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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불교-붓다다사의 담마실천2

기자명 박경준

고(苦)의 이해와 극복 보여준 실천수행의 삶

붓다다사는 팔정도, 즉 우리의 정신적인 생활은 이해(正見)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즐겨 강조했다. 그는 풀려야 할 문제가 무엇이 되었든간에 우리의 이해방식이나 사고방식이 변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했다. 그 방식은 우리들을 올바르게 교육하고 훈련하는 것을 의미했다.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그러한 행복을 가능하게 하고 북돋우는 세계관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담마를 학습하고 사고하고 탐구해야만 하며, 사회적으로는 사심없이 어린이들을 서로 교육시켜야 한다.

붓다다사는 세계의 평화는 붓다와 불교도의 목적이라고 믿었다. 그렇다면 그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수단은 무엇인가? 비구는 세속적인 권능을 포기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을 하거나 믿게끔 강요할 수는 없다. 그 대신 그들은 스스로 사람들의 모범이 되거나 가르침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특히 사람들이 스스로 진리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평화를 추진하면서 붓다다사는 `담마선언'을 통해 붓다담마의 의미와 그것이 현대사회와가진 연관성을 간별하여 명백히 하였다. 그는 이것이 가장 긴요한 문제로 보고 관심있게 다루었다. 그러므로 그의 활동은 사상, 의미, 가치, 전망의 영역 속에서 모든 다양한 매개수단, 즉 강연, 저작, 잡지, 시, 시청각자료, 수안 모크와 그 시설들을 사용했다. 그는 직접적인 정치적활동이나 불교 단체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수안 모크 내부에서도 조직이라는 덫을 피했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담마에 따라 행동하고 그것을 이해하고자 할 때 의미와해석방식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인간으로서의 삶을 통해 우리는 의미들을모으고 만들고 재생산한다.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얼마나 그렇게 하였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에서 평화와 행복과 자유의 정도가 결정된다. 붓다다사는 매일 많은 상처를 지닌 사람들과 만나고 신문이나 라디오를 통해 그들에대해 읽거나 듣는다. 그는 그들의 삶과 그들이 이해하는 삶에서 무언가 빠져있거나 바르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들은 삶을 해석할 수단이 없었고, 고(苦)로부터 그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의미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이것이 붓다다사가 디티(ditthi, 이해, 관점, 見)에 초점을 맞춘 이유이다.

고와 그 소멸올바른 이해는 고를 경험하고 인식하며 그것을 이해하는 것에서시작된다. 붓다는 자신의 가르침의 목적과 범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힌다."비구들이여, 과거에 그랬듯이 지금도 나는 고(苦)와 고의 소멸에 대해서만 가르친다.

붓다다사는 비구는 이 말을 항상 이야기했으며, 그것을 그 자신의 삶과 활동으로 적절하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자신을 `붓다의 사도'라고 부르는 사람이라면 충실하게 붓다가 해온 일이나 그 목적을 수행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고와 그 소멸은 불교의 근본교리인 사성제에 나타나 있다. 사성제는 붓다의 가르침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벗어나면 붓다다사의말은 한마디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특히 정치나 경제를 논하는 이유가바로 그것이 개인적 고통과 사회적 갈등의 원천이라는 사실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그의 사회적 발언을 살펴보려면 반드시 이런 맥락이 필요하다.

`고'란 단순히 괴로움이 아니라, 긴장, 알력, 추악함, 불만족, 무의미함, 결함을 포함한다. 붓다에 의하면 "인간의 구성요소인 오온(五蘊)이 고의 본질"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것을 고통이나 비참, 불만족으로 해석하든어떻든 고는 우리를 욕망이 가득찬 삶으로 만들며, 그것은 붓다가 반복적으로 지적하였듯이 우리에게 무명과 탐욕과 집착과 욕망을 일으키게 한다. 바로 여기에 붓다다사 비구가 비판하는 사회적 문제가 존재한다.

붓다다사는 고의 궁극적인 소멸은 모든 아욕과 집착을 `벗어 던짐'으로써 가능하다고 강조해서 이야기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의식을 포함하여 만유에대해 `나' 또는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나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거기에는 더 이상 고나 생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적 평온도 또한 아욕과이기주의를 벗어 던지는 데 달려 있다. 이러한 생각은 붓다다사 비구의 사회적 가르침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다.

붓다가 발견한 진리를 이해했기 때문에 붓다다사 비구는 그와 똑같은 과정과목적을 추구했다. 즉 그에게 중요한 것은 고와 고로부터의 해탈이었다. 붓다다사 비구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불교인이라는 사실인데 그것이 고를 소멸시키기 때문이다. 누군가 중요한 것은 `선(善)'인가 아니면 `올바름(正)'인가라고 물으면, 붓다다사는 다음과 같이 반문한다. "그것이 고를 멸할 수 있는것인가?"고는 모든 사고와 경험에 실존적인 시금석이다. 그곳에 고가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무언가 아직 올바르지(samma) 못한 것이다. 만일 고를 찾을수 없다면, 적어도 한동안은 올바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정신성은 믿음이나이론, 개념보다 오히려 현실의 경험에 기초해 있다. 더욱이 그것은 개념화할필요가 없기 때문에 고와 고의 소멸은 `선과 악'같은 이분법적 혼란을 없애는 기준이다.

고없는 삶이 참된 삶이라고 했을 때, 그렇다면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발견해야만 한다. 붓다다사는 자신의 가르침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 붓다의말씀을 인용하여 이러한 삶의 방식의 요체를 지적하고 있다. "모든 것을(`나' 또는 `나의 것'으로) 집착해서는 안된다." 이 우주에 `나' 또는 `나의 것'으로 간주할 만한 생각, 믿음, 경험, 소유, 하늘, 신, 진리는 아무것도 없다. 여기서 우리는 첫번째 특징은 물론 나머지 것들과도 분리되지 않는, 붓다다사 비구의 가르침의 두번째 중심적인 원리를 볼 수 있다. 고란 집착(upadana)으로써만 이해될 수 있으며 붓다다사 비구는 모든 집착은 우리를 번뇌케 하여 모든 것을 `나' 또는 `나의 것'으로 간주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고의 소멸은 집착이 소멸했을때 생겨난다. 그러므로 그 길은 고를 떠나 보내는 무집착뿐이다. 고통받지 않으려면 스스로 어떤 것에 집착하지 말라.

무집착이란 단지 사상인가, 이론인가? 붓다다사 비구에게는사상도 이론도 아니다. 만일 우리가 사상이나 이론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우리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거나, 심지어 더욱 번뇌에 빠지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무집착이라는 것은 사물의 존재 방식(이법)의 당연한 결과라는 사실을 안다면, 그렇다면 거기에는 단순한 사상 이상의 더 많은 것들이 존재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무아(anatta) 혹은 공(sunnata)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어째서 사물에 `나' 또는 `나의 것'이라고집착하는 것이 고인가? 왜냐하면 `자아'라고 올바르게 간주할 만한 어떤 독립적인 실체, 핵심, 자성은 공하기 때문이다. 환영에 집착하기 때문에 실제거기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허구적으로 마음에 근거하여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통찰력은 만들어진 모든 존재는 무상하고, 고라는 특징을 지니며 원인과 결과에 의존한다는 인식에서 생긴다. 그러므로 우리의 뿌리깊은 집착의 습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에 아(我)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붓다다사에게 공은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무아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에 고유한 특징이라는 것이다. 모든 존재(dhamma)는 `나' 또는 `나의 것'도 아니며 자성으로 간주될 자아나 독립적인 실재가 아닌 공한 것이다.

이러한 특징을 통찰력의 가장 기본적인 관찰이다. 두번째는 `공심(空心, cit-wang)'이다. 무엇이 공한가? 아견(我見, ahamkara)과 아소견(我所見, mamamkara)이 공하고, `나'와 `나의 것'이라는 집착이 공하며, 아(我)도 공하고, 고도 공하다. 이것은 계발할 수 있는 경험이다. 여기서 붓다다사 비구는 평범한 태국말인 `왕(Wang)'을 사용했는데, 이 말은 `의자가 비어있다', `빈시간'과 같은 표현으로 사용된다. 아주 깊은 이해는 이와같이 아주 간단한 말로 표현된다. 그 말이 태국에서 불교도들에게 잘 알려지기 전까지 다른 불교지도자들은 `공'이나 `출이(出離)'라는 말을 사용했다.

붓다다사는 공심(空心)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생긴다고 지적했다. 첫번째 방식은 우연에 의한 것이다. 평범한 생활 속에서 심지어 가장 정신적으로 평범한 사람조차 상황에 따라서 자아라는 관념이 생기지 않는 그러한 일이 생길수 있다. 이것은 얼마쯤 `자신을 잊는 것'인데, 예를 들면 우리가 비상사태가 생겨 반사적으로 행동할 때, 또는 자연의 힘이나 아름다움에 경외심을 느껴 우리 마음이 순간적으로 고요해질 때를 가리킨다. 두번째 방식은 강한 집중(samadhi)을 통해서 자아 관념이나 이기적 감정을 억제하는 것이다. 세번째 방식은 담마 실천을 잘 행하여 충분한 염상(念想)과 지혜가 감각적 경험과 함께할 때이다. 그때 무명은 욕망, 집착, 이기심, 고를 생할 기회를 갖지못한다. 사물의 고유한 공성에 대해 완전히 파악함으로써 아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경향이 제거되면 `최고의 수승한 공성'이 인식된다. 이런방법으로 붓다다사는 모든 사람이 공성에 접근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절대적인 형이상학적 진리가 아니고, 궁극적인 공(열반)으로 인도하는 실천방법이다. 사실 마음은 그 본성이 공하기 때문에 공할 수 있으며, 우리는 마음이 공할 때 그러한 공성을 깨달을 수 있다. 실제로는 그 두가지 의미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붓다다사는 그 점을 지적하기 위해 둘을 자주 바꾸었다. 붓다를 따라 그도 역시 점차적으로 더욱 깊어지는 `열반'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담마는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붓다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본적으로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오히려 담마는 진리, 현실, 법, 또는 가르침이 제시하고 있는 그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붓다다사 비구가 즐겨 우리에게 상기시켰듯이 담마는 자연이다.

모든 것은 자연이다붓다다사에게 모든 것은 담마이다. 그리고 "담마는 자연을 의미하여 그것은 네가지 양상으로 분류될 수 있다. 자연 그 자체(sabhavadharma), 자연법칙(saccadhamma), 자연법칙에 따른 인간의 의무(patipattidhamma), 자연법에 따라 의무를 행함으로써 나타나는 결과(pativedhamma)이다. 이 네가지는 모두 `담마'라는 한 단어로 알려져 있다." 자연이라는 태국말은 담마자티(dhammajati)이고 자연이라는 영어(nature)의 라틴어 어근처럼 자티(Jati)는 `태어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담마자티는 `자연의 순리대로 태어난 것'이고 그것은 모든 것은 `자연들'이고 담마임을 의미한다. 붓다다사에게 이것은 근본적인 언명이다. 담마의 가장 근본적인 의미를 숙고해보면 붓다다사 비구가 이야기하는 또 다른 중요한 `담마 차원'에 도달한다.

즉 모든 것(dhamma)을 지배하는 자연법칙, 모든 담마, 특히 인간에게 자연법이 요구하는 의무, 그리고 옳고 그른 행동에 따른 다연한 결과다.자연은 실제의 총계이고, 거기에 자연이 아닌 것은 없으며, 그것을 어떻게부르든 절대적이거나 궁극적인 실제는 없다. 모든 것은 자연의 법칙에 의해자연으로부터 만들어진다. 자연과 인간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인간과 모든존재들은 곤충이나 나무, 강, 별처럼 자연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붓다다사가이해했듯이 우리는 자연과 대립하거나 또는 그 위에 군림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당연한 역할과 의무(dhamma)를 찾아 수행해야 할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이러한 통찰은 유물론과 현대사회의 소비성같은 개인적 이기주의와 집단적 또는 구조적인 이기주의를 극복하는 데 중요하다.


책임번역 박경준/동국대 불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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