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 나한의 침묵
거조암의 마당을 통과하여 영산전에 진입하게 되면 역시 작은 부처님과 함께 526분의 작은 나한성중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작은 나한들이 이제는 작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둑어둑한 장대한 공간에 여기저기 절제되어 들어오는 빛은 다양한 어둠의 깊이와 함께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우주의 적묵(寂默)을 이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공간과 시간은 적묵(寂默) 아래 정지되어 있으나, 그 건축적인 공간은 조사들과 함께 일합(一合)을 이루고 정지한 듯 움직이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공간으로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고 무채색의 건축과 흰색 하나로만 가지가지 색을 연출하고 있는 나한이 통시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와 함께 500 나한을 만나게 되어 있는 내부의 만(卍)자와 같은 길들은, 그러나 길이 아니다.
한분 한분께 예(禮)를 올리는 일보일례(一步一禮)의 멈추는 장소도 아니고 동중정(動中靜)인 동시에 정중동(靜中動)의 길도 아니다. 공간과 시간이 함께 만나서 운동을 하는 멈춤과 움직임이 동시에 무화(無化)되어 버린 움직인 바 없이 걷는 길인 것이다.
그리하여 500 나한에게 예를 다한 후에도 묵묵(默默)하여, 그 본적의 묵묵(默默)함으로 다시 예를 대신하는 예묵(禮默)의 공간을 이룩한 침묵(沈默)을 초월한 침묵(沈默), 본적(本寂)의 공간을 통해 건축은 없고 조사(祖師)만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거조암은 더 이상 조사들이 거(居)하는 공간이 아니다. 지극히 작게 움츠러들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그러나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와 같은 500 나한들이 우주 속에 부처성(佛性)으로 가득하였던 곳.
이젠 모든 것이 세월과 함께 변해버려 넓은 마당만 있을 뿐, 그곳에서 이제 나는 더 이상 조사를 만날 수가 없다. 어쩌면 애시당초 아무 것도 보이려고 하지 않았던 무무(無無)와 무(無)의 건축이었던 것처럼 원래 자리로 돌아가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예묵(禮默)의 공간 ‘거조암 영산전’. 이젠 내 마음속에만 남아있는 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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