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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일 큰 願을 세우자

기자명 박준영
기복불교에 대한 논쟁이 뜨거운 모양이다. 교학도 심신도 굳지 못한 내가 이 민감한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벅찬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를 피해 가는 것은 더 떳떳치 못한 일 같아 소견을 피력한다.

옛 노래 가락에 이런 구절이 생각난다.

“백마는 가자 울고 날은 저문데...”

백마를 이상이라면 저문 날은 현실이다. 아무리 가야되겠지만 날이 저무니 잘 집을 찾아봐야 한다. 기복에 대한 논쟁도 말하자면 이런 것이 아닐까. 성철 스님의 법문에서도 이런 고민이 잘 나타나 있다. 종교를 믿는 것은 영원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인데 현실에서는 그 행복을 달성할 수가 어렵기 때문에 멀리는 극락이니 천당이니 하는 방편과 가까이는 자신과 가족의 수부귀(壽富貴)를 빈다는 것이다. 진리 그 자체의 존재는 접어두고 인간의 필요로 종교가 생겼다면 흔히 그 사람의 근기에 따라 믿는 수준(?)도 매겨질 수 밖에 없다. 다만 시공의 풍화에도 견딜 수 있는 진리의 종교만이 영원한 생명력을 지닐 것이다. 불교야말로 시공을 초월해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큰 종교임에 틀림없다.

천둥, 번개가 칠 때 그 원리를 모르는 사람은 그 공포를 벗어나기 위해 비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종교의 참 역할이 필요하다. 계속 빌도록 만할 것인지 천둥, 번개의 원리를 가르쳐 주고 거기 대비하도록 하는 지혜를 줄 것인지 그 대답은 자명하다. 그런데도 자꾸 빌게만 하도록 두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밤에 높은 곳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면 동네마다 시뻘건 십자가 숲을 이룬다. 그리고 문화재의 80%가 불교와 관계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세계 2대 종교가 번창한데도두 종교가 이상으로 삼는 자비와 사랑의 세계와 오늘의 한국은 너무나 거리가 멀다.

답은 먼 데 있는 것 같지 않다. 같은 행위라도 이기적인 동기에서 추구하는 신앙 생활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덕이 되지 못한다. 나도 가는 절마다 기와불사를 한다. 그리고 가족의 이름을 쭉 적는다. 그리고 ‘소원성취’라는 말보다 ‘이타행’이라는 소원을 적는다. 사람의 탐진치는 동물과 닮은 데가 있어 가만히 놔둬도 이기적인 바램과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이것을 보상하기 위해서라도 잘 지키지 못할망정 이런 염원을 간절히 적는다.

대구에 있었을 때 일이다. 어느 암자에 유명한 스님이 계시니 법문을 한 번 들어 보라는 권유가 있어 찾아간 적이 있다. 먼저 참석한 불자들 틈에 끼어 그 스님의 법문을 듣게 되었다. 마침 선거 때라 그 스님은 어느 정치인 지지 연설 아닌 연설을 하더니, 예수나 부처야말로 세계 최고의 비즈니스맨이라는 엉뚱한 얘기까지 나왔다. 그 이유는 2천년, 2천 5백년동안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사람들이 와서 돈을 놓고 가니 그런 경제원칙에 충실한 비즈니스맨이 어디 있겠느냐는 얘기에 아연실색 하고 말았다. 이어지는 얘기는 쓰기가 거북스럽다.

각 종교가 입으로는 선과 평화를 외치면서 뒤로는 자기 교파와 신도들의 이익과 권리를 위해 살육도 서슴치 않는 악을 자행하는 지금, 자기 가족을 위한 소박한 기도, 예를 들면 할머니가 손자, 손녀의 건강을 빈다든지 어머니가 자녀들의 합격을 위해 두 손 모아 비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람 냄새나는 기복을 누가 탓하랴.

오히려 그 소박한 기도의 모습에서 감동을 받을 때가 많다. 다만 중창불사나 재원 마련을 위해 은근히 기복적인 재나 행사를 알게 모르게 유도하는 일은 이제 없어져야 하겠다. 참 종교는 많으냐 보다 바르냐가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차원 높은 원을 세워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참된 불자가 이 땅에 많이 나와 신라가 3국을 통일하듯 문제 많은 이 세상에 등불이 되기를 빌고 싶다. 어느 통계 조사에서 기복보다는 마음의 안정을 얻고자 절을 찾는 숫자가 더 많다고 하니 희망은 있어 보인다.

비는 김에 큰 원을 세워 빌자는 것이다.



박준영 (시인, SBS 전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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