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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간디의 아힘사

기자명 김정빈

모든 생명체는 ‘나’를 지키기 위해 투쟁한다

▲ 그림=근호

본이름이 모한다스 카람찬드(M. Karamchand)인 간디(Gandhi)는 1869년 10월2일에 인도 포르반다르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인도 카티아와르반도에 자리 잡은, 인구 7만2000명이 사는 토후국(土侯國)의 수도였다.

신심 깊은 집안서 자란 간디
계율 철저한 어머니에 감동
비폭력인 아힘사 의무 삼아

한때 몸집 큰 친구 부러워
1년간 고기 먹고 빚지게 돼
아버지에 편지로 사실 고백
부자간 사랑은 한없이 커져

간디도 많은 결함 있었지만
경쟁서 비폭력 가치로 승리
아힘사는 넓은 의미의 불교
간디는 현대판 아소카대왕

모한다스의 아버지도 종교심이 깊었지만 어머니의 경우는 종교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에게는 경건하지 않은 날이라곤 없었다. 마치 삶은 내생으로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듯 그녀는 금욕적 계율을 철저히 지켰다.

넉 달의 우기 동안 그녀는 하루에 한 끼만 먹었으며, 하루걸러 단식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해엔가는 아예 곡기를 끊기까지 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어린 모한다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간디는 훗날 “어머니가 나에게 남긴 강력한 인상은 그분의 성자 같은 모습이었다”고 회상했다.

열세 살이던 때, 간디는 라마 신의 열렬한 신자 한 사람이 ‘라마야나’의 시구를 읽는 것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 서사시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겸손하고 다정한 성품과 모든 생물에 대한 사랑은 어린 모한다스의 마음속 깊이 각인되었다. 중세의 시인인 나라사야가 비슈누와 그 신자들을 기리며 만든 노래도 그를 감동시켰다. 간디가 평생에 걸쳐 애송한 그 가사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괴로움을 자기 것처럼 알고 느끼는 진정한 비슈나바(비슈누신을 섬기는 사람)이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 아무도 경멸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 말, 행동을 순수하게 유지한다. 그런 사람의 어머니는 복 있을지어다.”

어렸을 때 받은 강력한 도덕적 영향은 그로 하여금 “악을 선으로 갚아라”라는 원리에 대한 믿음을 일으켰다. 그는 이것이 만물의 기초이며, 진리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그 진리를 실험하는 것(satyagraha)을 평생의 의무로 삼게 되었는데, 이 실험의 핵심은 아힘사(ahimsa, 비폭력)이다.

인도인들을 이끌던 시절의 간디는 두려움을 모르는 용감한 사람이었지만 어릴 때의 그는 겁쟁이였다. 그는 어둠을 두려워했다. 침대맡에 등을 켜두지 못하면 잠을 자지 못했고, 혼자서 잠을 자는 것은 그에게는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행위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몸집이 크고 힘이 센 아이들을 부러워했다. 그에게는 셰이크 메타브라는 이슬람교를 믿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대담하고 운동도 잘했다. 메타브를 보며 모한다스는 고기를 먹는 사람이 더 용감하고 힘이 세다고 믿게 되었다. 나아가, 그의 생각은 영국인들이 인도인들을 지배하는 것은 고기를 먹기 때문이라는 데까지 나아갔다.

마침내 모한다스는, 손으로 산 뱀을 쥘 수 있고, 도둑을 만나도 맞서 싸우며, 귀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메타브의 꼬임에 넘어가 고기를 먹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은 힌두교도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비밀리에 행해져야만 했다.

1년 후, 그는 고기를 먹는 일로 하여 25루피의 빚을 지게 되었고, 그 결과 약간의 황금을 훔치기에 이르렀다. 죄책감에 사로잡힌 모한다스는 이 일을 아버지에게 고백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매를 맞을까 봐서가 아니라 아버지를 실망시켜드리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모한다스는 자신이 저지른 행위를 글로 써서 부들부들 떨며 아버지에게 건네주며 제발 자신에게 벌을 내려달라고 말했다. 그때 그의 아버지 카람찬드는 어떤 일로 몸을 다쳐 병상에 누워 있었다. 카람찬드는 병상에서 일어나 아들이 건네주는 편지를 읽었다.

잠시 후,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아들은 보았다. 모한다스의 아버지는 두 눈을 감은 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눈을 뜬 그는 편지를 찢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아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 일을 훗날 간디는 이렇게 회상했다.

“내가 화가라면 그 광경을 그때와 똑같이 그려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그 장면은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것은 나에게 아힘사의 실례였다. 그 당시 나의 눈에는 아버지의 사랑 말고는 다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이후 아버지의 나에 대한 사랑은 한량없이 커졌다.”

생명체는 살고 번식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본능 중 후자는 전자에 종속된다. 따라서 사실상 생명체에게는 생존만이 유일한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생존에는 물리적 생존도 있고 심리적 생존도 있다. 인간 아닌 생명체에게는 전자가 중요하지만 인간에게는 후자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으로 돌아가 고찰해보면 인간에게도 물리적 생존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하여 모든 생명체는 ‘나’를 지키기 위해 경쟁 내지 투쟁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타자와 협력을 하기도 하지만 진화과학자들은 그 협력조차도 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선은 선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에게 이익되기 때문에 선을 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나의 생존은 엄정하며, 그 엄정한 문제를 가장 큰 범주에서 결정하는 것은 정치다. 정치의 장(場)에서 생명체들은 상호 간 이익을 조정하며, 이익의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경쟁은 투쟁으로 번져나간다. 이를 고려할 때 간디는 놀라운 인물이다. 그 첨예한 이익 조정의 장, 경쟁과 투쟁의 장, 죽고 죽임이 난무하는 장에(군사적 충돌 또한 정치의 일부분이다) 비폭력을 끌어들였으니 말이다.

아힘사는 간디 이전에 부처님께서도 가르치신 덕목이다. 하지만 부처님의 아힘사는 승단과 신자들 속에서만 실현되었을 뿐 세속 정치에서 실현된 사례는 거의 없다. 그래서 그것을 가장 훌륭하게 실현한 아소카 대왕의 치적이 빛나거니와 간디는 현대판 아소카 대왕이라 할 만한 위대한 인물이었다.

간디에게도 많은 약점과 결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투쟁 세계 한복판에 가장 숭고한 가치를 이끌어왔다는 점, 그 가치를 승리로 마무리 지었다는 점은 백 번, 천 번 찬양해도 부족함이 없다.

아인슈타인은 그를 두고 “후대인들은 이런 인물이 지상에 발을 붙이고 살았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평했다. 그렇다. 간디는 사람이었지만 사람 이상이었다. 그는 사람이 생존을 위해서만 사는 존재가 아님을 웅변한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는, 아힘사로 하나 된 넓은 의미의 불교인이었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38호 / 2018년 5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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