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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영 칼럼-포스트 게놈 시대 불교의 역할

기자명 법보신문

생명과학시대 지켜줄 윤리 될 것

지난달 26일은 인류역사상 기념비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인간유전자지도 초안’의 완성을 선포하는 모습이 전세계에 생중계 되었다. 그는 “우리는 신이 인간을 창조한 과정을 연구하여 이해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약 35억개의 염기로 구성된 인간유전자의 구조를 752장에 담아 생명과학의 새로운 경전으로 이 세상에 내 놓은 것이다. 인간생명의 신비가 한꺼풀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생명과학의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른바 ‘포스트게놈 시대’의 개막을 알린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인간유전자 지도’를 만드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미국, 영국, 일본 등이 주도한 이 사업에 비록 직접적인 공헌을 하지 못했지만 이제부터라도 남다른 각오로 이 분야에 대한 새로운 국가전략을 세워 나가야 할 것이다.

정보산업과 마찬가지로 유전공학, 생명과학을 차세대 중점사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여기에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투자와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인간유전체기능 연구사업’에 착수하여 게놈 약소국의 처지를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전환기에는 지나쳐버리기 쉬운 일이 있다. 함정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위대한 ‘인간유전자 구조의 발견’ 뒤에는 드러나지 않는 부작용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생물산업, 생명과학의 발전이 개인유전정보의 남용으로 사생활이 침해되고, 생명윤리가 땅에 떨어질 수 있다. 생명의 외경심이나 인간의 존엄성이 유린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인간이 타고난 유전형질을 유전자조작으로 바꾸는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과학자가 누리는 연구의 자유가 윤리적 한계를 넘어 인간을 실험대상으로 삼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이러한 비윤리적 행태를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이 반드시 강구되어야 한다.
잠시 눈을 돌려 우리가 쓰고 있는 컴퓨터를 생각해 보자. 이 컴퓨터의 발명은 정보혁명을 가져 왔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세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 버렸다. 이렇게 편리한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정보통신 시대를 창출하였지만 많은 부작용이 노출되고 있지 않는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 인간은 많은 갈등과 대립을 겪게 된다. 정보 프라이버시권이 마구 침해되고, 해커 침입의 두려움 속에서 근심 걱정을 더해 간다. 가족 구성원간의 대화가 단절되어 가족 제도의 붕괴 우려도 있다. 음란물 범람으로 성질서가 윤리 도덕적 기반을 잃기 쉽다.

지금까지의 연구성과를 보면, 이미 열성 유전자를 가진 인간에 대한 차별과 멸시, 인종간의 갈등과 대립 등의 어두운 그림자가 보인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우리 인간에게 많은 선물을 가져다 주지만, 과학자들의 윤리의식의 결여는 엄청난 재난을 불러 일으킨다.

얼마 전 우리가 겪었던 ‘의료 대란’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이미 2년 전부터 법을 만들고 국민건강을 지키기 위해 ‘의약 분업’을 하기로 국민적 합의가 있었다. 그런데도 법의 시행을 눈앞에 두고 의료계는 법을 무시한 채 파업을 했다. 응급실이 폐쇄되어 귀중한 생명이 죽어갔다. 집단적인 이기심 앞에서 국민 건강은 송두리째 외면당하고 말았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결국 전쟁이 나도 치료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전통적인 윤리가 무너지는 순간을 보았다. 법은 윤리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했다. 결국 의료인들이 생명윤리를 저버리고 어느 문명국에서도 볼 수 없는 진료거부행위를 하는 바람에 많은 환자들이 질병의 고통 속에서 희생 당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포스트 게놈시대를 준비하면서 새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윤리적, 도덕적, 법적 규범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특히 생명과학자, 연구자들이 지켜야할 윤리 도덕 강령이 하루 속히 마련되어야 할 시점이다. 여기에는 모든 만물의 생명을 으뜸의 가치로 여기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응용될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은 생물뿐만이 아니라 무생물까지도 불성(佛性)이 있다고 가르치셨다. 이 얼마나 위대한 사상인가. 우주 삼라만상을 이루는 자연계가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생명에 대한 외경심(畏敬心), 존경심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 수 있다. 생물, 무생물의 구별없이 생명의 윤리성, 도덕성을 부여한 것이다.

불교의 불살생(不殺生), 생명존중의 가르침은 자비행과 이타정신으로 실천적 윤리가 뒷받침된다. “생명을 최고의 본질적 가치”라고 가르치는 부처님 정신은 포스트 게놈시대의 최고 윤리 강령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불교계는 불교 윤리적 관점에서 인공유산, 뇌사, 장기이식, 안락사 등을 부정적인 시각에서 비판해 오고 있다. 이번에 전세계적인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인간유전자지도’의 연구에 대하여도 우리 불교계가 적극적인 윤리적 계도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처님의 지혜를 통해 인간 본래의 모습을 훼손하지 않고, 생명과학의 발전에 올바른 윤리규범을 세우는데 앞장서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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