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가까이 두니 이승이 고향 같아”
노시인(83세)의 붓끝에 배어 나온 시편들은 조용히 삶의 더덕들을 관조하며 발밑에 흐르는 강물을 보내듯 그렇게 흘려 보내고 있다. 80평생의 여정을 이처럼 담담하게 돌아보며 황혼기를 맞게 한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불교’다. 작품 편편마다 그의 불교 사상관이 짙게 배어있음을 알 수 있다. 아니 좀더 차분히 시 한 수 한 수를 음미해 보면 전편이 ‘불교사상’이라는 샘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임을 간파할 수 있다.
아장아장 걷는 것이 童佛인줄 알던 내가/ 휘청휘청 걷는 것이 老佛인줄 알던 내가/ 이제는 지팡이 하나로 無佛의 길 찾아갑니다.(無佛行)
무불의 길을 나서는 정 시인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까. 그가 머리말을 대신해 쓴 서시 ‘이승의 등불‘을 보자.
내가 죽어 저승엘 가면 이승이 고향 아닐까/ 너랑 나눈 한잔 차 이야기 오소소 추운 낙엽 가을 밤 / 잘 익은 등불이 모두 꿈길에 밝히겠네 (이승의 등불)
정 시인은 “이젠 나이가 드니 희노애락에 대한 분별보다는 죽음과 가까워지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한다. 죽음과 가까워지려고 하는 사람이 좀 더 오래 살 사람들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비’다. “불가에서 늘 하는 말 한마디를 가슴으로 새겨보아야 합니다. 자연 앞에 겸손하며 자신의 존재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 자비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자비로 이 세상을 맑힐 때 진정한 불국토가 아니겠습니까.” 자연과 인간 존재에 대한 소중함은 그의 서정성 짚은 시조 행간에 스며들어 있다.
저토록 푸른 하늘이 어디에다 가마걸고/ 이토록 붉은 열매를 주저리로 구어 내렸나/여든 해 이 땅에 살아도 가마터를 나는 몰라.(감을 따 내리며)
풀벌레가 저리 울어야 밤하늘에 별이 뜨고/ 밤하늘에 별이 빛나야 풀벌레도 운다는데/ 별 뜨고 풀벌레 우는 밤 나 없으면 어이하리(내 별자리)
‘감을 따 내리며’에서는 한 평생 살면서 시를 써왔지만 자연 앞에서의 ‘나’는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나를 두고 시조의 지평을 넓힌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난 한 시인이였을 뿐입니다. 한 인간입니다.
”반면 작품 ‘내 별자리’에서는 ‘감을 따 내리며’와는 달리 역설적으로 이 우주 속에서의 자신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인간 본연의 본질을 일깨우며 ‘자비’가 충만하기를 바라며 생을 여미는 시인의 모습은 마치 한 선승이 구도 행각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고 입적을 기다리는 듯 하기만 하다. 언제쯤 다음 시집을 만날 수 있겠느냐고 묻자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이 시집도 7년만에 나왔습니다. 다음 시집은 기대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시는 죽을 때까지 씁니다.
아마 유고시가 되겠지요.” 노 시인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이승의 등불‘에 이어 유고집이 아닌 13번째 시조집을 기다려 본다. 토방. 7,000원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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