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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만남 - 시조집 『이승의 등불』 정완영 시인

기자명 채한기
  • 불서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죽음을 가까이 두니 이승이 고향 같아”

정말 한 세월을 살아보면 그토록 처절하게 잡았던 삶의 집착을 벗어 던질 수 있을까.‘오동잎 그늘에 서서’(1994년) 이후 7년만에 나온 정완영 시인의 시조집 ‘이승의 등불‘.

노시인(83세)의 붓끝에 배어 나온 시편들은 조용히 삶의 더덕들을 관조하며 발밑에 흐르는 강물을 보내듯 그렇게 흘려 보내고 있다. 80평생의 여정을 이처럼 담담하게 돌아보며 황혼기를 맞게 한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불교’다. 작품 편편마다 그의 불교 사상관이 짙게 배어있음을 알 수 있다. 아니 좀더 차분히 시 한 수 한 수를 음미해 보면 전편이 ‘불교사상’이라는 샘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임을 간파할 수 있다.



아장아장 걷는 것이 童佛인줄 알던 내가/ 휘청휘청 걷는 것이 老佛인줄 알던 내가/ 이제는 지팡이 하나로 無佛의 길 찾아갑니다.(無佛行)



무불의 길을 나서는 정 시인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까. 그가 머리말을 대신해 쓴 서시 ‘이승의 등불‘을 보자.



내가 죽어 저승엘 가면 이승이 고향 아닐까/ 너랑 나눈 한잔 차 이야기 오소소 추운 낙엽 가을 밤 / 잘 익은 등불이 모두 꿈길에 밝히겠네 (이승의 등불)



정 시인은 “이젠 나이가 드니 희노애락에 대한 분별보다는 죽음과 가까워지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한다. 죽음과 가까워지려고 하는 사람이 좀 더 오래 살 사람들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비’다. “불가에서 늘 하는 말 한마디를 가슴으로 새겨보아야 합니다. 자연 앞에 겸손하며 자신의 존재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 자비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자비로 이 세상을 맑힐 때 진정한 불국토가 아니겠습니까.” 자연과 인간 존재에 대한 소중함은 그의 서정성 짚은 시조 행간에 스며들어 있다.



저토록 푸른 하늘이 어디에다 가마걸고/ 이토록 붉은 열매를 주저리로 구어 내렸나/여든 해 이 땅에 살아도 가마터를 나는 몰라.(감을 따 내리며)



풀벌레가 저리 울어야 밤하늘에 별이 뜨고/ 밤하늘에 별이 빛나야 풀벌레도 운다는데/ 별 뜨고 풀벌레 우는 밤 나 없으면 어이하리(내 별자리)



‘감을 따 내리며’에서는 한 평생 살면서 시를 써왔지만 자연 앞에서의 ‘나’는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나를 두고 시조의 지평을 넓힌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난 한 시인이였을 뿐입니다. 한 인간입니다.

”반면 작품 ‘내 별자리’에서는 ‘감을 따 내리며’와는 달리 역설적으로 이 우주 속에서의 자신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인간 본연의 본질을 일깨우며 ‘자비’가 충만하기를 바라며 생을 여미는 시인의 모습은 마치 한 선승이 구도 행각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고 입적을 기다리는 듯 하기만 하다. 언제쯤 다음 시집을 만날 수 있겠느냐고 묻자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이 시집도 7년만에 나왔습니다. 다음 시집은 기대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시는 죽을 때까지 씁니다.

아마 유고시가 되겠지요.” 노 시인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이승의 등불‘에 이어 유고집이 아닌 13번째 시조집을 기다려 본다. 토방. 7,000원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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