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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파드마삼바바를 위한 꿈

바즈라·연꽃·사내아이 탄생 연계한 꿈이 주류

▲ 파드마삼바바 동상. 18세기 네팔, 차우니박물관.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는 8세기에 인도 땅에서 태어난 밀교수행자로서 후반에 티베트에 불교를 전했던 대표적인 승려였다. 아마도 이정도가 대체로 현대학자들이 동감하고 있는 바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일생은 거의 전설과 같은 행적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신화인지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특별히 그의 영웅적이고 신화적인 전기들은 탄생부터 기이한 신이(神異)의 일화를 보여준다. 그의 일화는 대부분 그의 전기적 기록을 남긴 티베트 문헌들로부터 찾을 수 있는데, 특히 그와 관련된 일련의 꿈들은 티베트 불교의 꿈에 대한 묘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돌이켜 볼만하다. 이 묘사들은 범박하게 말하면, 인도식 표현을 적절히 티베트 방식으로 변형시킨 것들이다.

파드마삼바바 관련 꿈 묘사는
티베트불교의 꿈에 대한 양식

왕실 연못서 발견된 사내아이
붓다 환생될 인물 탄생 예고

각종 티베트 문헌 등장 꿈들은
상당수가 왕권과 관련한 태몽

불교성자나 성자 관련 왕·왕족
그들이 지배한 영토 연관 창작

먼저 그의 탄생이 왕권과 결부되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인도의 왕 인드라부티(Indrabhūti)가 그를 입양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인드라부티는 우디야나(Uḍḍiyāna)왕이었는데 이 왕국은 인도북서부의 스왓트(Swat)지역으로 볼 수 있다. 왕위를 계승할 아들을 오랫동안 얻을 수 없었던 왕은 1000명이 넘는 불교승려와 힌두교 승려들을 불러 제사를 지내고 했으나 실패하고, 소원을 들어주는 여의주를 얻기 위해 바닷길을 항해하기에 이른다. 왕은 성공적으로 여의주를 가지고 돌아온다. 그리고 그는 곧 꿈을 꾼다.

꿈속에서 인드라부티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바즈라(vajra/dorje)를 본다. 끝이 아홉 개로 갈라진 구고저(九鈷杵)가 빛으로 뒤덮인 채 하늘에서 내려와 손 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러자 가슴에서 태양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티베트 전통에서 통상 바즈라는 남성의 상징이자 자비의 상징이기도 하다. 또한 인도적 관념에서 태양은 바로 붓다를 상징한다. 이러한 관념을 반영하듯, 왕은 바즈라와 태양의 꿈을 꾼 다음에 거대한 왕실의 연못에서 사내아이를 발견하게 된다. 아마도 미래에 붓다의 환생이라고 부르게 될 그 인물의 탄생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연못 가운데에는 유달리 거대한 연꽃이 피었으며 아이는 거기서 발견된다. 이 아이가 바로 파드마삼바바이다. 마치 힌두교 창조주 브라흐마 신과 같이, 파드마삼바바는 연꽃이 줄기 끝으로 올라와 그 연꽃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파드마삼바바 즉, 연화생(蓮花生)이라는 뜻의 이름을 갖게 된다.

여기서 티베트 불교에서 그리는 꿈의 양식이 나타난다. 바로 바즈라(또는 바즈라의 빛)와 연꽃, 그리고 사내아이의 탄생이 함께 연결된다는 점이다. 파드마삼바바의 전설적 일대기에는 수많은 꿈의 이야기들이 출현하는데 이 꿈들의 상당수가 태몽이며, 다시 태몽은 위와 같은 상징적 장치들로 꾸며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태몽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는 왕권과 일정한 관계 속에 놓이고 있다. 게다가 꿈을 묘사하는 형식적 방식 속에 파드마삼바바 자신도 들어가게 된다. 따라서 티베트인들의 꿈속에서 파드마삼바바는 태몽과 관계된 어떤 신성한 존재로도 출현한다. 결과적으로 신성한 왕의 탄생을 묘사하고자 할 때, 그들의 태몽 속에 파드마삼바바를 등장시키는 것은 낯선 경우가 아니다.

예를 들어, 불교를 탄압했던 나가비슈누(Nagaviṣṇu)왕을 물리치고, 보드가야 지방에 불법을 보호하고 부활시킨 왕이 있었는데, 이 왕이 삼바라칼라가르바(Samvarakālagarbha)이다. 이 왕의 출생을 성스럽게 부각시키기 위해서 그의 태몽 속에 파드마삼바바를 출현시키는 경우가 그런 경우다. 보드가야 지역의 불법이 쇠락해 가던 시기에, 그 지역의 한 바라문에게 여러 명의 딸과 아들들이 있었는데, 그 딸은 어느 날 야외에서 놀다가 비를 만나 동굴로 피하게 된다. 동굴 속에서 비를 피하면서 딸은 꿈을 꾸게 되는데 그 딸에게 축복을 내리는 꿈이었다. 꿈을 깬 딸은 그 꿈의 기분이 마치 남편과 동침을 한 느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게 된다. 기독교의 성령수태나 무염시태와 같은 표현일 것이다. 바라문의 딸은 부끄러워 자살하려고 했으나, 아버지가 신성한 징조라는 것을 알고 그 아이를 받아 삼바라칼라가르바라고 이름을 짓게 된다. 결국 이 아들은 성장하여 보드가야의 외도들과 왕을 물리치고 그 지방을 다스리는 미래의 왕으로 등극한다. 이 이야기는 파드마삼바바가 불법을 전파했다고 전해지는 지역과 그 지역의 왕권을 서로 연관 짓고 있다. 즉, 보드가야의 전설적인 왕의 탄생을 전하고 있는데, 그 왕의 탄생 속으로 파드마삼바바를 끌어들이고 있다. 즉, 호법(護法)의 왕은 곧 파드마삼바바의 정신적·육체적 상속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꿈의 이야기는 마치 비슈누의 화신 신화에서 많이 대면하게 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마치 비슈누가 자신의 위업을 대신해서 처리해 줄 화신(化身 Avatāra)을 지상에 파견하듯이, 파드마삼바바가 바라문 딸의 육체를 빌어 호법의 왕으로 화현한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파드마삼바바와 연관된 지역, 또는 그 지역 왕과의 연관성은 다른 곳에서도 꿈을 통해 맺어지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파드마삼바바는 티송데첸의 부름으로 티베트로 갔다고 전해지는데, 티송데첸의 꿈은 파드마삼바바의 태몽과 유사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티송데첸의 태몽은 그의 어머니가 꾸는데, 태몽에 등장하는 문수보살을 제외한다면 그 내용은 파드마삼바바의 태몽처럼 태양과 빛이 자궁으로 들어오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티송데첸 왕과 그의 부인이 잠이 든 동안 문수보살은 자신의 가슴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을 부인의 자궁으로 보냈다. 왕비는 잠자는 동안 꿈을 꾸었는데, 태양이 떠오르며 아름다운 아이를 잉태하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세계의 대지는 모두 빛으로 뒤덮였으며 하늘에서 천상의 보석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왕비가 잠이 깨어 티송데첸 왕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자 왕은 기뻐하며 축제연을 벌였다. 거의 유사한 패턴의 꿈도 있다. 파드마삼바바의 부인이자 제자이기도 했던 만다라바(Mandāravā)의 태몽도 비슷한 경우다. 만다라바의 어머니가 꾼 태몽은 청녹색 터키석으로 빛나는 보탑(寶塔)이 머리에서 쏟아져 나오고, 함께 솟아오른 여덟 개의 태양의 강렬한 빛으로 말미암아 도시 조하르가 불타버리는 꿈이었다.

이러한 티베트 형식들의 꿈들은 몇 가지 특징들을 보여준다. 탑이나 바즈라와 같은 불교적 상징물을 포함하며 그것들과 함께 강렬한 빛이 몸속으로 들어오거나, 또는 몸 밖으로 방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꿈들은 불교의 성자나 그 성자와 관련된 왕과 왕족, 또는 그들이 지배했던 영토와 연관되어 창작되고 있다.

심재관 상지대 교양대학 교수 phaidrus@empas.com
 


[1438호 / 2018년 5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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