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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태의연한 승려교육 “바꿔”

기자명 정병조
지난 1년간 연구년을 보내고, 3월에 다시 강단에 섰다. 모처럼 대하는 푸른 젊음이 싱그러웠고, 왁자지껄한 소음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강의환경이 몰라보게 달라져서 조금 당혹스러웠다. 나처럼 백묵들고 강의실로 향하는 교수보다는 노트북 들고 가는 선생들이 더 많아졌다. 강의도, 과제물도, 모두 컴퓨터로 처리한다. 마주친 동료 교수에게 나는 자조적으로 말했다. “이제 우리 같은 구세대는 빨리 물러나야겠다.” 텔레비전이고, 신문이고 온통 인터넷 이야기뿐이다. 지금까지의 사고패턴이나 생활양식은 완전히 바뀔 수밖에 없다. 변화의 시대 속에서 홀로 옛 영광의 그림자를 되씹는 듯한 씁쓸한 감회가 엄습해 온다.

불교도 서서히 변해간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불과 20여 년 전에 어느 사찰에서 염불테이프 틀어놓는 것을 보고 몹시 못마땅하게 여긴 적이 있다. 정말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지 않는가. 그러나 아직 우리 교계에는 이 변화에 무신경한 이들이 많다. 신문에 나는 교수모집 공고는 여전히 구태의연하다.

유식(唯識)이니, 중관(中觀), 천태(天台) 등의 표현은 우리 끼리만의 암호이다. 더구나 한글로 표기했을 때는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유식인지 무식인지 알 길이 없지 않은가. 불교심리학(唯識), 불교철학(般若, 如來藏), 불교윤리학(戒律, 菩薩戒)등으로 표기하면 훨씬 친근하고 광범위해지지 않는가. 이미 일본의 몇몇 불교대학들에서는 ‘불교’라는 용어를 과감히 버렸다. 불교는 부디즘(Buddhisim) 즉 붓다(Buddha)에 의한 주의, 주장이라는 뜻이다. 크라이스트(Christ)가 내건 주장(Christianity)라는 생각을 그대로 옮겼기 때문에 서양적 가치관이라는 것이다.

불교는 인간을 문제 삼았지 신을 들먹이지 않았다. 따라서 인간학(Anthropology)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미국의 대학에서는 이미 불교생태학(Buddhist Ecology), 불교와 생명과학 등의 과목을 개설하고 있다. 요컨대 현대의 제문제를 불교적 시각에서 정리하고 풀어 보겠다는 의도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나라의 불교는 이제 현대적 언어로 포장할 필요가 있다. 사이버 불교대학, 사이버 법당 등을 운영해야 하고, 고려대장경 전산화는 물론, 한국불교전서 등의 우리말 번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왜냐하면 현실감각을 상실한 종교는 이미 그 존재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인터넷의 도래를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인류의 발자취를 볼 때 이 도도한 물결을 멈출 방도는 없어 보인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스님들의 교육과정 개편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조선 중기 이후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는 현행의 강원(승가대학) 교육과정은 과감히 수정해야 한다. 또 선원의 운영형태도 바꿔야 한다. 전통 위에 ‘현대’를 얹는 노력이 있어야만 불교는 시대정신을 이끌어 갈 수 있다. 아울러 영어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오죽해야 일본국회에서 영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하자는 주장이 나왔겠는가. 영어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여전히 외전(外典)이니 내전이니 하는 훈고학적 사고를 갖고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요즘 우리가 겪는 변화는 신속하고 격렬하다는 특징이 있다. 산업사회로 전이하는데 인류는 이 백년 이상을 허비하였다. 그러나 작금의 정보화시대는 이십 년 안에 모든 것을 송두리채 바꿔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의식구조는 변해야 한다. 내가 변해야 세상이 바뀐다. 변화를 두려워 할 때 이미 우리는 태고적의 전생으로 회귀하는 시대착오를 겪기 때문이다.


정병조 한국불교연구원 원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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