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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태양의 꼬리 잡고 제국의 영화는 스러진다

기자명 이학종

⑨ 프놈 바켕(Phnom Bakheng)

오후 4시 무렵부터 슬슬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다섯 시 무렵이면 대형 버스, 택시, 오토바이 등으로 장사진을 이룬다. 주차할 곳을 찾느라 어수선하다. 유적지의 여러 곳을 다녀보았지만 단시간에 가장 붐비는 데가 프놈 바켕이다. 주차장 어귀에 어슬렁거리는 여러 마리의 코끼리들도 바빠진다. 프놈 바켕은 일몰이 장관이라 모두들 그것을 보러 시간 맞춰 몰려든다.

평지 사원이 대부분인 앙코르에 프놈 바켕은 산 위에 사원이 있다. 산이라고 부르기에는 낯간지럽지만, 평평한 평지 밀림 뿐인 곳이니 지상 67미터에 불과한 언덕을 산이라 부르고 싶다. 그곳에 오르면 앙코르 유적군 일대를 사방으로 조망할 수 있다. 하기야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고 노래한 그 태산도 해발 1532미터에 불과하다. 백두산 높이의(2744m) 절반 약간 웃도는 정도이고 한라산(1950m)보다도 낮은 것이 태산이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깡마르고 왜소한 캄보디아 서민들 틈에서는 내 몸집도 제법 비대한 편이라 혼자 비시시 웃었다. 먼지투성이 평지만을 쏘다니다가 프놈 바켕에 오르는 입구에서 언덕을 쳐다보니 상당히 높게만 보인다.



67m 언덕 위에도 사원이 ‘우뚝’



계단인지 바위 투성이인지 구별이 안 되는 언덕길에 사람들이 빽빽하다. 사람이 붐비면 저마다 괜히 바빠진다. 지금 기회를 놓치면 영영 놓칠세라, 충동구매에 들뜬 인파 같다. 천천히 사원을 둘러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늦은 오후 시간이다. 이곳의 일몰이 멋지다는 사전 정보를 지니고 헉헉거리며 언덕을 오른다. 지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태양이 뭐 그리 대수이겠는가만 스스로 장엄함을 가슴에 담고 싶은 서원이 있을 것이다.

색다른 체험을 해보고 싶으면 언덕 아래 대기 중인 코끼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도 괜찮다. 코끼리 등에 오르는 값이 약간 비싸다는 생각도 들지만 비단 파라솔 아래 황제처럼 천천히 언덕을 오르는 기분도 괜찮을 것 같다. 언덕 옆면으로 완만한 경사의 길이 있다. 사원을 축조할 당시 돌덩이를 날랐던 길인 것 같다.

평평한 언덕 위에 사원이 우뚝하다. 기단부가 가로, 세로가 각각 76미터, 높이가 13미터이니 만만찮은 규모이다. 기단부의 4면에는 경사 70도의 가파른 계단이 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올라가야 한다. 아예 네발로 기는 것이 안전하다. 앙코르 유적들은 인간 중심의 구조물이 아님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중앙탑을 중심으로 저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서쪽을 바라본다. 낙조를 감상하기에 좋은 자리를 잡아 담소를 나누고 사색에 잠긴다. 불어, 영어 못지 않게 한국말도 부산하게 들려온다. 반갑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지상 67미터의 위력이 대단하다. 멀잖은 시야에 앙코르 왓의 다섯 개 탑이 부옇게 신기루처럼 보인다. 서쪽 아득한 곳에 광활한 인공호수 서바라이(West Baray)가 오아시스처럼 보인다. 그 위에 태양이 황금 쟁반처럼 떠 있다. 느린 속도로 지평선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육중한 장비를 갖춘, 전문 사진작가로 보이는 이들은 일찌감치 명당에 자리를 잡고 노출을 조절하느라 여념이 없다. 나 같은 아마추어는 그들 옆에 슬쩍 비집고 들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사진 찍기 좋은 자리, 그럴듯한 풍경이 나오는 자리는 프로들이 잘 안다. 좋은 자리를 찾는 것보다 프로들이 어디에 자리를 잡았는가를 찾는 것이 빠르다. 틈새시장 공략인가, 유치한 기생 활동인가?

일몰이 절정으로 향해가자 주위가 조용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제국의 영화를 생각하고 그 제국의 몰락을 생각하고 그리고 각자 살아온 날들, 살아갈 날들을 사색하는 것이리라.

참 멀리까지 온 사람들이다. 특히 프랑스 사람들은 지구의 반 바퀴를 날아왔다. 그들의 조상 앙리 무오가 발견하고 힘센 그들의 조상들이 식민지로 삼았던 이곳에서 무슨 상념에 잠길까. 막대한 경제지원을 하는 일본, 덕분에 죽은 앙코르가 하나둘 생명을 찾아 벌떡벌떡 일어서는 것을 보고 일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황색인인 나는 천년 동안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는 탑 사이로 지는 장엄한 열대의 석양을 보며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몰려든 인파는 인종시장 방불케



17시55분. 일몰이 완료되자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함성을 지른다. 장엄함에 대한 감사와 경탄이다. 단체인 듯한 한 무리의 서양인들이 낮은 목소리로 그들의 노래를 부른다. 감격을 발산하는 모양이다. 그 꼴을 보고 격정을 억누르지 못한 한국인 중 누군가가 애국가를 선창할까 괜히 가슴이 두근거린다. 다행히 애국가도, 아리랑도 나오지 않는다.

하산길은 서두르는 것이 좋다. 캄캄해지면 가파른 계단과 언덕길이 만만치 않다. 한꺼번에 사람들이 몰려 내려오니 주차장은 파시처럼 부산하다. 역사에 대한 사색은 나중에 다시 되새김질하기로 하고 빨리 숙소로 타고 갈 차를 찾아야 한다. 저 멀리 어둑어둑한 나무 곁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운전기사도 나를 찾느라 목을 빼고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글·사진=이우상〈소설가·대진대 문창과 겸임교수〉



프놈 바켕(Phnom Bakheng)은?

9세기 후반 - 10세기 초, 야소바르만 1세가 시바에게 바치는 사원으로 지었다. 앙코르 왓 북쪽 1300미터, 앙코르 톰 남쪽 400미터 지점 언덕에 위치해 있다. 889년 야소바르만 1세가 즉위한 후 자신을 상징하는 사원으로 프놈 바켕 사원을 지었다. 앙코르 유적군 중에 초기작에 해당된다. 세월의 풍화도 심하고 정교함도 떨어진다. 앙코르 유적 중 상층부에 5개의 신전을 지은 것으로는 이곳이 최초이다. 이러한 설계는 이후 다른 건축물에 많이 적용되었다. 기단, 중간 5개 층, 최상에 5개의 탑이 배치된 정사각형-만다라의 구도이다.

이학종 부장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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