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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으로 장애 극복해 부모님께 학사모 선물

기자명 법보신문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상 - 성인제

▲ 그림=근호

나는 김포시에 사는 뇌성마비 장애인 불자다. 어머니는 내가 태중에 있을 때 무언가를 보고 놀란 일이 있는데 그 영향으로 내게 장애가 생긴 것 같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부모님은 장애를 갖고 태어난 나를 어떻게든 고쳐 보려고 서울에 있는 큰 병원부터 산속에 있는 산사까지 그 어디든 찾아 다니셨다. 무엇보다 내가 가진 장애를 없애달라고 정성을 다해 기도를 드리던 모습은 내 기억 속에 지금도 생생하다.

불편한 장애로 30여년을
집에서만 보내야 했던 몸
2005년께 인터넷 통해서
장애 불자들의 신행모임
‘보리수 아래’와 인연맺어

반야심경 일심 염송하며
공부해 검정고시 통과도
포기할뻔 했던 대학졸업
용화사 주지 스님 도움
보리수 활동으로 성취해

중앙승가대 스님들과 인연
승가대축제 초청돼 시낭송
자작시가 노래로 불리기도
부처님 그늘서 더 배울 것

여섯 살 때로 기억된다. 부모님은 도봉산에 있는 암자에서 100일 기도를 드리기 위해 어린 나를 데리고 산에 올랐다. 아무것도 모르던 때였지만 산속 암자가 너무나 편하고 좋았던 것으로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암자에 계셨던 보살님들이 함께 놀아주었고 많이 귀여워 해 주었던 모습이 50이 된 지금까지도 뇌리에 남아있다.

30여년을 집에서 그냥 시간만 보내야 하는, 몸이 불편한 장애인으로 살다가 36살이 되던 2005년 인터넷을 통해 장애인 불자 모임인 ‘보리수 아래’를 알게 됐다. 그러나 당시는 모임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고 인터넷 상에서만 활동했다. 인터넷 활동 마저도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잠시 인연을 끊고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인천의 개신교 단체인 ‘섬김과 나눔’이라는 곳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공부를 시작한지 두 달 만인 2006년 5월 중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하지만 목표했던 공부를 마치지 못하고 끝내 집으로 돌아왔다. 다들 잘해주기는 했지만 개신교 단체인 까닭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예배에 참여해야만 했다. 이것이 부담스러웠는지 예배시간만 되면 가슴이 답답해 견딜 수가 없었다.

인천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김포 집으로 돌아와 고입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 검정고시를 준비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고비가 찾아오면 인터넷으로 ‘반야심경’을 들으며 힘든 상황을 극복했다. 중입 검정고시에 합격한지 두 달 후인 2006년 8월 고입 검정고시에도 합격했다. 3개월 사이에 두 차례 검정고시에 합격해 너무나 기분이 좋았고 주위 사람들은 매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세를 몰아 8개월 후인 2007년 4월 고졸 검정고시에도 도전했다. 반드시 합격하겠다는 굳은 각오로 열심히 준비를 했는데 그 과정 역시 만만치 않았다.

중입‧고입 검정고시는 각각 6과목을 공부해야 했는데 고졸 검정고시는 2과목이 추가돼 8과목을 공부해야만 했다. 시험문제도 어려워 많이 힘이 들기는 했지만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힘이 들면 ‘반야심경’에 의지하며 공부를 이어갔고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내친 김에 대학 입학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3년을 목표로 대학시험을 준비하며 온라인으로만 활동하던 보리수 아래 활동을 오프라인으로 활동범위를 넓혔다. 2008년 6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에 참석해 불자로서 활동하면서 1년 내내 집에서 시간을 보내던 생활패턴에도 비로서 변화가 생겼다. 마침내 2011년 3월 한국방송통신대학의 컴퓨터과학과에 입학이 확정됐고 난생 처음 학교라는 곳을 다니게 됐다.

학교란 곳이 처음이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가장 힘들었던 건 교통편이었다. 출석수업과 시험을 위해서는 서울 대림동 학습관까지 이동해야 했다. 도움을 주실 분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어머니가 다니는 김포 용화사 주지 스님께서 흔쾌히 도와주시겠다고 하셔 너무나 감사했다. 당시 김포에는 장애인콜택시가 도입되지 않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장애인콜택시가 생기기 전까지 스님은 이동을 도와주셨고 그 덕에 학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학업과 함께 보리수 아래 활동을 하며 시낭송회도 참여하고 회원들과 공동시집을 편찬하고 영화도 관람하고 스님들과 법회를 보는 등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2014년 5월의 첫날 내가 쓴 시로 시낭송무대에 올랐던 가슴 벅찬 순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마음 깊이 남아 있는 소중한 기억이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당시 ‘세월호’라는 여객선이 큰 사고가 나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기에 보리수 아래 행사 역시 축제가 아니라 돌아가신 분들을 애도하는 분위기로 행사를 치뤘다.

2015년 3월에는 회원들의 시를 모아 공동시집 ‘단하나의 이유까지’를 펴냈는데 내가 쓴 시도 7편이나 포함됐다. 내가 쓴 시가 책으로 나온다는 것이 너무 기뻤다. 연말모임을 의미 있게 보내자는 회장님 말씀에 회원들 역시 동의했다. 회장님은 소극장을 섭외해 참여할 사람들을 정했고 나에게도 한 번 무대에 서보라는 뜻밖의 제안도 받았다. 바쁜 와중에도 부랴부랴 시를 써 무대에 서는 뜻깊은 연말을 보냈다.

2016년 새해 계절학기 시험 준비에 혼신을 기울였다. 졸업을 위해서는 2학점이 필요했고 계절학기 시험만 잘 보면 졸업이라 더욱 시험 준비에 집중했다. 시험과목은 3번이나 과락을 했던 ‘HTML/XML’ 과목이었다. 결과는 간신이 학점을 이수하는 것으로 나와 5년간의 대학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먼 길을 달려와 졸업식에 참석한 부모님께 학사모를 씌워드렸다. 부모님은 그 어떤 때보다 환한 웃음과 대견스러운 눈으로 바라봐 주셨다. 평생 근심만 드린 것 같아 죄송한 마음과 함께 나도 이렇게 기쁨을 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다.

졸업이라는 큰 선물과 2016년을 기분 좋게 시작한 나는 본격적으로 불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동안 공부한다는 핑계로 자주 나오지 못했던 보리수 아래에도 꼬박꼬박 참석했고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던 불교행사에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2016년 5월 중순에는 ‘템플스테이’ 행사에 처음으로 참여해 동해안으로 첫 나들이를 떠났다. 강원도에 있는 낙산사에 머물며 동해안도 구경하고 보리수 아래 회원들과 봉사자로 참여한 중앙승가대 스님들과 이야기를 나눠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저녁예불 때는 법당에서 예불을 드리면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올바르게 사는 것인지 자문하기도 했다.

예불을 마치고 저녁공양을 하며 별관에 모두 둘러앉아 자기소개도 하고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들도 나눴다. 특히 장애인들에 대한 불교계의 지원 등을 제시하고 그동안 장애인복지를 등한시 했던 부분에 대한 반성도 지적했다. 우리는 저녁모임을 마치고 스님들과 조를 짜 잠자리에 들었고 동이 트기 전 새벽에 법당으로 가 아침예불을 모셨다. 예불을 마친 우리는 일출을 보러 산에 올랐고 붉게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모든 이들의 평화와 안락을 기원했다.

1박2일의 낙산사 템플스테이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불교는 더 이상 장애인들에게 먼 종교가 아니었다. 항상 장애인들 곁에 있는 친숙한 종교로 남아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후에도 중앙승가대 스님들과의 인연이 이어져 한 달에 한 번 있는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석해 좋은 말씀도 해 주시고 ‘법구경’도 함께 낭송했다.

그러던 중 11월 중앙승가대 축제에 보리수 아래 회원들이 시를 낭송하는 무대가 마련됐다. 중앙승가대에는 보리수 아래와 항상 함께하시는 일원 스님과 템플스테이에 동참해 도움을 주었던 수진 스님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김포에 살면서도 중앙승가대에는 처음으로 가보는 터라 모든 것이 낯설었는데 또 다른 스님이 곳곳을 다니며 구경시켜 주고 점심공양 때가 되자 여러 음식들을 챙겨 주었다. 중앙승가대학에서 공연한지 20일 후 서울 마포에서 또 다른 무대에 서게 됐다. 언어장애가 있는 나를 위해 한 시인이 시낭송을 대신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다. 2016년은 정말 내게 잊을 수 없는 한해라고 생각한다.

해가 바뀌어 2017년에 보리수 아래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회원들의 시를 모아 음반을 제작하기로 했는데 내가 지은 한편의 시에 곡이 붙여졌고 음반 발매를 기념한 공연도 열렸다. 내가 쓴 노래가 합창단에 의해 불리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미소를 짓게 한다.

지금까지도 불교가 무엇인지,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 명쾌하지가 않다. 그냥 부처님이 좋고 스님들이 좋고 함께 활동하는 회원들이 좋기 때문에 절에 가는 것이고 불교를 믿는다. 어느 유명한 산악인이 “왜 산에 가느냐”는 물음에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 간다”고 답했다 한다. 나 역시 같다. 누군가 “왜 절에 가느냐” 묻는다면 “부처님이, 부처님의 가르침이, 스님들이 계시기에 간다”고 말할 것이다.

솔직히 보리수 아래 다른 회원들에 비하면 나는 부족하다. 스스로를 잘 알기에 라디오와 TV, 인터넷을 통해 ‘금강경’과 ‘화엄경’을 공부하고 큰스님들의 좋은 말씀도 들으며 불교를 하나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한 걸음씩 전진하며 부처님의 그늘 아래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체험하고 싶다.

[1440호 / 2018년 5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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