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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권보다 생명이 먼저다

기자명 성낙주
부처님의 가르침은 오늘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이들한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걸까.
지난 주는 이 땅의 모든 나무와 풀들이 고개를 숙였다. 쭈글쭈글한 주름살과 야윈 손마디를 서로서로 맞잡고 비벼대는 가운데 핏빛 통곡은 온 누리를 살라먹었다. 헌데, 그들의 통곡 뒤켠에서는 전혀 다른 성격의 핏발선 눈길들이 있었다. 이 사회를 단숨에 나락의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는 히포크라테스의 후예들….

그들은 지금 악마의 주술이라는 지역 갈등과 종교간의 반목도 뛰어넘어 무섭게 똘똘 뭉쳐 있다. 가까스로 물꼬가 트인 남북간의 화해조차 한 판 잘 짜여진 정치적 쇼로 간주하는 글귀를 인터넷상에서 발견하고는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그들을 무조건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의 바지자락을 붙잡고 진심으로 호소하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의사는 사회적 강자이다.
국가를 상대로 싸울 수 있을 만큼 그들의 힘은 세다. 반면, 환자는 아무런 항거능력이 없는 약자이다. 강자가 약자를 보호하는 것, 그것은 문명사회에서의 최소한의 합의이자 절대적인 윤리이다. 공공선(公共善)은 그렇게 완성된다. 그럼에도 작금의 상황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절에 가면 많은 부처님을 뵐 수 있다. 그 분들은 빈 손으로 추상적인 수인(手印)을 짓고 있어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약사불(藥師佛)만은 약합이나 약병을 왼손에 들고 있어 금방 눈에 띈다.
약사불이 구체적인 실물로서의 지물(持物)을 들고 있는 까닭은 육신의 병이 그만큼 절박하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질병은 관념 차원의 번뇌와는 다른, 가련한 육신의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약사불의 십이대원(十二大願)은 병자들을 고통 속에서 건져내는 일을 유일무이한 목표로 삼는다.

그런 점에서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비유컨대, 의사 하나 하나는 이 땅에 온 약사불이다. 정말 그들 중에도 불자(佛子)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의사로서는 아니더라도, 부처님 전에 연비를 한 불자로서 환자 곁을 지키는 일이 그토록 힘들었을까.

잘 아는 바대로 불성(佛性)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이 세상의 모든 유정무정이 부처님처럼 존귀하다는 뜻이다. 이 땅의 모든 중생이 부처님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환자를 버리는 것은 부처님을 버리는 일과 같다. 무수한 부처님들이 지금 이 순간 병원 앞에서 신음 속에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의료계가 오직 경제적 박탈을 우려해서 싸운다고는 보지 않는다. 분명 경청해야 할 대목이 그들 주장 속에 있고, 정부의 무정견도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설사 그렇더라도 스스로의 존재 이유인 환자를 버리는 일은 결코 넘어서서는 안 될 마지막 선을 넘어선 행위이다. 국민과 환자의 신뢰를 잃은 다음,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의료체계가 개선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무엇보다 그 동안 죽어간 사람은 살려낼 수 없지 않은가.

영원한 스승 붓다의 이야기로 마무리하자. 마가다국의 왕사성에 머물다가 열반길을 떠나기 직전, 붓다는 주변에 머물고 있는 제자들을 죽림정사로 모이도록 했다. 마지막 말씀을 전하는 자리였는데, 수행자로서 지켜야 할 덕목들을 세세하게 당부하기 시작했다. 그때 말미에 붓다가 던진 가르침이 새삼스럽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를 사랑하라. 태어나서 죽는 모든 목숨을 내 몸처럼 가엾게 여겨라. 태어나서 죽어야 하는 우리 인간을 서럽게 여겨라.”


성낙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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