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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더 무엇을 기대하랴

기자명 박순영
지금 벌어지고 있는 테러, 대량 살인범죄, 폭력, 전쟁 등이 어쩌면 바다 건너편의 일이 아니라, 내일 당장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순간순간 우리의 삶은 위기의 연속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이 그렇게도 악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인간의 파괴성에 대한 해부』라는 책을 쓴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이런 인간의 범죄에 대해서 우리는 속수무책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려는 방어적 공격성은 인간이나 동물에게서나 마찬가지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남에게 고통을 주거나 살인하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가진 본성이라고 한다. 프롬은 여러 학술적인 근거를 토대로 하여 인간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과 이성적으로 어울릴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하는 개인적 사회적 이유를 밝혀 내면서 특별히 세 사람의 인류 범죄자 스탈린, 힘믈러(히틀러의 하수인), 히틀러의 소년기의 심리적 상황을 분석하고 있다.

또한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 것이며 어떤 사회 정치적인 조건이 구비되어야 할 것인지를 거론하고 있다. 몇몇 사람이 인류에 대한 범죄를 촉발시키고 거기에 절대명령처럼 추종하는 하수인들의 비인간적인 행위는 인간의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본성이 순화되지 않는 한 인류의 비극은 영원히 지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인간의 악한 본성을 순화시키고 다른 사람의 인격과 인간 존엄에 대한 존중을 최상의 과제로 삼고 있는 종교인들이 이런 공격성과 파괴성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 1096년 십자군 전쟁을 필두로 하여, 인류의 역사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종교전쟁에서 파괴와 살육을 각자가 믿고 있는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는 것이 더욱 믿어지지 않는다. 이번의 미국에 대한 테러가 종교간의 갈등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 시작이 이슬람의 원리주의자들에 의한 종교적인 신념에서 출발하였다.

종교간의 화해가 없다면, 어떤 인류의 평화도 보장될 수 없다는 대전제에서 독일의 가톨릭 신학자 한스 큉은 『세계윤리의 구상』(1990)이라는 책을 썼고 그의 제안으로 1993년 9월 4일에,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종교의회의 대표들이 종교 역사에 있어서는 처음으로 『세계윤리선언』을 채택하였다. 이 『세계윤리선언』은 각 종교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인정한다는 전제에서, 각 종교들이 전승해온 윤리적 내용 중에서 공통적인 것을 뽑아 윤리의 원칙으로 삼았다.

그 선언에는 “우리는 종교가 지구상의 환경적,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종교는 경제적인 계획, 정치적인 프로그램, 법적인 규제가 도달할 수 없는 것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 즉 종교는 내적인 태도, 정신성, 바로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잘 못된 길에서 하나의 새로운 삶의 태도로 움직이게 하는 “전환”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말하면서, 오직 종교만이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갈등을 해소하고 상호적인 불손, 불신, 편견, 적대감을 허물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윤리 선언』에 나타난 황금규칙, 즉 모든 종교에 공통된 윤리규칙이 있다. “네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원칙은 모든 인간적 삶의 영역에서, 가족과 공동체를 위해서, 모든 인종, 국가, 종교를 위해서 흔들리지 않는, 무조건적인 규범이어야 한다고 하면서 비폭력, 일체성, 관용, 평등을 윤리선언의 실천항목으로 내 놓고 있다.

그러나 이번의 미국 테러사태가 발생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종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것 같다. 각 종교의 책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합의한 『세계윤리선언』도 아무 소용없었다. 오히려 폭력은 종교인들에게서, 그것도 순수 종교 원리에 입각한 열광주의자들에 의해서 자행되었다는 것이 아이러니이다. 인류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피난처이고 보루인 종교가 흔들리고 있다면, 마음에 대한 호소가 더 이상 효력이 없다면, 우리가 살아 남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게 아닌 가고 나는 스스로 질문해 본다.



박순영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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