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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

기자명 법보신문

자비 사상으로 승화된 인간화해

일본은 최고라는 수사적 찬사를 보낼 때 천황이라는 칭호를 사용한다. 이들 식으로 표현할 때 만화영화의 천황은 ‘철완 아톰’의 감독 다자이 오사무이며, 영화의 천황은 구로사와 아키라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는 ‘가게무샤’(影武者)를 통해 한국관객에게 첫 선을 보였지만 외면받는 수모를 감수해야했다. 세계 영화계에 일본영화의 충격을 가한 영화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이다. 문학 원작을 영화로 푼 ‘라쇼몽’은 숲 속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산적과 아내와 죽은 무사와 나뭇꾼이라는 서로 다른 렌즈를 통해보는 이야기 구성하여 주목받았다.

이야기는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고하는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비판한다. 하지만 서구에 충격을 주었던 것은 대안적 내러티브보다도 죽은 무사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무녀의 설정이었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숲 속에서 카메라를 유연하게 움직이는 트레킹 쇼트와 사건이 발생한 동일한 공간을 서로 다른 시각에서 잡아낸 공간활용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필자는 ‘라쇼몽’의 화룡점정은 단연 마지막 장면이다고 주장하고싶다. 마지막 장면은 나생문 아래서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사내가 헤어져 돌아가는 단순한 장면이다. 이야기가 끝나 갈 때 아기 울음소리가 나고 아기를 맡아서 기르겠다는 스님의 자비심을 보여줄 뿐이다.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의 특별한 차이를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좋은 영화가 평가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 덕목이 존재함으로써 그 심정적인 찬사에서 벗어나 객관적 인정을 받게된다. 그중 한 덕목은 기억에 남을 만한 명장면이거나 가슴에 각인될 뭉클한 감동을 줄 정신세계를 영상으로 표현해 낼 때 관객은 감동의 포로가 되고 영화는 명화의 반열에 오르며 감독은 위대한 감독의 줄에 서게된다.

영화는 한 장면으로 인해 상투적인 반복으로 지루하게 하거나 영혼의 종을 울리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영혼의 울림은 가장 부도덕한 세계라 할지라도 선과 악, 도덕과 부도덕의 경계를 무화시키는 예술적 설득력과 정신의 새로운 지평 제시를 통해 가능 한 것이다. 위대한 영화, 위대한 예술이 지향하는 것은 길은 다르지만 도달하려는 정점은 거의 동일하다. ‘라쇼몽’에서 새로운 정신의 지평을 열어주는 한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엔딩 크레딧이 오르기 전에 비가 내리다 빗발이 가늘어지면서 이중인화로 시간이 흐름을 보여준다. 날씨는 처마에 떨어지는 물이 성겨지자 흐린 날씨가 디졸브되어 태양이 빛나며 시각적 변화를 보여준다.

태양은 흐린 날씨를 말끔히 씻어내고, 사람들은 서로의 불신과 반목을 해소하고 떠난다. 인간의 불신으로 빚어진 살인과 재판이라는 우울한 상황은 어린 아이를 맡아 기르는 스님의 자비에 의해 일시에 맑게 개인 날씨처럼 쾌청하게 변한다. 어린 아이는 통상적으로 미래와 희망의 상징이다.

‘라쇼몽’은 두 사내가 나생문 아래에서 나누는 살인사건에 얽힌 흔한 이야기에서 마지막 장면으로 인해 그 주제적 깊이를 확보한다. 마지막 장면으로 인해 이야기의 나열은 무리없이 봉합된다. 아울러 숲 속의 치정살인이라는 흔한 영화적 소재거리는 희생과 자비를 통한 인간 화해 지향이라는 메시지를 첨가하여 주제의 깊이와 정신의 울림을 동반한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에서 마른 나무에 물을 주는 아이와 나무를 타고오르는 카메라가 보이지 않게 드러낸 ‘포기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문득 느낄 때 같은 여운이 밀려온다.

좋은 영화는 길은 다르지만 도달하는 곳은 동일하다는 예술의 섭리 앞에 머리가 숙여진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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