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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오색등 앞에 부끄럽지 않기를

기자명 진명 스님
  • 법보시론
  • 입력 2018.05.22 10:43
  • 수정 2018.05.31 16:34
  • 댓글 0

불교계 최대명절인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몇 년에 한 번씩 불자들의 신심을 시험대에 올려놓는 사건들이 벌어진다. 뉴스에 오르내리는 사건의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불심은 극락과 지옥 사이를 롤러코스터 탄다. 누가 무슨 자격으로 불심에 상처를 입힌단 말인가. 이런 집단적인 상흔은 어디서 위로 받으며 치료 받는단 말인가.

문득 이 말씀이 생각난다. ‘삼일수심(三日修心)은 천재보(千載寶)요 백년탐물(百年貪物)은 일조진(一朝塵)’이라. 천년의 보물도, 하루아침의 티끌도 각자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승가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 안에 수심(修心)은 없고 탐물(貪物)만 남았다면 이 또한 슬프지 아니하겠는가. 지난주 지리산 자락에 작은 수행처에서 정진하시는 스님을 뵙고 왔다. 평생 가난한 수행자로 살아가는 승가의 기둥 같은 스님이 깃들어 사는 그 도량에는 수심만 있지 탐물은 없었다. 그런 수행자들이 정진하는 힘이 상처 난 불심을 위로하고 치료하는 양약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한적한 도량에도 오색 연등이 달리고 사람들의 발길이 뜨문뜨문 이어진다. 미리 등불을 밝히기 위해 변함없이 찾아오는 그 불심을 위해 나는 도량을 살피고 꽃을 가꾼다. 도량에 등불을 밝히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동업 중생의 한 사람으로 참회하는 심정으로 호미를 든다. 지금 내가 그 불심에 보답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스님 왜 그렇게 팔목이 아프도록 일을 하냐”며 “그냥 사람 쓰라”고 하지만, 비용을 들여 사람을 사서 일을 하는 것은 쉽지만 이렇게라도 나의 땀으로 보답하고 싶기 때문이다.

부처님 재세시에 가난한 여인 난타(難陀)가 올린 등불공양의 의미가 올해는 더욱 새롭다. 전국 사찰에서 저마다 각각의 사연을 담고 등불을 밝히겠지만, 여인 난타가 등불공양을 올리며 세운 서원은 “내생에는 밝은 대지혜의 광명을 얻어 일체 중생의 어두움을 없애게 하여 주옵소서” 이다. 내생에는 기름을 충분히 사서 등불을 밝힐 수 있는 부자가 되게 하여 주소서가 아니다.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요, 권좌와 명예를 얻는 것도 아니다. 오직 어리석은 무명업식을 벗어나 밝은 대 지혜광명을 얻어 어두운 중생의 마음을 밝히고자 세원을 세웠다.

아마도 부처님 말씀을 실천하고 따르는 모든 제자들은 승속을 막론하고 꼭 이루고자 하는 서원을 하나쯤은 세우고 있을 것이다. 그 서원의 실현이 가깝고 먼 것과는 상관없이 꼭 이루고자 하는 서원은 주변을 살피기에 앞서 자신을 바르고 단단하게 세우도록 주문한다. 자신이 바로 서지 못하고 어찌 주변을 살필 수 있으며, 일체 중생의 어두움을 소멸 시킬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올해는 주변의 일에 끄달려서 옳다 그르다 탓하지 말고, 모두 각자의 분상에서 수행자는 수행으로, 교육자는 바른 교육으로, 또 문화와 포교, 복지 현장에서는 그 역할에 맞는 일로 최선을 다해 변함없는 불심과 사회에 보답하는 일을 우선해야 할 것이다. 그 일을 통해서 어리석고 무거운 업식에서 벗어나는 길이 먼저이다. 그것이 자신을 위하는 길이며, 나아가 종단과 불교를 위하는 길일 것이다.

종권 다툼에만 눈이 어두워 불심과 불교의 위상은 외면한 채 불교 전체의 근간을 뒤흔들며 온갖 작당을 일삼는 그들만의 리그에 흔들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지혜롭게 눈 뜰 수 있는 사부대중이길 희망한다.

이 바람은 나를 향한 약속이기도 하다. 매일 매일 밝히는 참회의 등불 앞에 부끄럽지 않은 승가의 일원이기를 약속하고, 어떤 쓰나미에도 단단하게 흔들리지 않는 변함없는 불심과 깊은 신심으로 밝힌 오색찬란한 등공양 앞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말이다.
 
진명 스님 경기도 시흥 법련사 주지 jm883@hanmail.net
 


[1441호 / 2018년 5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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