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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개혁행’ 기차를 타자

기자명 원용진
점입가경이라는 말은 이번 총선을 두고 써먹으라고 선인들이 만들어 놓았던 것 같다. 선거철이 깊어갈수록 정치계는 가관을 연출하고 있다. 나라의 기둥을 흔들며 쿠테타를 일으켰던 이들은 보수를 자칭하며 ‘보수는 살아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는다. 진보정치를 입에 달고 다니던 이들 몇몇은 지역감정을 볼모로 하는 패거리에 몸을 싣고도 여전히 진보와 민주를 특허받은 양 꿰고 다닌다. 개발독재의 망령을 ‘정치적 아버지’로 섬긴다며 대선에도 나섰던 이가 이번에는 구 시대의 청산을 외치고 있다. 386의 신선함을 보이겠다며 의기양양하던 ‘젊은 피’들은 기성 정치인 찜쪄먹을 만한 작태를 천연덕스럽게 벌리고 있다. 정치 이념이나 철학을 거론하는 일이 부끄러울 정도다.

이합집산, 훼절, 말바꾸기가 신조처럼 되어버린 정치문화를 참다 못해 시민들이 정치정화를 외치며 나섰다. 낙천, 낙선 운동이라는 그야말로 역사적 거사를 행했다. 하지만 정치계는 그 거사마저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에 활용하는 약삭빠름을 보여주었다. ‘홍위병’들에게 당하고 있다며 지역주민들에게 다가가 지역감정에 솔솔 불을 지피는 무리들, 시민들의 요구에 응답하는 척 하며 ‘미운 놈 떨어뜨리기’에 활용하는 이들. 시민운동을 자신들이 벌이는 정치적 흥정 정도로 치부하며 ‘일고의 가치’도 없는 불법이라며 되려 나무라는 낯 두터운 이들.

이들을 믿고 이 땅에 삶을 살아왔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울 따름이다. 막막함과 부끄러움에 이르러서는 이젠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운동이 벌어져야 할 것 같다는 절박감마저 든다. 정치적 승리 외엔 그 어떤 것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저 천박하고 안하무인적 정치 문화 형성에는 여러 요소들이 기여해 왔다. 하지만 그 주요 요인으로 언론과 정치의 유착을 꼽는데는 누구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언론은 정치계에 여론을 전달하고 정치적 판정을 내리는 일을 도외시해왔다. 대신 스스로 정치권력인양 정치를 더 옹호해왔다. 반민주적이고 심지어는 반공동체적 정치행태인 지역감정 조장 등에 대해서도 정치적 행위라며 너그럽게 껴안았다. 

‘초록동색’을 가훈으로 하는 형제인 양 언론은 정치를 감싸 안았다. 정치를 보호하는 전사로 자칭하며 지금의 한탄스러운 정치문화를 키워온 것이다. 정치도 언론에 편승해왔다. 언론을 진실의 담지자로 추켜 세워주며 인용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다. 입으로는 언론이 정치개혁을, 정치인이 언론개혁을 외쳐왔지만 이미 선점하고 있는 기득권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을 공동으로 경주하며 같은 배 운명을 공감해왔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여하한 힘이라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를 구축한 채 시민들을 정치적 객체로 몰아내는데 공동의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이번 총선 과정을 거치면서 정치와 언론은 한 치도 다름없는 개혁의 대상임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언론과 정치가 서로를 인용하면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챙기는 꼴을 목도한 시민이라면 시급한 시민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깨달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낙천, 낙선 운동을 통한 정치개혁도 언론개혁이라는 과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성공으로 이러질 수 없음을 실감했으리라 생각된다. 그 둘은 따로 이루어져야 할 사안이 아니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어렵지만 시급한 과제임을 분명히 인식했을 것이다.

개혁의 대상이 개혁이라는 사안을 올바로 전달하고 개혁으로 향한 민의를 제대로 담을 수 없음은 너무도 당연함을 알면서 언론개혁을 외면할 수는 없다. 낙선, 낙천 운동이라는 초유의 시민혁명적 거사를 행했던 에너지를 다시 모아 언론으로 향하는 일만 남았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정치개혁은 해마다 누구나 써먹은 공허한 슬로건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원용진/동국대 신방과 교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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