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루어진 김대중 대통령의 북한 방문은 50 여 년 간이나 갈라졌던 남과 북을 하나로 연결하려는 민족의 염원에 물꼬를 텄다. 그 물꼬는 금년 광복절을 계기로 해서 이산 가족의 상봉으로 이어졌다. 또 다른 물꼬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터질지는 예측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바라던 바이고 경하해야 할 일이다.
이야말로 우리민족의 운이며 좋은 기회이다. 따라서 이에 걸맞은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까? 이에 대한 해답은 분단된 50 년 간의 역사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북은 북 대로 남은 남대로 말이다. 북쪽의 사정은 우리가 잘 몰라서 잠시 보류한다 치더라도 남한에서 북한 바라보는 시각과 대 국민 교육이 어떠했는가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남한의 각 정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북한 정치체재와 그것을 관장하는 지도자들은 극악무도한 것이라고 남한에서는 가르쳐왔다.
이러한 교육의 역사를 망각하고 통일이라는 이상만을 내세울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많은 혼란이 생길 수 있다. 헤어졌던 가족이 만나는 것은 천 번이고 만 번이고 환영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이 환영의 저변에는 50 년 간의 분단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남한에 사는 사람들이 북한에 대하여 50년 동안 경험하고 교육받은 역사가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에 관계된 구체적인 법률이나 상식이 엄연하게 현존한다.
북한을 이적 단체로 보는 갖가지 법령이 엄연하게 살아있고 ‘빨갱이’를 경계하는 것이 세간의 이목이다. 북한에도 이에 준하는 그런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남과 북의 정상이 서로 만났다는 것도 현실이고, 50년 동안 서로를 적으로 삼아온 것도 현실이다. 이런 두 현실의 틈 새에서 우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가?
그 해답의 실마리를 우리는 먼저 조선의 멸망과 일제의 식민통치를 비롯한 해방 전후사의 인식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세계사의 변화 속에서 남북한의 분단과 그 이후의 변화를 총체적인 안목으로 조감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데에 우선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고 상황론을 들어 모두를 용서할 수는 없다. 거기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 원칙 중에서도 근본적인 것의 하나로 인권탄압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이 인권인가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와 가치관 속에서 논의를 통해서 열린 자세로 결정할 일이지만, 반 인권적인 일은 통일 이전에나 통일 이후를 막론하고 반드시 되물어져야 할 것이다. 해방 후에 남겨진 반 민족자 처단에 대한 아쉬움이 조금이라고 있었다고 반성한다면, 통일을 빌미로 반 인권이 용납되는 역사의 오점을 남겨서는 안 될 것이다.
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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