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급적 수행의 본분에 충실하길
성격이 나쁜 탓에 지나치게 자주, 거침없이 말을 하는 편이다. 정직하지는 않지만 솔직하다고 해야 할까. 종종 상대방을 당혹케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고 있다. 업장이 두텁기 때문이겠지, 죽기 전에는 고칠라나 하면서 그냥 저냥 살고 있다. 얼마 전 10년 넘게 지켜보고 있는 한 스님에게 안부전화를 넣었다가 예의 그 못된 버릇이 또 발동했다. 스님은, 스님이 몸 담고 있는 지역사회에 대안학교를 세우고 싶다고 했다. 스님의 그 호연스런 말이 마침표를 찍기도 전에 내 입에서 왜 그 일을 스님이 해야하는데요, 그건 다른 머리 기른 사람들이 해도 되니 스님은 그냥 수행이나 하시지요라는 주제가 넘어도 한참이나 넘은 훈수가 불쑥 튀어 나왔다. 엎질러진 물이었다. 나름대로 수행자의 위의를 지키며 살고 있는 반듯한 스님에게 할 소리가 아니었지만, 사실 그것은 본심이었다.
그렇다. 나는 스님의 '사회 활동'을 매우 경계하는 편이다. 그것은 아마도 많은 스님들의 삶을 들여다 본 끝에 내린 결론일지도 모른다. 우리 한국불교가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고 해도 수많은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타종교에 비해 크게 뒤쳐져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다고 해서 눈 밝은 그러나 아직은 좀 더 긴 수행인의 시기를 보내야 할 스님들이 안타까움에 못 이겨 때 아닌 때에 스스로를 '그 무엇을 위한 도구'로 쓰고자 나서는 것은 말리고 싶다.
'회색승복의 힘'은 확실히 크다. 머리 기른(출가하지 못한) 이가 나서 어떤 사안을 도모 할 때와 승복 입은 스님이 나서 추진하는 것은 확실히 반응부터 성과까지 다른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도 대다수 많은 스님들이 가능한 수행자로만 머물러 있길, 그 자체로도 불자들은 고맙게 여길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럼 포교현장에서 활동하거나 각종 문화 사업을 벌이는 일은 수행이 아니냐는 반론이 있겠지만 이 글에서 말하는 수행이란 전통에 바탕한, 보수적 의미를 지닌 수행을 말하는 것이다.
대중을 상대로 한 활동이나 사회인과 함께 하는 여러 활동들은 십중팔구 회복 할 수 없는 상처만 남기기 일쑤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많은 어려움과 한계를 의욕과 기개만 갖고 돌파하기란 쉽지 않다. 저 광덕 큰스님이 대중불교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 그처럼 눈부신 성과를 일궈낸 것은 큰스님이 이미 어떤 경계를 넘은 후에 대중 앞에 나섰기 때문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누에가 그의 몸에서 비단실을 자아내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대중을 직접 이끌고 교화하는 일 또한 그렇듯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탈이 없다. 그러려면 오랜 수행생활이 바탕된, 어떠한 난관에 부딪쳐도 흔들리지 않을 자기 확신과, 그리고 시절인연의 무르익음이 먼저 충족돼야 한다.
그리고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이제는 재가불자들이 불교를 위해 이 사회를 위해서 지금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스님들이 그런 이들을 마음으로라도 응원하고 때에 따라서는 지원하는 현상이 정착되면 오히려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합리적인 결과를 만들 것이다. 그날의 전화통화에서 당황했을 ??스님이 이 글로 작으나마 위안을 얻고 서운함을 풀지, 아니면 더욱 기분 나빠할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대장부답게 벌써 잊었을런지도.
김민경 부장
mkkim@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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