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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불교 - 불교교리는 사회변혁의 지침이다

기자명 박경준

평화와 비폭력 운동

평화와 비폭력운동 1976년 10월, 민주화 시기를 종식시킨 탐마사트대학교 캠퍼스에서 정부가 행한 폭력의 비극은 시바락사를 평화운동가로 더욱 매진하게 하였는데 이러한 그의 헌신은 베트남의 틱낱한 스님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최근, 시바락사는 분쟁과 폭력, 억압으로 분열된 테라바다불교 국가, 특히 스리랑카와 미얀마에서 비폭력 훈련을 장려하고 있다. 시바락사가 평화와 비폭력을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은 많은 국제평화단체에서 그가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 있는 `불교평화협회 국제자문위원단'이나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국제평화단', 인도 뉴델리에 있는 `간디평화재단' 등이 그 예이다. 1983년 고향 근처로 돌아온 시바락사는 1932년 혁명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했던 그의 스승의 이름을 따 `프리디 바노명 재단'과 `프리디 바노명 연구소'의 설립을 제안하였다. 프리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점령기 때 `타이해방운동(Free-Tai Movement)'을 이끌었던 지도자였다. 그는 또한 전쟁 후에 잠시 수상을 맡기도 했는데, 1947년 군사쿠테타에 의해 강제 추방당했다. 이 연구소의 목적은, 태국사회는 물론 전세계의 평화와 사회정의를 모색하는 데 기여할 프로젝트를 연구하고 프로그램을 진행시키는 일이다.

평화를 위한 시바락사의 활동과 초교파적인 조직망, 그리고 농촌의 빈민들을 위한 그의 노력 덕분에 `타이 범종교 개발위원회(Thai Inter-Religious Commission for Development, TICD)'라는 종교를 초월한 단체를 설립하는 데 일조를 할 수 있었다. 이 단체는 탐마사트 대학교와 출랑롱콘대학교에 있는 불교학생회들이 사회봉사나 사회개혁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있게 하고, 도시와 농촌지역 단체들 사이의 교량 역할을 하면, 빈민가 어린이들을 위한 단기간의 교육프로젝트와 레크리에이션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단체들과 협동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TICD는 곳곳의 불교사원에 쌀은행을 설립하여 가난한 농민들에게 봉사하기도 하였다. 시바락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서 출범한 단체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TICD도 <평화의 씨앗(Seeds of Peace)〉이라는 정기간행물을 발행하였다. 이 잡지는 평화와 정의, 비폭력 훈련, 불교경제학, 여성과 종교, 환경문제등 현 사회의 중요 문제점들을 제기함으로써, 영어로 되어 있긴 하지만 존경받는 공개 토론장 역할을 해 왔다. 또한 TICD는, 최근에 <담마수련(Sekhiyadhamma(Training in the Dhamma)〉이라고 이름을 바꾼 <길(Withi˙ A way)〉이라는 두번째 잡지를 태국어로 발행하였는데, 이 잡지는 종교와 개발의 문제, 특히 불교와 개발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회적 연기(緣起)의 인식51982년 무렵, 시바락사는 소규모의 비정부조직(NGO)을 한데 모아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고 서로를 지원해 줄 수 있는 통합단체의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결국 그는 최초의 17개 회원 단체로 `타이개발후원위원회(Thai Development Support Committee, TDSC)'를 창설하도록 하였다. 도시와 농촌 공동체 발전 사업, 아동복지 활동, 공중보건사업, 인권활동, 공동체 노동훈련, 소식지 발행,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지원, 해당 기술자문 등 TDSC는 매우 폭넓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시바락사는 이 17개 단체의 반이상을 직접 관리하고 있다. TDSC의 계간지 <타이개발회보(Thai Development Newsletter)〉는 회원 단체에 관한 정보와 함께 주택문제, 영양실조, 인권탄압 등 기타 사회 문제에 관한 특집 기사들을 싣고 있다.

이처럼 시바락사가 창설하여 운영하거나 도움을 주고 있는 단체와 간행물들은 모두 정의˙평화˙폭력˙민권˙인권 문제 등을 제기한다. 이들은 때로 농촌 빈곤자, 빈민가 거주자, 혜택받지 못하는 여성, 어린이, 전쟁 피해자 등 주변의 인물들과 함께 일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또한 시바락사는 국제적인 불교단체와 초교파적인 단체를 만들고 문화적˙교육적˙예술적 관심을 기를 수 있는 또 다른 유형의 단체를 창설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늘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점의 가장 뚜렷한 예는 `사티라코제스-나가프라디파 재단(Sathirakoses-Nagapradipa Foundation)'으로서 이곳에서는 <피차라야사라(Pacharayasara)〉지를 간행하는데, 이는 <사회과학평론〉의 지적인 계승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재단의 이름은 프야 아누만 라자돈(Phya Anuman Rajadhon)의 필명`사티라코제스'와 그의 공동저자이자 공동 번역자인 프라 사라프레세트(Phra Sarapresert)의 필명 `나가프라디파'에서 따온 것이다. 프야 아누만은 정규 교육을 별로 받지 못한 평민이었지만 전통문화와 관습, 역사에 대해서 태국에서는 가장 뛰어난 전문가가 되어 태국 예술부 장관은 물론, `왕립 연구소' 소장과 `샴협회(Siam Society, Siam)은 태국의 옛이름. 태국의 지성인들은 태국의 역사와 전통과 고유한 문화를 말할 때 옛이름을 사용하기를 좋아한다. <편집자 주〉)'회장을 역임하였다. 시바락사는 그러한 프야 아누만을 자신이 실천해야 할 역할의 모델로 삼은 것이다.

프야 아누만은 자만심을 내세우지 않고 무엇으로부터나 누구에게서, 심지어 하인에게서 배우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으며, 배우는 것 그 자체를 사랑했기 때문에 시바락사에게 있어서 그는 진정한 학자를 의미한다. 시바락사가 보기에 프야 아누만은, 보잘 것 없는 애니미즘 신앙과 의식은 물론, 장엄한 왕궁의식이나 고상한 불교철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타이의 문화를 존중하였다. 한마디로 프야 아누만은 과연 어떤 것이 말 그대로 `샴'적인 것을 의미하는가를 이해하였으며, 샴의 전통 중에서 최상의 것을 구체화시킨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태국 사람들이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을 때 시바락사는 프야 아누만이야말로 타이 문화를 이끌어갈 수 있는 대표자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시바락사가 태국학연구의 중심지이자 정신개발을 위한 장소로 프야 아누만기념관과 공원의 건립을 계획한 것은 이 두 가지가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서로 상관된 목적을 지닌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시바락사의 견해로는 사회적 행동주의와 학문은 모두 정신 개발을 바탕으로 해야 하며, 그 정신 개발이라는 것은 정치˙경제˙교육문제 자체는 서로 독립된 부분이 아니라 인간개인과 인간 공동체 전체를 이루고 있는 부분들이 상호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때문에 시바락사의 초교파성과 보편성은 단순히 자유주의적인 편견없는 마음이나 지식인의 기행(紀行)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힘이 있거나 없거나, 도시에 살거나 농촌에 살거나, 귀족적이거나 비천하거나, 불교인이거나 기독교인이거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은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그의 불교적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대 태국사회에 대한 비판종교적으로, 혹은 하나의 이상향으로서 새롭고 이질적인 사회 질서를 요구하는 경우는 현 체제에 대한 불만족이나 실망에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이와는 반대로 종교는 또한 지금의 삶에 기본적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에게 현 체제를 강화시켜 주거나 정당화하는데 기여할 수도 있다. 이처럼 상반된 두 가지 경향은 중복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서로 긴장 속에 존재하기도 한다. 현 시대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제기했던 시바락사는 첫번째 경향의 좋은 예가 된다.

시바락사는 태국의 현안 문제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면서 그 비평의 기초를 태국 역사에 대한 해석에 두는 경우가 많다. 시바락사는 과거 50여년의 역사 속에서 샴의 정체성에 나타난 두 가지 보완적 변화로, 문화˙종교˙사회적인 전통 가치의 침식과, 서구 생활방식의 무차별 도입을 꼽는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태국 지식인들이 태국의 전통가치관과 서구의 가치관이 균형을 이루게 한 왕정(王政)의 근대화에 대한 직관을 받아들이고 있는 점에서는 시바락사도 함께 하고 있다. 한 예로 태국의 법률제도의 변화가 서양과의 경쟁력을 갖추게 했다고 보는 시바락사는 그 법률제도가 태국불교의 기본원칙인 담마(정의)의 법칙과 모순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그 반대현상으로 미국의 영향력 때문에 군부의 힘은 한층 강화되었고, 물질주의 문화의 확산을 맞이하여 샴문화의 소멸이 가속화되었으며, 부도덕한 전쟁에 태국이 개입하게 되었다. 이렇게 보는 시바락사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현재 샴의 엘리트들은 권력과 돈 등, 삶의 물질적인 측면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그들 대부분은 말로만 사회 정의를 위한다고 한다… 이 나라를 관리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군인이나 공무원이든지, 아니면 사업가 등을 막론하고 누구나 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하나하나 위기를 극복해 가는 일만 매일 하고 있다."

사회 부흥을 위한 시바락사의 불교적 통찰근대 사회에 대한 시바락사의 비평의 측면이나 좀 더 인간적이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그의 계획을 통해서 보면 그의 통찰은 다양한 원천에서 니온다. 그러나 종교에 대한 그의 헌신은 이러한 통찰의 주요한 구성요소를 이루고 있다. 시바락사가 다른 종교들, 특히 기독교를 공부하고 그 스승들에게 영향을 받은 것은 물론, 마하트마 간디˙토마스 머튼˙마틴 루터 킹 2세˙턱낱한 등 다양한 종교 지도자들을 존경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스스로는 분명하게 불교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태국이라는 정황 속에서 시바락사는 불교적 관점을 통해 개혁을 주창한 가장 탁월한 자유주의자적 개혁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타이 범종교 개발위원회'같은 단체의 관리부 일을 맡으면서 시바락사와 함께 하게된, 마히돈 대학교의 전 부총장 프라웨트 와시 박사, 담마적 사회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개혁가적 태국불교 정치철학의 토대를 제공했던 붓다다사 비구, 흠잡을 데 없는 학식으로 불교 교리와 불교사회철학 양쪽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승려 담바피타키 등도 포함된다.

비록 시바락사가 태국어와 영어로 많은 출간을 했지만 그는 원칙적으로 행동주의라는 점을 강조해야겠다. 그 결과 그의 출판물은 잘 다듬어지고 비판적으로 검토된 서적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의견이나 연설, 강연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시바락사는 꼼꼼하고 이성적인 논증보다는, 개인과 사회의 변혁을 소중히 여기는 그의 일관된 견지에서 연설을 하고 글을 쓴다. 사실 시바락사는 보다 뛰어난 인간 존재의 발전과의 관련성을 결여한듯이 보이는 이기적인 지식의 추구를 강하게 비판해왔다. 따라서 독자들은 시바락사를 학자나 철학자보다는 주창자나 예언자로 이해해야 한다.

시바락사의 입장은 당연히 그의 활동을 이론적인 것보다는 실천적인 것으로 만들어준다. 그는 사성제˙열반˙연기˙무아 등 불교의 정통 교리를 이론으로 보지 않고 개인과 사회변혁의 지침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그의 `가까운 장래에 이루어야 할 바림직한 사회라는 불교적 개념에 대한 제안서'에서 말했듯이 "사성제와 팔정도를 오늘날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그리고 가까운 장래에 바람직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이러한 방법들이 어떻게 영감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대중들이 알 필요가 있다." 금세기의 다른 많은 테라바다불교 개혁가들과 마찬가지로 시바락사는 불교 교리에 대한 그의 해석에 윤리적 성향을 가미하였다. 이것은 그가 `정신성'의 문제를 무시하였다는 의미가 아니라, 에블린 언더힐(Evelyn Underhill)이 몇 년전 서구의 신비주의에 관한 연구에서 밝혔듯이 `실천적인 정신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그가 주요 창설자 역할을 한 `국제참여불교인 조직망'의 동료들이 동의하듯이, 더 나은 인간 세상을 이루기 위한 노력과 정신적인 발전은 반드시 함께 이루어진다.


박경준/동국대 불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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