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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탱화는 삶 표현된 당대의 회화적 백과사전”

김남희 박사, ‘감로탱화’ 신간서
“시대의식 강한 불교회화” 강조
숭유억불 정책서 명맥유지 가능

▲ ‘은해사 백홍암 감로탱화’ 견본채색, 196.5*196cm, 1792년, 영천 은해사 소장.

영혼을 천도(薦導)하는 불교의식에 사용된 감로탱화는 시간성과 공간성이 동시에 표현된 조선시대 불교회화다. ‘신들의 그림 이야기’가 아닌 시·공간적 층위와 존재론적 인드라망 속에 놓인 ‘인간들의 그림 이야기’로 인간의 죽음에 대한 반응의 한 양상을 불교의례를 빌어 표현했다.

김남희 미술학 박사는 계명대학교 출판부가 발간한 ‘조선시대 감로탱화-감로탱화에 나타난 시간성과 공간성’를 통해 감로탱화를 “당대의 회화적 백과사전”이라고 표현했다. 16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제작된 감로탱화는 그 시절 유행한 시장풍경이나, 동물, 전쟁 장면 등이 반영돼 있고 각종 상행위와 민화적 요소가 매우 구체적이어서 제작 당시의 애환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감로탱화는 현실사회를 기록하고 불교회화 형식을 존중하면서 민화의 특정 부분을 차용, 도상을 풍부하게 가꾼 특징이 있다. 따라서 감로탱화는 당시 회화를 적극 수용한, 시대의식 강한 불교회화라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감로탱화는 불교의 우주관을 삼계(三界)로 집약해 놓은 상단·중단·하단이라는 삼단의 공간성을 확보하면서도 과거, 현재, 미래라는 삼세의 시간이동을 수직적인 상승구조로 구성됐다. 상단은 불·보살의 세계, 중단은 재단과 법회 장면, 하단은 윤회를 반복해야 하는 아귀 등 중생의 세계와 고혼이 된 망령의 생전 모습이 묘사돼 욕계에서 색계, 무색계로 펼쳐진다. 이런 구조는 조선시대 불교의례의 삼단법(三壇法)과도 동일한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김남희 박사는 사찰에서 천도재를 거행할 때 조선시대에 제작된 감로탱화를 사용되고 있음에 주목했다. 감로탱화가 조성된 조선시대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의 사회, 경제적인 토대가 완전히 박탈된 시대였다. 그러나 천재지변에 대한 구원의 손길과 인간의 무병장수, 사후명복을 비는 행위 등은 당시 지배이념이었던 유교적인 정치윤리로는 해결될 수 없었다. 비록 조선시대 불교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은 축소·억제됐지만 종교적 차원의 불교의례와 신앙만은 전적으로 말살될 수 없었다. 조선시대에 불교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김남희 박사는 “감로탱화는 조선시대 후반 왕성하게 제작됐지만 시간성과 공간성의 상상력을 화면에 구현시킨 작품으로서 현대예술에도 활용가치가 크다”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거대한 사고체계는 새로운 매체예술을 탐구하고 대중과의 소통을 추구하는 현대예술 창작에 직접 연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은호 기자 eunholic@beopbo.com
 

[1441호 / 2018년 5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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