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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극의 ‘천녀유혼’

기자명 이종승

영화 개봉 10년만에 어린이 눈높이로 다시 찾아와

지금은 홍콩영화가 전반적으로 바닥세를 벗어나고 있지 못하지만 1980년대만 하더라도 아시아 시장에서 홍콩영화의 성공은 신화 그 자체였다. 특히 이러한 상종가에 끝없는 자양분을 공급하던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서극(徐克)이다. 그는 ‘영웅본색’, ‘천녀유혼’, ‘첩혈쌍웅’, ‘동방불패’, ‘신용문객잔’ 등 전설적인 작품들을 제작하였고, 또한 ‘촉산’, ‘황비홍’ 등을 직접 연출하기도 하였다.

서극의 작품세계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은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때로는 비정한 사나이들의 의리를 담은 홍콩식 느와르로 때로는 신기에 가까운 SFX를 동반한 화려한 무협의 세계로 관객을 끌어당긴다.

이러한 그의 영화 스타일은 홍콩영화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그의 변모는 곧 홍콩영화 전체의 변화와 맞물려 왔다. 특히 개봉관에서는 일주일만에 조기종영 했지만 동시상영관에서 4개월 이상 장기상영한 ‘천녀유혼’은 ‘왕조현 신드롬’과 함께 한국에서 일종의 컬트영화로 숭배되었다. 한국에서의 이러한 전대미문의 신조현상을 서극이 알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영화가 개봉된지 정확히 10년 후 영화 ‘천녀유혼’은 3D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애니메이션 ‘천녀유혼’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이승과 저승을 초월한 사랑이야기라는 점에서 실사영화와 거의 유사하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천녀유혼’은 원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중국 고유의 정서와 종교 그리고 특유의 신비로움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전작과는 명확히 차별된다. 특히 이 작품은 불교의 ‘윤회사상’을 바탕으로 불교적인 사고와 색채, 중국의 대표적 민족종교인 도교(道敎)적 요소 등을 매우 이채로운 이미지로 표현해내고 있다.

‘은행나무 침대’, ‘번지점프를 하다’와 같이 윤회사상과 환생을 소재로 한 대부분의 영화들이 로맨틱한 정서를 끌어내기 위해 전생이라는 모티프를 막연하게 사용한 반면, 애니메이션 ‘천녀유혼’은 구체적인 시각적 이미지로 윤회사상과 환생을 다루고 있다.

아영과 소천이 인간과 귀신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영원한 사랑을 이루고자 몸을 싣는 ‘환생열차’의 이미지와 불상을 배경으로 열리는 ‘환생문’, 그리고 환생하려는 영혼을 때려 전생의 기억을 지우려는 ‘무정(無情)망치’의 이미지는 ‘윤회사상’을 애니메이션으로 재해석한 서극식 연출의 백미이다. 특히 서극은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고 동양과 서양을 초월해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윤회사상을 디즈니애니메이션이나 저패니메이션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중국 고유의 색채와 이미지를 통해 재현해내었다는 점에서 홍콩영화계의 진주라는 이름이 결코 헛된 명성이 아님을 재확인시켜준다.

또한 연적하 도사가 펼치는 각종 도술(道術)과 환생장소로 정해진 복숭아나무가 상징하는 도교적 이미지는 이 작품이 주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이러한 도교적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중국인 특유의 도교적 정서를 느낄 수 있으며, 특히 백운도사와 연적하 도사로 상징되는 불력과 도력의 화해를 윤회사상을 이용해 표현한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에서 놓쳐서는 안될 흥미로운 장면이다.

비록 실사영화와 비교하여 그리 큰 성공은 거두지 못한 작품이지만, 철저하게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서극의 애니메이션은 우리가 잊고 지내는 동양적 정서를 보여줄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임에 분명하다.



이종승 (애니메이션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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