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김 사건’과 국정원
‘수지김 사건’과 국정원
  • 연기영 주필
  • 승인 2004.08.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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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가정보원의 인권유린 사건들이 밝혀지고 있어 권력기관에 대한 국민의 불신감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 11월 26일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에서는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는 ‘진승현 사건’ 등 “3대 게이트”에 국정원의 고위 간부들이 연루된 문제가 논의되었다. 또한 14년 전에 발생한 ‘수지김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한 국정원의 책임추궁이 있었다. 검찰에서도 당시의 대공수사국장 등 국정원 직원 4명에 대한 소환 조사를 하고 있다. 지난해 2월 경찰청이 ‘수지김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하려고 했을 때 이들이 수사 중단 압력을 넣었는지 여부 등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안전을 책임진다고 하는 국정원이 부정과 비리의 온상처럼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충격적인 사실은 수지김 피살 사건이 북한이 개입한 ‘대공사건’이 아니라 그녀의 남편 윤태식에 의한 단순 살인사건이라는 것을 인지한 경찰청이 지난 해 2월 본격적인 재수사에 착수하려고 했을 때 국정원 수사국장 등이 수사를 중단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노벨평화상까지 받게 된 김대중 정권 하에서 연출되었다는 점이다.

수지김(본명 김옥분, 당시 35살)은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서민의 딸이었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그녀는 서울시내 버스 안내양을 하다가 홍콩으로 건너가 호스티스 생활을 하던 중 상사원으로 나와있던 윤태식(당시 28살)과 결혼하게 되었지만 결혼 석달 만에 ‘북한 공작원’의 누명까지 뒤집어 쓰고 살해 되었다.

그녀가 남편의 손에 의해 피살된 1987년 1월은 권위주의적 군사정권 시기였다. 당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던 시기에 발생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이어 전두환의 ‘4·13 호헌 선언’ 직후 발생한 ‘이한열 치사사건’은 전국민적 저항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수지김은 전두환 정권이 처한 최악의 위기상황에서 ‘북한 공작원’으로 조작되었던 것이다. 당시 일반 국민들도 당국의 발표대로 북한이 연루된 ‘해외 상사원 납치 공작 사건’인 것으로 인식하고 지나갔다.

그런 엄청난 사건이 결국 ‘조작된 대공사건’이었고, 아내를 살해한 파렴치한 범죄인이 막강한 권력기관의 보호 관리를 받아 왔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국가권력이 개입한 조작된 대공사건은 가난하지만 화목했던 한 가정을 파탄시키고 말았다. 수지김이 북한 간첩으로 발표되면서 큰언니는 정신이상을 일으켜 거리를 헤매다가 쓰러져 숨졌고, 오빠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택시 운전을 하면서 어렵게 살다가 술중독자가 된 후 교통사고를 당했다.

14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수지김은 북한 공작원이 아니다”라는 진실이 밝혀졌지만 파탄된 한 가정이 원상회복 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세월이 흘렀다. 국가권력이 동원된 반인륜적 범죄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전두환 정권 말기에 수지김 피살 사건을 ‘대공사건’으로 둔갑시켜 5공화국이 직면했던 정치적 위기상황에 대한 ‘국면전환용’으로 삼은 것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반인륜적 범죄’로 처단되어야 마땅하다.

수지김의 가족들이 무지하고 힘없다는 이유때문에 겪은 인간존엄성의 파괴에 대해서는 결코 적당히 넘어 갈 수 없다. ‘수지김 사건’을 ‘정치적 대공사건’으로 조작하는데 참여한 ‘87년 당시의 안기부 간부는 물론 ‘국민의 정부’ 하에서도 그에 대한 재수사를 방해할 정도로 시대착오적이고 오만한 국정원 직원이 실제로 있었다면 엄중히 처단해야 한다.

경찰청 역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수지김 사건의 재수사 중단이 국정원의 압력에 의한 것이었다고 해도 이처럼 명백한 불법적 요구를 받아들인 행위가 오히려 더 나쁠 수 있다. 경찰청이 국정원의 직속 하부기관이 아닌 마당에 직무유기에 대한 법적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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