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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여 대중들 눈물로 설악의 도인 떠나보내다

  • 교계
  • 입력 2018.05.30 14:42
  • 수정 2018.06.08 21:44
  • 호수 1442
  • 댓글 2

원로회의장 장의위, 설악무산 스님 영결·다비식 엄수

매년 안거 결제마다 활구법문으로 대중에게 지혜를 전하고, 용대리 주민들에겐 친근한 웃음을 건넸던 무산 스님. 스님은 하안거 결제 하루 뒤에 봉행된 영결·다비식에서 대중들에게 하얀 연꽃 하나 빙긋이 피워 올렸다.
매년 안거 결제마다 활구법문으로 대중에게 지혜를 전하고, 용대리 주민들에겐 친근한 웃음을 건넸던 무산 스님. 스님은 하안거 결제 하루 뒤에 봉행된 영결·다비식에서 대중들에게 하얀 연꽃 하나 빙긋이 피워 올렸다.

조계종 원로의원이자 기본선원 조실이었다. ‘조오현’ 시인이었다. 그리고 강원 인제 용대리의 친근한 할아버지이자 어른이었다. 설악산보다 크게 중생을 품었던 설악(雪嶽) 무산(霧山) 대종사는 5월30일 열반에 들어 더 생생한 법이 됐다. 조계종 원로회의 장의위원회(위원장 세민 스님)는 속초 설악산 신흥사에서 고성 건봉사 연화대에서 영결·다비식을 엄수했다. 불교를 비롯한 종교, 정치, 사회, 문학 등 각계각층서 찾아온 3000여명의 사부대중이 적멸로 가는 무산 스님의 길을 배웅했다.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을 비롯해 원로회의 의장 세민, 총무원장 설정, 중앙종회의장 원행,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의정, 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성우 스님 등 내빈들도 무산 스님을 애도했다.

종교·정치·사회·예술계 등
3000여 대중 눈물로 배웅
법구 떠나보내며 “아미타불”
고성 건봉사 연화대서 다비
“생생한 법문 그립다” 애도
신흥사, 7월13일 49재 막재

영결·다비식 전날 밤은 설악산의 새들과 풀벌레들이 울었다. 영결·다비식에는 사부대중이 눈물을 흘렸다. 무산 스님과 각별한 인연을 맺은 스님들은 저마다 기억을 떠올리며 추모했다. 애써 아낀 눈물 대신 합장했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세민 스님은 “비록 적멸의 깊은 곳에 해탈의 안락을 누리고 계시더라도 무생의 한 소식을 한 번 보여달라”며 “여기 모인 중생은 평소 소탈하고 인자한 모습으로 이끌어주시던 그 진용과 법음을 뵙고 들을 수 없어 슬픔에 잠겼다”고 했다. 총무원장 설정 스님은 무산 스님의 활구법문이 주는 지혜를 그리워했다. 설정 스님은 “‘절집과 대장경에 법이 있지 않고 거리의 노숙자와 대장장이, 염장이들에게서 법을 찾으라’는 가르침은 두고두고 수행자들의 지표가 될 것”이라고 무산 스님을 기렸다.

백담사에 무문관인 무금선원과 조계종 기본선원, 신흥사에 향성선원을 개원해 선풍 진작에 진력한 무산 스님, 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설립해 축전을 열고 ‘불교평론’을 창간하고 만해 스님이 창간한 ‘유심’지를 복간하고 만해마을을 건립한 무산 스님, 시조시인으로 등단해 문인으로서 선종의 가르침을 시로 승화시킨 무산 스님은 사부대중의 기억에 아로 새겨졌다.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은 법어에서 “치열한 정진으로 선과 교와 종무를 두루 섭렵하고 오직 본분인 수행과 후학불사, 불교문화쇄신을 평생 원력으로 매진했다”며 “산중을 지혜와 덕망으로써 원융화합을 이루고, 설악의 불교문화를 부처님의 정법으로써 세계문화로 전승하고 전법포교로 회향했다. 실로 수행자의 참모습”이라고 강조했다.

▲ 남녘 최북단 사찰 고성 건봉사 연화대에 오른 법구에 불이 들었다.

중앙종회의장 원행 스님도 “하나같이 특출한 시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결국 누구나 본래 부처이니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부처로 대하고 섬기라는 가르침”이라고 강조했고,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의정 스님은 “오늘 큰스님의 뿔과 털이 세상을 덮었으니 행화(行化)는 광명이 되었다”고 추도했다.

재가불자들을 대표해 이기흥 중앙신도회장은 “스님이 한 자 한 자 글로써 남긴 가르침을 명심하고, 평생 일군 보살행의 발자취를 후대에 올곧게 전하겠다”고 발원했다. 이근배 원로시인은 헌시에서 “더 높은 극락보전에 올라 불멸의 사리탑을 지어달라”고 청했다.

무산 스님의 법구가 설악산과 신흥사에 삼배를 올렸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삼신불번, 오방불번, 불교기, 무상계, 법성게, 십이불번, 만장이 앞장섰다. 위패와 영정 그리고 무산 스님의 법구가 산문을 나섰다. 남녘 최북단 사찰 고성 건봉사 연화대에 오른 법구에 불이 들었다. 지난 5월26일 법랍 62세, 세랍 87세로 입적한 설악 무산 스님이 비로소 껍데기를 벗었다.

▲ 적멸로 향하는 설악 무산 스님의 법구를 눈물로 배웅하는 사부대중.

사부대중의 “나무아미타불” 정근이 건봉사가 자리한 금강산을 휘감았다. 간혹 대차게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도 사부대중의 합장은 절절했다. 6월1일 신흥사를 시작으로 백담사, 낙산사, 만해마을, 진전사, 건봉사를 거쳐 7월13일 오전 10시 신흥사에서 치르는 막재까지 왕생극락을 발원하는 마음이었다.

영결식에서 행장을 소개했던 정휴 스님은 “늘 높은 곳보다 낮은 곳에 계셨으며, 보통 잣대로는 잴 수 없는 풍모를 보였다”며 평생 도반을 떠나보냈다. “편히 쉬시게.”

23년 전 무산 스님이 백담사 주지로 부임할 때 용대리 이장이었던 정래옥씨도 신도들이 드리는 용돈을 푼푼이 모아 아낌없이 주민들과 나눴던 스님을 보냈다. “용대리 어느 곳을 가나 스님이 남긴 발자취를 돌아보며 잊지 않고 마음속 깊이 새기고 열심히 살아 갈테니 이제 편히 잠드시기 바랍니다.”

무산 스님은 생전에 ‘적멸을 위하여’라는 시에서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고 되물었다. 이생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사부대중의 마음 덕에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겠다던 스님의 적멸을 향한 걸음은 즐거웠다.

매년 안거 결제마다 활구법문으로 대중에게 지혜를 전하고, 용대리 주민들에겐 친근한 웃음을 건넸던 무산 스님. 스님은 하안거 결제 하루 뒤에 봉행된 영결·다비식에서 대중들에게 하얀 연꽃 하나 빙긋이 피워 올렸다.
 
속초·고성=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1442호 / 2018년 6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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