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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낫한 스님이 서구에 보내는 ‘테러와 전쟁’ 편지

기자명 법보신문

“테러는 혼돈-두려움이 낳은 결과 상호 이해로 불안 씻어야 사라진다”

틱낫한 스님은 베트남 선불교를 대표하는 스님이다. 스님은 그의 고향인 베트남에서 전쟁의 와중에서도 끊임없이 평화를 위해 노력하여 널리 알려졌다. 특히 전쟁으로 폐허가 된 그의 고향 마을을 재건하는데 헌신적으로 도운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의 일련의 반전강연과 법회를 가짐으로 해서, 그의 조국 베트남으로의 귀국이 불허 되었다. 그래서 결국 프랑스에 정착하게 된다. 1967년 마르틴 루터 킹 목사는 틱낫한 스님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하였다. ‘깨달음과 사회 참여 불교’를 위한 활동에 관한 수많은 그의 저서와 가르침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불교 가르침에 기초한 사회적 실천행을 주창한 참여불교는 그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의 테러 사건을 바라보며, 틱낫한 스님이 2001년 10월 19일 중국 상하이에서 서구인들에게 보낸 간곡한 호소의 편지와 인터뷰를 본지에‘유럽불교는 지금’을 연재했던 이동호 박사(발틱연구소소장)가 긴급 입수해 본지에 전해왔다.








틱낫한 스님 편지 전문 “보복은 더 큰 폭력-증오 부를 것”



테러는 인간의 가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테러를 우리의 가슴으로부터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의 가슴을 심리적,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것만은 피해야 합니다. 테러주의라는 수수께끼를 분명히 인식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이 수수께끼는 바로 몰이해, 증오, 그리고 폭력인 것입니다. 이것은 레이다나 야광투시기로도 알 수 없습니다. 폭탄과 크루즈 미사일로도 도달할 수 없으며, 침묵하도록 부수지도 못합니다.

단지 정확한 관찰과 그 실천을 쌓아서 이 수수께끼를 정확히 통찰 할 수 있습니다. 마음깊이 귀 담아 듣고 함께 그 어려움을 느끼는 것만이 결국 그 테러를 변형시키고 제거할 수 있습니다.

무지몽매함은 더 많은 무지몽매함으로 사라지게 할 수 없습니다. 더 많은 무지몽매함은 더욱더 무지몽매하게 만듭니다. 폭력과 증오는 폭력과 증오란 수단을 통해서 사라지게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결국 수천 배 더 많은 폭력과 증오를 키울 것입니다. 단지 서로 이해하고 함께 느낌을 통해야만 이 폭력과 증오를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테러에 대한 공격’은 오도된 개념입니다. 테러에 대해 우리가 공격함은 진정한 이유가 되지 못하며, 테러의 진정한 수수께끼가 아닙니다. 우리가 공격하는 동안 이미 증오의 씨를 낳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격은 결국 이 세상에 단지 더 많은 증오와 폭력을 가져오기만 합니다. 이것은 진정 우리가 원치 않은 바로 그것입니다.

증오와 폭력은 인류의 가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테러리스트는 그들의 가슴에 증오, 폭력 그리고 몰이해를 품은 인간입니다.

이러한데 우리가 상호 이해 없이 증오, 공격성 그리고 불안 때문에 쉬이 행동으로 옮긴다면, 우리의 행동은 바로 더 큰 테러를 몰고 올 것입니다.

그래서 타인의 안방에 테러를 야기하며, 결국 우리 안방에도 테러를 불러오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전 세계 인류는 늘 두려움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경은 주야로 괴롭힘과 공격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바로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행동하는데서 오는 결과이며, 우리는 바로 이 결과의 희생물이 됩니다. 이런 혼돈, 두려움, 그리고 불안의 상태는 실로 위험합니다. 이런 상태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가진 새로운 세계 대전을 수반할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함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음성이 이 역사적인 위험한 시점에 울려 퍼져야 합니다.

빛을 가진 우리 모두는 보일 수 있고 접근할 수 있게 하여서, 세계가 암흑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가슴에 깨달음과 통찰의 씨앗이 있습니다.

우리 안의 이 씨앗들이 꽃 필 수 있도록 서로 도와서, 우리를 분명히 표현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찾읍시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방식( 무감각한 또는 생각있는 소비, 무의식적 또는 의식적인 차별, 불의에의 동참 또는 불참 등등)이, 이 세상에서 더 이상 테러를 낳게 하여서는 안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집단적인 깨달음이며, 그래서 자기파멸의 과정을 멈추게 하여야 합니다.



인터뷰 - “모든 폭력은 불의…자비심 갖는게 해법”



미국으로 부터 뉴욕 등 테러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을 만나면 그에게 무슨 말을 할 것입니까. 또 미국인들에게는?



오사마 빈 라덴을 만나게 되는 기회를 가진다면, 맨처음 할 일은 경청입니다. 그가 왜 그리 잔인한 방법으로 행동했는지 이해하려고 할 것입니다. 차분하고 분명하게 느꼈을 때만이 우리는 제대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빈 라덴이 말한것에 조목조목 대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그들 자신의 오해를 자각하는데 도움을 주고,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폭력적인 행동을 멈출것입니다.

미국인들에겐, 지금 이상황에 바로 대응하기전에 침착함과 분명함을 다시 찾을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기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안에 너무나 강하게 자리하고 있는 분노와 증오의 불꽃을 진정시키는 일입니다.

우리가 두려움과 증오에서 대응한다면, 결코 이 상황을 깊이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행동은 단지 너무 성급하고 피상적인 상황대응이 되며, 진정한 효용과 치유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만일 우리가 분노를 차분히 진정시키고, 상황을 마음 깊이 냉철히 직시하고, 폭력행위의 이유인 고통의 뿌리를 이해하려는 의지로써 경청하는 과정을 기다리고 따른다면, 관계된 모든이들에게 치유와 화해를 이룰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테러분자들의 공격에 사랑스런 것들을 잃어버려서 깊은 상처와 비탄에 빠진 사람들에게 무어라 말하겠습니까?



베트남 전쟁동안 , 나는 나의 정신적인 아들, 딸들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폭탄이 투하되는 곳의 주민들을 구하기위해 전투지역으로 들어가려고 하였을 때 저세상의 몸이 되었습니다. 몇몇은 전쟁에 의해서 살상되었고, 다른 몇몇은 적군을 도와 부역하였다는 오해 때문에 피살되기도하였습니다. 그런 잔인한 폭력에 의해 죽은 네명의 정신적 아들의 비참한 시체를 목격하였을 때, 한없이 괴롭고 슬펐습니다. 나는 이러한 비극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린 자들의 고통을 이해합니다. 이 크나큰 상실과 비탄속에서 나는 나의 분명함과 이해와 자비의 가슴을 복구하기 위하여 나의 침착함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마음 깊은 통찰의 수행으로, 우리가 만일 잔인함에는 잔인함으로 대응한다면 불의와 고통이 늘어날 뿐임을 깨달았습니다.



테러주의자의 공격에 대응하는 것에 비추어 봐서 “정행(正行)”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모든 폭력은 불의입니다. 증오와 폭력의 불길은 더 큰 증오와 폭력으로는 결코 끌수 없습니다. 폭력의 유일한 해독제는 자비입니다. 그러면 자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습니까? 그것은 이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만일 이해가 없다면, 어떻게 우리가 자비를 느낄 수 있으며 어떻게 우리가 큰 고통을 감소시킬 수 있겠습니까? 자비를 베푸는데 있어서 그 진정한 기초가 되는 것은 바로 이해입니다.



지금 우리가 미국에서 부딪히고 있는 믿기지 않는 심각한 도전의 국면에서 우리를 인도해 줄 이해와 통찰력을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이해하기 위하여 상호 원활한 의사 소통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를 의심하여 우리를 이해 못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귀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폭력행위가 마치 어떤 경각심이나 도움을 요청하는 무언가 의심스러운 호소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한 가지, 복수를 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불교 경전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증오에대해서 증오로 답한다면, 그곳에는 단지 더욱더 큰 증오만이 남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해를 끼친 사람들을 부드럽게 포용하는 자비를 베푼다면, 우리의 가슴과 그들 가슴속의 폭탄을 깨끗이 녹여 버릴 것입니다.

부처님의 방법은 고통의 근원, 즉 폭력의 뿌리를 알기위하여 마음 깊이 성찰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자신들이 폭력성이 있으면, 어떠한 행동도 그 폭력성을 폭발시키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현재의 상황을 마음 깊이 정직하게 보아야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과 타인의 고통의 근원을 알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증오와 폭력의 악순환을 부수는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이번 미국에서의 테러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현 상황의 주요한 원인은 우리의 소비형태에 있습니다. 전세계인구의 6%를 차지하는 미국이 전체 에너지 자원의 60%를 소비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어린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0만 건의 폭력을 TV에서 봅니다. 또 한가지 다른 원인은 외교정책과 서로간의 경청의 부재에 있습니다. 우리는 타국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무관심하고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번 비극적 사태에 대해 가장 효과적인 종교적 대응은 무엇입니까?



작은 자비심이 우리의 마음에 생겨나기 시작할 때 우리의 어떤 상황에 확고한 대응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경청하고 유심히 보면, 모든 종교와 문화전통의 가장 깊은 정신적 유산, 즉 모든 민족간의 형제애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전세계의 평화와 이해가 하루하루 증진될 것입니다.

우리자신의 마음에서 작은 자비심을 만드는 것만이 증오와 폭력에 대한 효과적인 종교적 대응입니다. 분노를 삭이고, 폭력의 원인을 깊이 관찰하고, 경청하며, 증오와 폭력의 행위에 연관되어 고통받는 모든 이들을 이해하는 것은 바로 작은 자비에서부터 옵니다.



번역·자료 제공=이동호 박사



이 인터뷰는 뉴욕 테러사건에 대한 미국의 대응과 관련한 틱낫한 스님의 생각으로 최근 출간된 「잿더미로부터 : 미국의 비극에 관한 심정적 대응」 에 실린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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