화한 그림이 나열됐다.
가산 스님은 “섬세하고 화려한 고려불화 기법과 함께 위기에 처한 21세기 인류의 모습을 덧붙여 현대인이 지향해야할 궁극적 가치를 담았다”며 “자연과 사람, 평등과 평화 등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뜻을 보는 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크기가 초대형인 만큼 제작에 소요된 한지양도 어머어마하다. 스님은 “모시에 20년 이상 숙성된 한지를 7겹 배접했다”고 귀뜸했다. 한 번 배접 시 한지 120장이 들어갔으니 괘불에 들어간 한지만 840장, 둘레까지 합하면 1000여장에 달한다. 풀을 쑤기 위해 사용한 찹쌀 양도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스님은 “영산회상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어마어마한 크기나, 소요된 막대한 물량이 아니다. 불자들의 공력으로 이뤄졌다는데서 더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괘불에는 양승태 불화전문가의 지도로 남양주 봉선사 불화반에서 수학한 신도 10명의 공력이 집결됐다. 10명은 1년7개월 간 일주일에 5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모여 작업에만 몰두했다.
스님은 “그림이 거의 완성 됐을 때, 그림을 펴기 위해 50여명의 신도들이 20일 동안 하루에 몇 시간씩 유리로 만든 108염주로 그림을 문질렀다. 우리 절 모든 신도가 불모인 셈”이라고 신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스님은 또 “나날이 삶은 거칠어지고, 미래의 희망은 사라져가는 시기지만 지금 여기에 자비로 충만한 부처님이 계시다”며 “월인천강 영상회상도를 통해 내면의 평화를 이룬다면 조금 더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양주=임은호 기자 eunholic@beopbo.com
[1438호 / 2018년 5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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