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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지수’는 왜 없지?

기자명 송미숙
극장 앞에서 서성이며 관객을 기다리다보면 별별 생각이 다 든다.
2000년이 되면서 연극 밥 먹은 지 20년이나 되었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 놓았건만, 관객을 기다리고 있는 초조한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나에게 울렁증이 생기게 만든다. 아무리 표정관리를 잘하려고 하여도 객석이 꽈악 찬 날은 괜히 짜증을 내며 후배들을 다그치게 되고 말이다. 그건 아마 내가 연극계에 남아 있는 한 여지없이 나타나게 될 현상이 아닐까, 한숨을 쉰다.

오는 관객을 기다리다가 뒤적이던 신문에서 날씨지수, 나들이지수, 빨래지수 이런 것들을 보게 되었다. 여름이라 날씨가 너무 좋으면 관객들이 들로 산으로 나가느라 극장을 안 찾게 되고 또 비도 적당히 와야지 폭우가 쏟아지거나 하면 아예 외출을 삼가 버리니, 이래저래 날씨지수나 나들이지수도 우리 연극인들에게는 중요한 정보 중의 하나일 수 있게 된다. 그러다가 지나가는 말로 “왜 ‘연극지수’는 없는 거지?”

옆에서 같이 관객을 기다리던 조연출이 생경한 표정을 짓고 나를 마라보고 있었다. “오늘은 연극이나 영화 보러가기 좋은날. 하면서 연극지수를 90정도 해놓으면 극장이 미어 터질 거 아니니. 연극인들은 그런 날은 긴장하고 관객을 기다리게 되고 말야. 왜 그런 ‘연극지수’는 안 만들어 놓느냐는 말이야. 호호”
거기에 나는 한 술 더 떠서 그런 제안도 슬쩍 건네 보았다. 금 모으기 운동처럼 ‘연극보기 운동’을 좀 벌여주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경제 IMF가 지나가고나니 이제는 문화 IMF가 온 현상에 대해서 국민들이 얼마나 실감하고 있는 지 알려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매스컴에서 일제히 문화부재 현상의 심각성을 연일 대문자로 보도하면서 전국민에게 한 주일에 한번씩 ‘연극보기 운동’을 부추겨보는 거다. 그러면 냄비 근성(?)이 있는 국민이라니 모두가 다 대학로로 쏟아져 나올 것이 아니겠느냐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신문에 ‘연극지수’라는 것도 생겨나야 할 판이구 말이다. 오늘은 연극 보러가기 적당한 날, 아니면 그저 그런 날, 이런 식으로 말이다. 오늘도 나는 관객들을 다 들여보내고 나서 뒤에 앉아 차분히 연극을 보았다.

텔레비젼이나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생생하고 아름다운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배우들의 호흡과 살 냄새와 땀 냄새가 열기를 뿜어내는 극장의 현장성이 너누나 가슴 깊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매 공연이 다 생중계이며 그 일회성이 갖는 매력도 만만치가 않은 것이다.
연극무대라는 것이 얼마나 솔직하고 정직한지, 배우의 연기도 중요하지만 그 배우의 인간적 매력을 보러 극장에 온다는 말도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열정을 뿜어내는 배우를 보면서 그 열정을 얻어간다고 해야할까. 혼신의 힘을 다해서 연기에 몰두하는 배우를 보고 있는 순간엔 참으로 그네들이 사랑스러워짐에야!

스님이 등장하는 희곡을 쓰다가 그런 대사를 쓴 적이 있다.
“인연과 업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 두려워지는 법입니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은 모두 연에 의해서 만나고 헤어지는 거니까요. 모든 인연으로 말미암아 우주 만물이 생성되고 소멸됩니다. … 그것을 털어 버리려 하지 말고 붙드십시오. 꼭 붙들어 간직하십시오. 고통을 피하려하지 말고 단 한순간이라도, 아끼면서 붙드셔야 합니다.”
왜 연극 얘기를 하다말고 문득 그 대사가 떠 올려졌는지 모를 일이다.

연극을 20년이나 해왔고 또 앞으로도 그 늪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거라면 연극과 나는 인연이며 업의 관계가 아닐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꼭 붙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빠져 달아나지 않도록 말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오늘도 울렁증을 겪으며 극장 앞을 서성이고 있다. 연극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어서일 것이다.
‘연극지수’.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말이다.


송미숙/연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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