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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 법당서 군종병으로서 깨달은 참다운 베풂의 가치

기자명 법보신문

동국대 총장상 - 김대홍

▲ 그림=근호

불교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법당에서 할머니를 따라 절을 하던 어릴 적 모습이다.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흉내 낸 것에 불과한 그 행동에 그곳에 있던 스님이나 사람들이 무척 귀여워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재수로 동국대 불교학부에 입학
군복무 고민하다 선배 추천으로
육군훈련소 연무사 군종병 복무

사고 예방위해 훈련병 엄격통제
어느날 여느 때처럼 통제하는데
친한 군종병 “항상 화 나 있어”
지적에 참회하고 따스함 갖게돼

큰법회 준비하며 느낀 두려움도
묵묵히 마주하고 성취하며 극복
매사 솔선하는 사무장·법사님께
지식 아닌 ‘불교의 지혜’ 깨달아

첫 입시 경쟁에서 좌절을 맛보고 2번째 도전에서 동국대 불교학부에 입학하게 됐다. 재수한 탓에 나는 비교적 빨리 입대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그 당시 이미 전역한 복학생 선배들이 군복무를 고민하던 내게 추천해주었던 것 중 하나가 불교 군종병이었다. 군종병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니, 군종병으로 복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군훈련소 호국연무사는 최대 5000여명까지 수용 가능하다. 군 사찰 중 규모가 제일 크고 대웅전 외에도 법당이 3개나 있다. 선임 군종병으로부터 건네받은 인수인계서에는 4개의 법당에 설치된 각종 음향·조명기계 조작법과 법당마다 시행하고 있는 월중행사에 대한 빼곡한 준비사항들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갓 전입해 온 이병의 움츠러든 어깨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역시 시간이 약이었던 것일까. 전입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선임 군종병이 전역을 하게 됐고, 혼자서 법당생활을 하며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히고 해결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처음에는 혼자선 도저히 못할 것 같던 일들이 이제는 눈감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해지게 됐다. 가슴에 한 줄을 달고 있던 이병에서, 어느새 넉 줄의 병장이 돼 남은 전역일이 두 자릿수를 바라보게 된 지금, 법당생활을 돌이켜 보면 몇 가지 부분에서 특별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

신병 육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육군훈련소에서 특히 강조되고 있는 것이 바로 종교활동이다. 훈련병 시절을 돌이켜보면 종교활동은 입대 후 갑자기 바뀐 주변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는 즐거운 안식처였다. 훈련소 각 종교는 4주에서 5주 동안만 머무르는 훈련병들에게 엄숙한 종교활동보다는 ‘종교의 문턱‘을 낮추는데 노력한다. 지난해 조사된 바에 따르면 종교를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의 비율은 50% 정도다. 그런데 훈련소 장병들의 종교행사 참석률은 97% 정도다. 물론 종교행사 때 나누어주는 간식이 그 비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지만, 그것을 고려하더라도 압도적으로 높은 참여비율의 원인은 훈련소에서 강조하는 종교활동의 주목적이 앞서 말한 것처럼 종교로 입문하는 문턱을 낮추어주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육군훈련소 법당에는 법사님이 법문을 해주시고, 법문이 끝난 뒤에는 찬불가 공연팀이 훈련병들에게 찬불가를 소개하고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다 보니 훈련병들이 법당 내에서 들떠있는 상태일 때가 많고, 혹여 법당 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해야 하는 입장인 나는 훈련병들을 엄격하게 통제할 때가 많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마이크를 들고 언성을 높이고 훈련병들을 통제하는 내게 주말마다 도와주던 친한 주말 군종병 한 명이 “형은 평소에는 착한데 왜 법회 때는 항상 화가 나 있어?”라고 물었다. 그 당시에는 그냥 웃고 얼버무렸지만, 끝나고 생각해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훈련병들에게 짜증을 내는 일이 잦아졌음을 알 수 있었다. 나 역시도 법당에 종교 활동을 하는 것이 한 주간 힘든 훈련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일이었는데, 불과 몇 개월이 지났을 뿐인데도 그런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훈련병들을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에만 초점을 맞추어 종교행사를 즐기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자칫 청년 포교의 장을 내 태도 하나로 망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가 던진 물음 덕분에 이후 훈련병들을 대하는 데 있어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훈련병은 나름대로 열심히 종교행사에 참여하고 각자의 신행 활동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육군훈련소 군종병으로 일하면 크고 작은 행사들을 준비해야 했다. 작게는 매주 법사님이 주관하시는 훈련병 종교행사나, 외부 큰스님들을 모시고 수계식을 진행하는 것에서 크게는 불교 행사의 꽃인 부처님오신날부터 작년 9월 3000여명 이상의 전국 각 지역 포교사들이 모인 팔재계 수계대법회 등이다. 처음에는 법사님과 사무장님이 모든 계획을 세워주어도 항상 행사를 준비하는 입장에선 막막한 감정이 앞섰다. 행사 당일 실수를 저지를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눈앞에 해야 할 일들에 집중하지 못하기도 했다. 물론 행사를 성공적으로 하고 난 뒤 그 기쁨은 두려움이 클수록 컸지만, 항상 일을 앞두고는 긴장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예전 훈련병 책자로 나가는 ‘부처님 말씀’이라는 책에서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본 이후 이런 나의 성격은 많이 변했다. 읽었던 구절 가운데서 특히 기억나는 부분은 부처님께서 선정에 드시려던 순간 맹수가 접근하는 상황 속에 부처님이 대처하시며 말씀하신 부분이다. 그때의 부처님은 두려움이나 공포감을 느끼고 그 자리를 피하시기보단 그대로 앉아있는 상태에서 실체 없는 감정이 사라질 때까지 감정을 직접 마주하시며 그 자리에서 묵묵히 견디셨고, 그렇게 견디신 힘으로 깊은 선정의 경지를 차례로 성취하셨다. 이 구절을 읽고 나자 내가 행사를 준비할 때 느꼈던 막연함, 두려움이란 감정은 그 일이 지닌 속성이 아니라, 단지 실체 없이 다가온 생겨나고 곧 없어질 감정이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어떤 일이 하기 싫고 또는 두렵거나 무섭다고 느껴진다고 그 일을 피하려고만 한다면, 또 다른 일을 할 때마다 그러한 감정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냥 묵묵하고 담담하게 그 일을 마주하고 성취해낸다면 다른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것이 아무리 해내기 어렵고 힘들지라도, 더 이상 그런 감정에 휘둘릴 일은 없을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런 마음가짐을 갖게 되자 신기하게도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일들이 수월해졌다. 정확히는 그것을 준비하는 동안의 내 감정이 많이 차분해졌다. 이것이 남들이 흔히 말하는 긍정의 힘인지, 행사를 계획하고, 준비하고, 시행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은 똑같은데 내 마음이 변한 사실 그 하나로 크고 작은 행사들은 더 이상 내게 두려움, 막연함 따위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일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나아가 ‘착하다 혹은 나쁘다’ 따위의 주변을 바라보는 나의 이분법적인 시각에서도 역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주변 상황과 사람은 바뀌지 않았지만 단지 내 마음이 부처님의 말씀대로 바뀐 것 하나로, 두렵고 즐거움, 좋고 나쁨 따위의 이분법적인 시선이 줄어든 것에 작은 깨달음을 느꼈다.

사람들이 보통 종교를 갖게 되는 계기 중 하나가 인생을 살면서 생긴 불안감을 떨쳐 내거나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 어딘가 의지할 곳이 필요해서라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청년층 포교는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이 들었다. 인구절벽과 취업난 속에 역대 최악의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요즘 청년세대는 외적으로는 공부하랴, 취업 준비하랴 하루하루 버텨내기에 숨 가빠하고, 내적으로는 불안하고 공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이들에게 종교가 공감이 되고 의지가 되도록 청년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부처님께서 중생들에게 제시한 깨달음의 길을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또 혼란스러워하는 중생들을 포교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청년들을 포교하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청년 불자들의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청년들이 불교라는 종교를 그들에게 소개하고 관심을 끌게 할 수 있다면, 청년들은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곧 사회에 나가 불교학을 전공하고, 앞으로 불교와 관련된 일을 할 나로서는 청년포교에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군인 신분으로서, 아직 군종병으로서 내가 포교할 방법은 많지 않지만, 주말에 나오는 주말 군종병들에게 불교에 대한 관심이 전역 후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이끌고 매주 법당에 찾아오는 훈련병들에게 불교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시작일 것이다. 사소한 일이지만 내 행동이 타인의 신행활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행동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

이제껏 나는 겉으로만 부처님을 공경하고 불교라는 종교를 믿는다고 떠들어댄 것일지도 모른다. 불교학을 전공했다고 남들보다 불교적 지식과 지혜를 가진 것처럼 행동했지만, 그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작은 세계에서 뽐내며 이기적인 존재로 살아왔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지원한 군종병으로 복무를 하면서, 앞서 느낀 점들 외에도 많은 것들을 배웠다. 베풂의 가치를 가르쳐주신 사무장님과 계급이 절대시 되는 조직 내에서도 솔선수범하는 법사님에게 대학에서 글이나 강의로 배울 수 없는 불교의 가치와 깨달음을 얻었다. 나라를 지키는 일과 더불어 아무나 배울 수 없는 삶의 가치를 깨달을 기회를 군대에서 얻었다.

내가 군 생활 하면서 받은 은혜, 배운 지식을 이제는 어느 정도 나름의 방식으로 주변에 베풀 차례가 온 것 같다. 남은 복무기간 또 전역해서도 그 방식을 고민해 베푸는 것이 앞으로 나의 신행활동에서 큰 갈래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나의 불심은 이제 막 시작됐다.

[1440호 / 2018년 5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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