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화해순례와 천진암 성당
교황의 화해순례와 천진암 성당
  • 이학종
  • 승인 2004.08.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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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이하 교황)의 ‘다른 종교와의 화해’를 위한 순례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교황의 순례는 ‘모든 종교의 반목과 갈등 해소’라는 신념 아래 ‘타종교 끌어안기’의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교황은 시리아 등을 방문해 이슬람과 기독교 유대교의 화해를 호소했고, 가톨릭이 개신교를 탄압한 것을 사과했습니다.

최초로 이슬람 사원을 방문한 교황은 지난 5일, 11세기 가톨릭과 정교가 분열된 뒤 처음으로 정교국인 그리스를 방문해 13세기 십자군이 정교회의 중심지인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을 점령하고 약탈했던 사실을 공식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78년 교황에 선출된 후부터 희망해왔던 러시아 방문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오랜 반목의 역사를 청산하고 정교와 화해하기 위한 교황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그러나 러시아 정교회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외신은 전하고 있습니다. 정교와 가톨릭 사이에 놓인 걸림돌, 그러니까 최근 가톨릭이 구 소련지역에서 교세를 넓혀 가는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러시아 정교회 측에서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러시아 정교회 수장 알렉시이 2세 총주교는 지난 13일 “(가톨릭)선교사들이 러시아인의 영혼을 사들이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습니다.

또 교황이 이스탄불에서 행한 공식사과 발언에 대해 “사과가 어떻게 실현되는지 지켜보겠다”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와중에 교황은 6월 23일 우크라이나를 방문할 예정입니다. 푸틴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놓고 있어 러시아 방문도 성사될 것으로 보입니다. 가톨릭의 과거 잘못에 대한 교황의 사과와 종교간 화해를 위한 행동들은 국제사회의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화합을 도모하자는 교황의 의지는 종교를 떠나 환영과 찬사를 받아 마땅합니다. 교황의 이번 순례를 지켜보며 문득 한국 가톨릭의 한 단면을 떠올려 봅니다.

수원 대교구가 주축이 되어 추진되고 있는 경기도 광주군의 천진암 성당 건립공사 말이지요. 불교사찰이었던 천진암은 조선 말 가톨릭이 박해를 받을 당시, 그 신자들을 숨겨주었다가 발각돼 스님들이 죽고 불태워진 사찰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후 한 노 비구니 스님이 절터에 작은 절을 짓고 살았지만 그곳을 한국천주교의 발상지라고 주장하는 가톨릭 일각에 의해 밀려나고, 지금은 매머드급 성당이 100년 공사 운운하며 한창 지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서학을 공부하거나 신봉했던 이들에게 강학회, 그러니까 세미나 장소를 대여해주었던 천진암이 어느 날 천주교 발상지로 둔갑되고, 절을 쫓아내듯 밀어낸 후 성당이 세워지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황의 거룩한 순례와 오늘의 천진암 현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불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교황의 뜻을 따른다면 오히려 가톨릭이 절을 복원하여 불교계에 기증하는 것이 순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양식있는 가톨릭 신자들의 성찰을 촉구합니다.


이학종 기자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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