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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조경기행[26]-시각적 균향 살린 공간구성 지리산 화엄사

기자명 홍광표

자연에 순응한 공간예술의 전형

산의 깊고 높은 정도를 따지면서 어찌 지리산을 제쳐두고 이야기를 할 수가 있겠는가? 더구나 지리산은 통일신라시대 이래로 국가에서 제사를 올리던 오악(五岳) 가운데에서 남악에 해당되던 성스러운 산이었으니 지리산의 의미는 물리적인 것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도 분명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 민족에게는 일찍부터 명산으로 각인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명산에 화엄사가 있으니 화엄사는 분명히 명찰임에 틀림이 없다. 그것은 명산에 명찰이 있다고 하는 옛말을 새겨보면 쉽게 이해가 될만한 일이다.

화엄사 사적기에 따르면 화엄사는 신라시대에 연기조사에 의해서 창건된 사찰이라고 한다. 물론 우리 나라의 고찰들이 하나같이 창건연대가 분명치 않고 창건주가 모호한 형편이니 화엄사도 정확한 창건연대와 창건주를 얘기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듯하다. 그러나 화엄사가 신라, 고려왕조를 지나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여러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화엄사의 사격이 만만치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겠다.

화엄사의 전체 가람배치를 살펴보면 이 절이 자연환경에 순응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가 있다. 특히 진입과정에서 나타나는 건물인 불이문, 금강문, 천왕문 그리고 보제루가 자리를 계속 서쪽으로 옮겨가면서 꺾인 축선 상에 배치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주는 증거가 되고 있다.

또한, 화엄사의 배치에서 특이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으니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찰들과는 달리 화엄사에는 중정 북측에 배치된 대웅전 말고도 서측편 석단 위에 각황전이라는 또 다른 전각이 도입되어있다는 것이다. 이 각황전은 대웅전이 이루는 중심축과 직교된 축선상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각황전과 대웅전의 배치로 인하여 화엄사의 중심공간은 허술하다거나 비어있다는 느낌보다는 꽉 차있다는 느낌을 주게 된다. 더구나 이 두 건물은 높은 석단 위에 건축되어 있어 중정에서 바라다볼 때, 수직적인 높이가 강조되고 있으니 이로 인하여 화엄사 중심공간이 대웅전과 각황전에 둘러싸여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또한, 중정의 한가운데를 기준으로 살펴볼 때, 각황전까지의 수평거리는 대웅전까지의 수평거리에 비해서 거의 두 배정도 길게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중정의 중심점에서 두 건물까지의 거리를 다르게 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숨겨져 있으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각황전의 높이에 비해서 대웅전의 건물높이가 절반밖에는 되지 않기 때문에 중정에서 건물들을 지각할 때, 시각적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철저한 수학적 배려 때문이었던 것이다.

화엄사의 공간을 구성하던 시점에 벌써 우리의 조상들은 인간이 어떤 대상을 시각적으로 지각할 때, 수직적인 높이와 수평적인 거리가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화엄사의 중심공간에서는 각황전에 대한 인식과 대웅전에 대한 인식이 불균형을 이루지 않고 균형을 이루면서 지각될 수 있게된 것이다. 이렇듯 건물을 배치하는 과정에서도 공간감과 건축의 규모를 더불어 생각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시각적 균형을 위하여 건물의 배치와 건물의 규모까지도 생각한 화엄사의 중심공간에서 우리는 월등한 수준의 공간예술을 발견하게 된다.


홍 광 표 /동국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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