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 ‘프린스 앤 프린세스’(1999)

기자명 이종승

미셀 오슬로 감독 작품 욕망 버리고 보면 극락이 멀지않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전세계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고, 일본 애니메이션이 전세계 브라운관을 확고하게 지배하고 있는 지금, 이들의 엄청난 물량 공세의 위력 앞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프랑스 애니메이션 감독 미셀 오슬로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디즈니와 재패니메이션에 맞서 자신만의 독특한 애니메이션 세계를 구축했는데, 그가 사용하는 방법은 디즈니처럼 정교한 디지털 애니메이션도, 재패니메이션처럼 고유한 일본식 애니메이션도 아니다. 이름하여 실루엣 애니메이션, 즉 그림자 애니메이션이다.

그림자 애니메이션이라? 온갖 현란한 칼라의 축제 속에서 어떻게 흑백, 단 두 색만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또 그것을 흥행으로 연결시킬 수 있었을까. ‘프린스 앤 프린세스’를 보면 그런 의문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애니메이션은 돈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로 만드는 것임을 미셀 오슬로는 보여주는 것이다.

시작은 소년과 소녀가 극장에서 환상적인 무대를 만드는 장면이다. 이어 그들이 만든 이야기가 곧바로 영화 속에서 재현된다. 영화 속 영화라는 방식을 사용한 이 애니메이션은 총 6개의 에피소드를 보여주는데, 111개의 다이아몬드를 찾아 공주의 마법을 푸는 왕자의 이야기가 첫 에피소드이다. 111개의 다이아몬드를 정해진 시간에 찾아야만 마법에 빠진 공주를 구할 수 있다. 물론 이제까지 도전했던 사람들은 모두 실패했다. 이제 차례가 되어 다이아몬드를 찾아나서는 우리의 왕자는 기적처럼 정해진 시간에 111개의 다이아몬드를 모두 찾는다. 방법은? 일전에 그는 우연히 개미를 밟을 뻔 했는데 조심해서 살려준 기억이 있다. 은혜를 갚으려는 그 개미가 친구 개미까지 동원해서 다이아몬드를 찾아온 것이다. 은혜를 갚는 동물의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아주 익숙한 얘기 아닌가. 한낱 미물일지라도 함부로 살생해서는 안 된다는 진리, 결초보은하는 도리가 이 짧은 우화 속에 녹아난다. 자연이 무참히 파괴되는 지금, 세상의 모든 생물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작은 계명이, 그것이 인과응보로 다가온다는 메시지가 들어있다 하겠다.

세 번째 에피소드를 보자. 마녀의 성에 들어가려는 갖은 시도가 나오는 에피소드가 있다. 온갖 방법으로 마녀의 성으로 들어가려고 하지만 결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는데, 순진한 한 청년이 마녀의 성 입성에 성공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너무도 간단하다. 그는 마녀의 성문 앞에서 노크를 했던 것이다. 온갖 무기로 할 수 없었던 일을 단 한 번의 노크로 해결한 것이다. 그녀는 사실 마녀가 아니라 어여쁜 여인이었다. 그녀를 마녀라고 규정한 것도, 온갖 최첨단 무기로 그곳을 부수면서 들어가려고 했던 것도 마을사람들의 선입견과 편견이었다. 진정으로 인간에게 무서운 것은 마음이다. 인간이 마음 먹기에 따라서 세상이 달라진다. 우리는 청년이 성에 들어가는 순간 스크린 속에서 짧은 돈오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조금의 과장을 허락한다면, 이 영화는 하나의 돈오(頓悟)이다. 이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삭막해진 인간에게 던지는 감독의 진지한, 그렇지만 ‘유쾌, 통쾌, 상쾌’한 질문이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질문. 감독은 인간이 지닌 온갖 욕망을 버리고 정결한 마음을 먼저 지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마지막 궁금증 하나? 왜 하필 제목이 ‘프린스 앤 프린세스’일까. 궁금하신 분은 왕자와 공주에 대한 인간의 허상을 보여주는 마지막 에피소드를 보시길. 변화무쌍한 둔갑이 결국은 환(幻)에 불과한 것이 우리의 모습인가 보다.



이종승 애니메이션 평론가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